나폴레옹의 결혼 기념일

sanha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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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조제핀 결혼

몇년 전 전도연이 주연한 영화가 있었지? 크게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한 모양이지만 말이야. 남편 친구의 부탁을 받고 나른 짐 속에 마약이 들어 있는 것이 발각돼 프랑스에서 징역 살이를 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 한국 외교통상부 나으리들의 무심함과 무능함이 지극히 선명하게 부각됐던 영화 <집으로 가는길> 이었지. 영화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전도연이 프랑스 국내 감옥에 갇혀 있다가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에 떠 있는 프랑스령 마르티니크라는 곳의 감옥에 갇혀. 그런데 이 마르티니크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의 아내이자 현재까지 이어지는 유럽 각국 왕조의 먼 할머니뻘이 되는 한 여자가 태어났지. 조제핀 드 파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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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곳에서 태어나 보아르네라는 프랑스 귀족에게 시집을 가서 조제핀 드 보아르네가 된다. 그런데 이 보아르네라는 남자는 그때 귀족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다른 여자 꽁무니 쫓기 바빴고 하물며 대서양 저편 식민지 출신의 촌뜨기 아내에게는 별반 흥미를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프랑스 혁명 후 남편 보아르네가 반혁명 혐의로 머리가 잘릴 때에는 그 부인이라는 이유로 연좌돼 조제핀 역시 감옥에 갇혀 단두대행을 할 뻔 했는데 다행히 이 여자보다 공포정치의 수장이었던 로베스피에르가 먼저 잡혀서 목이 떨어져 나가면서 풀려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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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귀염받지 못하긴 했지만 그녀는 매력 넘치는 여인이었고 파리 사교계에서도 꽤 이름을 날렸으며 당연하게도 당대의 최고위 인물들과 사귀게 돼. 이를테면 총재정부의 수반 바라스같은 이들의 애인이 되는 거지. 이 바라스가 조제핀에게 싫증이 났던지 이 조제핀에게 전도유망한 군인 하나를 소개하게 되는데 이게 나폴레옹이야. 나폴레옹은 조제핀보다 여섯 살 연하였어. 나이 20대 중반의 팔팔한 청년 군인과 서른을 넘기고 애 둘 딸린 아줌마의 조합이었지만 청년 군인은 이내 조제핀에게 반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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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핀은 능수능란한 연애꾼이었어. 허기사 미모와 화술 하나로 목숨을 지탱해 온 여자가 연애 경험 제대로 없는 총각 장군을 주무르는 것이야 일도 아니었겠지. 이를테면 나폴레옹이 몸이 달아 달려오면 찬물을 끼얹듯 냉정하게 대하고 씩씩거리며 물러가면 내가 미쳤나 봐요 그리운 나폴레옹 뭐 이런 편지를 보내고 그럼 나폴레옹은 또 달려오고. 세계를 지배하는 건 남자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는 말은 역사 이래 진리인듯 해. 그 잔인한(?) 밀당 끝에 조제핀과 나폴레옹은 1796년 3월 9일 결혼하게 돼. 작년에 이들의 약혼반지가 경매에 나와 10억을 넘는 금액에 낙찰된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 반지는 조제핀의 손가락에서 빛나고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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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조제핀을 무척 사랑했고 그 아이들도 양자로 거뒀지. 가족에 무심했던 아버지와 그에 못지않게 아이들을 팽개쳤던 어머니와 달리 의붓아버지는 아이들을 사랑했고 아이들은 아버지를 평생 배신하지 않아. 나폴레옹이 최악의 순간에 처하고 피를 나눈 형제들과 수족같던 장군들도 배신을 할 때에도 외젠과 오르탕스, 조제핀의 아들과 딸은 나폴레옹 곁에 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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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했지만 조제핀은 나폴레옹에게 그다지 애정을 보이지 않았어. 자기에게 홀딱 반한 여섯 살 연하의 남자를 보듬으면서도 틈만 나면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렸지. 첫날밤을 보내자마자 이탈리아로 출정한 남편을 배웅하기가 무섭게 기병대의 미남 대위 샤를 이폴리트와 놀아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전장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격전을 치루는 나폴레옹은 배신감을 느낄 밖에, 이집트 원정 중에도 조제핀은 마찬가지였어. 조제핀의 아들 외젠이 “어머니 제발 좀 그만하시라구요! 창피해서 못살겠습니다.” 식의 편지를 보낼만큼. (이 편지는 영국군이 압수해서 전해지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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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두 통씩 연애 편지를 써 대던 열정이 배신당하자 맞바람을 피우는 복수(?)를 감행해 봤지만 그걸로 갈증이 가실 리가 없지. 자고로 맞바람만큼 공허한 게 없느니. 나폴레옹은 이혼을 결심하지만 조제핀의 두 자녀가 눈물로 호소하면서 이혼은 포기한다. 이때 이후로 나폴레옹의 애정이 식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권력만이 내 애인이다.”라고 정복자답게 기염을 토하면서도 “조제핀과 사는 것이 나의 역사다.”라고 고백하기도 했고 나폴레옹에게 최대의 영광을 안겨 준 아우스테를리츠 전투를 앞두고는 이렇게 명령했다고 해. “조제핀에게는 이 전투를 알리지 마라. 잘못되면 내가 그녀에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유럽의 운명을 결정지을 전투를 앞두고 행여 실패하면 아내에게 할 변명을 고심하는 사령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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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대관식에서 나폴레옹 자신이 황제의 관을 직접 쓴 후 조제핀에게 관을 씌워주는 모습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묘사했지. 대관식을 위해 로마 교황까지 출동했지만 나폴레옹은 스스로 관을 썼고 조제핀의 머리에도 자신이 관을 올려 놨어. 그런 의미 아니었을까. 권력도 내 손으로 쥐었을뿐더러 이 여자 또한 내가 쟁취했다는 확인 의식 같은 거. 그런데 둘은 묘하게 엇갈려. 나폴레옹이 열을 낼 때에는 조제핀이 콧방귀더니 조제핀이 나폴레옹의 매력에 빠져들 때 쯤이면 나폴레옹은 ‘황제’에 어울리는 여자를 찾기 시작한 거지. 아마 프랑스에 가수 나미가 있었으면 “우리 만남은 빙글빙글 돌고.”를 프랑스 말로 노래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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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조제핀을 사랑했지만 또한 코르시카 시골뜨기 출신의 벼락출세자가 아닌 유럽 왕가의 일원으로 당당하기를 원했고 다른 나라의 공주를 아내로 원하게 돼. 처음엔 러시아 여자가 오나 했더니 결국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루이즈로 낙찰을 보게 되지. 이혼을 통고받은 조제핀은 기절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녀는 연기를 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 해. 아들 외젠의 지위를 매개로 협상을 했다고도 하니까. 외젠은 어머니를 팔아 왕이 되고 싶지 않다고 반박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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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조제핀은 그렇게 오랜 시간 돌고 돌면서 서로를 아프게 했다가 또 서로에게 매달렸다가의 과정을 되풀이하다가 끝내는 파경을 맞지만 둘의 애정이 끝났다고는 말하지 못해. 나폴레옹은 그녀에게 말메종 궁전을 주고 그녀의 대단한 낭비벽을 충족시킬만큼의 돈을 지급했으니까. 조제핀 역시 나폴레옹 몰락 후 엘바 섬으로 유배될 때 나폴레옹을 쫓아 가겠다고 주장하니까. (자기 정식 아내가 올 줄 기대했던 나폴레옹은 거절하지만) 하지만 조제핀은 역시 사교계의 여자. 나폴레옹을 위해 끝까지 싸운 아들 외젠 등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에게 접근해서 그와 산책을 하다가 찬바람을 맞은 끝에 얻은 폐렴으로 세상을 뜨지. 그녀는 나폴레옹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다고 해. 나폴레옹은 이 소식을 듣고 사흘을 방문 걸어 잠갔다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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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그로부터도 한참을 더 산다. 엘바섬을 탈출해서 다시 한 번 천하를 꿈꾸다가 워털루 전투에서 참패한 이후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되기까지. 그의 마지막 말은 그의 생애를 아주 극적으로 압축하지. 세 마디였어, 우선 “프랑스” 고향에서 쫓겨난 코르시카인이 택했고 또 그 코르시카인을 택한 조국. 그리고 ‘군대’ 나폴레옹을 영웅이든 악마든 역사에 남게 만든 도구, 그리고 마지막 말은 ‘조제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순수하게 좋아했던 여자. 하지만 넘어왔으면서도 넘어오지 않은 여자, 되레 자신이 그녀로부터 떠나갈 때 오히려 자신에게 매달렸던 여자. 도움보다는 해악을 더 많이 끼친 여자였지만 어쩔 수 없이 좋아했던 여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폴레옹은 죽어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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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지남철처럼 달라붙는 것이기도 하지만 서로 가열차게 밀어내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큐피드는 황금화살을 동시에 양자의 가슴에 쏘아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각각에게 쏘아서 한쪽은 애가 타고 한쪽은 덤덤하게 만들고 또 그 뒤에는 반대로 만들어 빙글빙글 돌게 만든다. 세상의 보통 사람들에게도 흔히 적용되는 이 큐피드의 장난은 세계를 울린 나폴레옹과 조제핀에게도 예외가 없었네. 큐피드는 무척 심술궂은 악동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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