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체트킨 가다

sanha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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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6월 20일 클라라 체트킨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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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야 워낙 유명하고 옛날 PC통신 시절부터 오늘의 트윗 페북에 이르기까지 대화명이나 필명을 ‘로자’로 쓰는 여성분들이 많지만 클라라 체트킨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로자 룩셈부르크보다 13살 연상이었지만 로자와 절친한 동지였으며 러시아 혁명가의 부인이었고 로자만큼이나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으되 천만다행히도 로자같이 흉탄에 맞아 죽지 않고 천수를 다했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용기를 포기한 적이 없었던 혁명가가 클라라 체트킨 (체트킨은 러시아 혁명가였던 남편의 성이다. 남편 사망 한참 후 젊은 남자와 재혼했지만 이 성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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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역사에 남긴 것 중의 하나는 다름아닌 여성의 날(3월 8일)이다.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열린 제2회 인터내셔널 여성협의회에서 클라라는 미국 뉴욕에서 여성노동자 수백 명이 투표권 획득과 노조 건설 촉구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여 이 날을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하자고 제안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우리나라도 3월 8일이면 세계 여성의 날을 지키고 있는 바, 클라라 체트킨의 이름이 좀 가까이 들릴 수도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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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자본가에 의해 업신여김을 받듯 여성도 남성에 의해 그런 대접을 받고 있다.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적이 되기 이전에는 계속 그런 상태로 머물 것이다."는 주장처럼 그녀는 계급성과 결부된 여성운동을 주창했다. 즉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적은 남자 일반이 아닌 남성 자본가라고 설파했던 것이다. 그녀는 독일의 부르조아 여성운동가들이 완전한 민주주의와 여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기보다 ‘영주’들 앞에 무릎 꿇는 양순한 성향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그녀가 말한 ‘부르조아 여성’들의 ‘영주’에 대한 굴복이 극적으로 나타난 사건은 다름아닌 1차 세계대전일 것이다. 물론 이 1차대전 앞에서 부르조아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클라라가 평생 동지라고 생각했던 남자들까지도 죄다 무릎을 꿇었다. 전쟁에 동의했고 조국을 지키기 위한 희생을 열렬히 호소했던 것이 유럽 각국의 ‘사회주의자’들의 현주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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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게 그렇다. 일단 터진 뒤엔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에 반대 입장을 표했던 사람들조차 빨아들이는 소용돌이이며 빨려들어가면서도 자신은 정의를 위해 희생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수십만 수백만명이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걸 보고선 좀 정신을 차리는 것이 인간 역사상 반복된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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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체트킨은 그 광기를 지켜보면서 이렇게 외친다. “여러분의 남편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의 아들들은 어디 있습니까? 이 전쟁에서 이익을 보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자본가일 뿐입니다. 노동자들은 이 전쟁에서 잃을 것만 있을 뿐 얻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살인은 그만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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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그로부터 한참 동안 계속됐지만 좌파를 자처했던 수많은 이들 가운데 이렇게 전쟁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도 드물었다. 여자가 ‘나대는’ 것을 싫어한 역사는 동서고금이 똑같다. 전쟁 전부터 체트킨이 열심히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면 씨잘데기없는 농담으로 와르르 웃고 넘어가는 것으로 뭉개 버렸던 독일 사회민주당 간부들은 급기야 그녀를 ‘반전(反戰) 선동을 이유로 사회민주당 기관지 편집진에서 제명해 버린다. 그러나 그녀는 1914년 11월, 전쟁 초반에 호소한 바 “억누를 수 없는 수백만의 함성이 터져나와야 한다. 살인을 중지하라! 파괴를 중지하라! 인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전쟁을 종식하라! 평화! 평화! 영원한 평화를!”이라는 외침의 일관성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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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로자 룩셈부르크의 머리가 개머리판에 짓이겨지고 총알까지 박힌 채 운하에 던져지고 동료 칼 리프크네히트도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굴하지 않고 로자와 칼의 정신을 기리는 글을 써서 신문에 실었고 이미 가치를 상실했다고 본 사민당을 떠나 독일 공산당에 참여한다. 공산당 출신으로 의원이 된 그녀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할 때까지 독일 연방 의원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가장 빛나는 순간 중의 하나가 찾아온다.

독일 의회에는 관행 하나가 있었다. 정식으로 국회의장을 뽑기 전에 항상 최고령 의원에게 명예의장을 맡겨 개회를 선언하도록 하는 것. 1933년, 당시 나이 75세였던 클라라 체트킨은 최고령자로서 독일 의회의 개회를 선언하고 연설에 나선다. 연설의 제목은 “파시스트들을 쳐부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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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해의 총선에서 나치가 의석의 1/3을 차지했으니 늙은 할머니 체트킨의 눈앞에는 갈색 제복의 나치 당원들이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람 하나 죽이고 살리는 것은 대수롭지도 않던 그들 앞에서 체트킨은 이렇게 연설한다.

“소비에트 독일의 첫 소비에트 의회의 명예의장이 되어 지금처럼 개회사를 하는 행운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소비에트 독일의 첫 의회 개회사를 하고 싶다는 야무진 기대의 표현. 그 당시는 바로 의사당 밖에서 무시로 사람들을 습격하고 심한 경우는 죽이기도 하며 설치고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험상궂은 사람들 앞에서 소비에트의 희망을 털어놓으면서 클라라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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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부릅뜨고 가끔 어깨를 실룩이며 경고하던 나치 간부들 앞에서 거침없이 파시스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남겼던 클라라 체트킨, 그리고 그녀의 용기가 1933년 6월 20일 세상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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