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내 아담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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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생긴 은평 성모 병원에 문상 다녀오는 길이었다. 친구 녀석 차 얻어타고 오는데 녀석은 살아온 동네가 서울 서북쪽과는 거리가 먼지라 구파발 쪽은 근 20년만에 처음 온다며 연신 둘레둘레 사방을 곁눈질했다. 여기가 상전벽해처럼 변했다고 얘기해 줘도 과거의 ‘상전’(桑田)을 모르니 벽해(碧海)를 짐작하기 어려웠으리라. 녀석의 기억 속에서 서울의 끝은 ‘연신내’였다. 차가 연신내 근처에 오자 녀석이 환호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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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여기야. 25년 전에 나 여기 왔었어. 어느 여자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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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나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 동기들 가운데 상당한 여성 편력을 기록한 녀석이다. 사귀는 여자마다 사연이 있었고 애로 사항이 있어서 마음 고생도 많았지만 허우대부터 기타 실력까지 여자들 맘 사로잡는 데에는 일가견이 가득한 친구였기에 대충 기억나는 녀석의 지난 여자들을 속으로 들추며 누구였지 셈하고 있는데 대뜸 녀석이 흥분되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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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모를 거야. 걔가 유학 가기 전에 잠깐 만난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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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연신내에 와서 들뜨는 거지. 짧지만 강렬한 추억이 있나? 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말을 더듬는다. 아 그게 말이야. 아 그게 말이야. 그러더니 이어지는 옛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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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술 먹다가 집에 바래다 달래서 연신내까지 왔는데 말이야. 걔 자취집이 여기였거든. 여긴 그렇게 변한 느낌이 없네. 근데 아 여자애가 집에 안 들어가겠다는 거야. 밤에 같이 있자고.”
“으어어. 그런 바람직한.....”
“난 여관비도 없었다고.... 학교까지 다시 걸어갈 판이었다고. 그런데 자기가 내겠대.”
“으어어. 그런 열정적인.....”
“그 여관이 여기 길가에 있었거든. 아마 없어졌겠지만.”
“으어어. 그런 롸맨틱한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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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녀석의 갑자기가 목소리가 한풀 꺾인다. “그렇게 롸맨틱하진 않았어.” 아니 왜? 그 상황에서 더 바랄 게 뭐가 있다고. 그런데 녀석의 말은 나를 1분 동안 폭소하게 만들었다. “아 띠바, 그날 먹은 막걸리가 이상했었나 봐. 아니면 나 혼자 안주 처먹은 파전이 이상했든지. 글쎄 설사가 나는 거야. 밤새 난리가 났었어. 뭐 좀 얘기하다가 화장실가서 쏴아..... 뭐 좀 있다가 가서 쏟아내고 물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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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었다. 네가 전생에 이완용 꼬붕이었나보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냐. 친구도 난감했겠지만 미남과의 로맨스를 완성해 보겠다며 용기를 낸 용녀(勇女)는 또 얼마나 황망했을까. 녀석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상대가 어땠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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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럼 밤새 뭐했냐 그 친구는”
“뭐하긴 그냥 방안에서 나만 보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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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 친구에게도 평생 잊기 어려운 밤이었으리라. 어려운 용기를 내서 사귄지 얼마 안된 남자에게 고백하고 함께 한 방에 들었는데 “윽 잠깐만” 과 “아 미치겠네.”를 연발하며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상대를 지켜보는 심경을 무엇에 비기리오. 그리고 다음 말에 나는 방어력을 잃고 차 안에서 뒤집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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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나오는데 걔도 돈이 없었더라구. 걔가 집에 가서 돈 가지고 와서 여관비 내고 갔어.” 아아 잊으랴 어찌 그 분 그날을. 허여멀건 웬수넘이 이상한 봉변시킨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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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 만남은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고 여자분은 유학을 떠나면서 추억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추억이래야 피차 무엇보다 먼저 지우고 싶은 존재였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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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녀석이 갑자기 으아아아 소리를 지른다. 뭐야 뭐야 했더니 녀석의 괴성이 바뀌었다. “있어! 있어!” 뭐가 있다는 거냐. “저기 보이지. ‘아담장 모텔’ 저기야 저기가 그 현장이라고.” 녀석은 어린아이처럼 소리지르며 웃어댔다. 서울에서 80년대 느낌이 꽤 남아 있는 동네라면 연신내가 꼽힌다지만 나름 대로변에 저렇게 후줄근한 여관이 근 사반세기를 버텨왔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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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아담한’을 뜻하는 아담인지 이브의 파트너 아담인지 모르겠으나 그 아담장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낡은 간판 앞을 지나는 순간 친구는 타임 슬립이라도 해서 25년 전쯤으로 돌아가 ‘이제는 돌아와 아담장 앞에 선 내 형님같이 생긴 꽃’으로 거듭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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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 말대로 “요즘처럼 편의점에서 정로환만 팔았어도” 아픔(?)은 줄어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랬다면 그날 밤은 화려한 녀석의 밤무대 중 이름 없는 하루로 끝났을 것이 틀림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특별했기에 그의 기억 속에는 그녀와 함께 아담장이 굵직한 뿌리를 내렸던 것이리라. 그래서 25년 뒤 나도 그 얘기를 들으며 배꼽을 잡고 덩달아 ‘아담장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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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에 이 얘기를 하게 된 건 누군가 “정로환은 정로환(征露丸)으로 러일 전쟁에서 이질로 고생하던 일본군을 치료하여 이 약 덕분에 이겼다는 뜻이므로 불매운동을 하자.”는 주장하는 걸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유래가 틀린 건 아니지만 동성제약 창업주가 무지 애를 써서 그 비법(?)을 전수받아 반 세기 생산해 온 약이고 그 크레졸 성분이 문제라면 모를까 이름까지 정로환(正露丸)으로 바꾼 약을 거부할 이유까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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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얘기를 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오늘 내가 속이 안좋기 때문이다. 어제 먹은 요구르트가 이상했는지 원. 물론 나에게는 아담장 같은 어처구니없는 실패담은 없다. 그런데 정로환도 집에 없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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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통영의 아담장이다. 연신내 아담장은 안나오네. 그런데 분위기가 매우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