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책> 동남아시아로 간 중국인들 - <아편과 깡통의 궁전을 읽고>

sanha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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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의오책
동남아시아로 간 중국인들
<아편과 깡통의 궁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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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했노라 말한다면 어지간히 겸연쩍지만 나는 사학과를 졸업했다. 그런데 나 이후 꽤 오랫 동안 우리 학교에는 ‘사학과’가 없었다. 폐과된 것이 아니라 한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과가 삼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한 친구가 내뱉은 소리에는 퍽 공감이 갔다. “아니 학부 때 뭘 공부한다고 동양사 서양사 한국사를 나눌 수 있나. 동서양 한국이 따로 분리돼 있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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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국사’(國史)가 역사 공부의 대부분으로 치부되고 세계사가 일종의 선택이나 덤처럼 여겨지는 역사 교육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지만 우리에게 ‘남의 것’도 누군가에게는 ‘우리 것’이 되며, 우리와 관계 없어 보이는 ‘남의 것’이지만 어떠한 형식으로든 ‘우리 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단절하지 못하며 분리되기 어려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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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역사도 소중하지만 이는 동북아시아에서 명멸한 허다한 국가들과 민족들의 역사와 함께 볼 때 생명력을 갖추는 것이고 ‘한국사’를 ‘외국사(外國史)에서 조망할 때 밝게 보이는 부분이 커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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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한국 사람들은 ‘세계사’에 놀랄 만큼 무지하다. 중고등학교 때 마구잡이로 머리 속에 구겨 넣었던 세계사 지식들이 전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체 하는 이가 꽤 되지만 일본 역사에는 거짓말처럼 더듬거리며 한 치 건너 동남아시아의 역사에 접어들면 베트남 혁명사 정도를 제외하면 상당수가 깜깜무광(無光)의 경지에 든다. 동남아시아 관광을 그렇게 다녀 왔어도 말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문득 부끄러워지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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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역사를 잘 이해하려면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들으면 대답하기 참으로 난감하거니와 ‘어둠을 대낮같이 밝히는’ 그런 역사책은 없다. 그저 성냥개비 북북 그어대어 작은 불빛이나마 올려야 길을 찾고 성냥개비들이 모여서 관솔이 되고 관솔이 모여 불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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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과 깡통의 궁전 : 동남아의 근대와 페낭 화교 사회>(강희정 저, 푸른역사)는 그 어둠을 조금이나마 밝히고 부끄러움을 약간이나마 덜어 줄 만한 성냥불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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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여행, 특히 태국 남쪽과 말레이 반도 일원을 구경하신 분들은 그 지역에서 ‘화교’들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잘 들으셨을 것이다. 그 가공할만한 화교들의 경제력, 상당 부분 현지화되었으면서도 또 동남아 토박이 민족들의 배타성과 견제에 시달리면서도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수백 년 째 이어온 생명력에 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궁금증을 지녀 보셨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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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로 그 화교들 (이 책에서는 ‘중국 국민’인 화교와 거주국의 국민인 화인(華人)을 분리해서 설명하는데)이 그 지역에서 어떤 식으로 뿌리 내리고 줄기를 뻗어갔는지, 그리고 세계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담담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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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시대 크메르 제국에 사신으로 간 주달관의 <진랍풍토기>에 이미 오늘날의 캄보디아에 중국인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다 했으니 동남아시아에 중국인들이 거주한 역사는 이 책에 등장하는 ‘화인’의 역사보다 몇 배는 더 길다. 그러나 ‘디아스포라’라는 표현에 걸맞을 만큼 대규모로 또 조직적으로 중국인들이 이 지역에 흩뿌려진 기점은 1786년 영국의 페낭 점거였다. 영국은 페낭을 점거하면서 네덜란드의 말래카 해협 제해권을 위협하며 말라야 지역의 첫 거점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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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을 점거했던 프랜시스 라이트와 그 동료들은 페낭을 단순한 군사적 요새 아닌 장사로 한몫을 볼 수 있는, ‘모든 민족이 출입하는 자유항’을 지향했고 ‘일체의 관세를 부과하지 않으며 이주자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불하하는’ 구상으로 페낭을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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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목좋은 땅은 대부분 자신들이 챙겼고 ‘자유’란 현지 무역상들의 ‘돈 벌 자유’였겠지만 이 기회의 땅(?)에 세대를 넘어 꾸준히 유입된 사람들이 바로 중국인이었다. 그들 전부는 빈손으로 왔고 대부분 죽을 고생을 하다가 무더기로 죽어 갔으되 그 가운데 삶의 격랑을 이긴 생존자들은 바로 그 희생을 딛고 거부(巨富)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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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부의 근거가 바로 ‘아편과 깡통’이다. 깡통이란 통조림 병의 재료가 됐던, 그래서 통조림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엄청난 수요를 불러일으킨 금속, ‘주석’(朱錫)을 말한다. 말레이 반도에서 주석 광산이 개발된 이래 ‘쿠울리’라고 부르는 중국인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떼로 몰려들었다. 돼지 꼬리를 연상시키는 변발 때문에 ‘돼지들’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들은 배를 타고 오면서 빚을 졌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죽어라 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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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쿠울리들을 주로 이용한 것은 다름아닌 중국인들이었다. “중국인이 주도한 주석 광산 개발은 가능한 많은 노동자를 투입하는 방식이었다. 생산량에 비해 노동자가 많으면 임금 부담이 늘어 이윤이 줄고 생산성도 낮다는 것이 시장 경제학의 상식이다. 하지만 19세기 페락과 푸켓의 주석 광산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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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 교수는 이 희한한 비상식의 비밀에 아편이 있었다고 말한다. 자수성가한 중국인들과 그들의 비밀결사, 그리고 대를 이은 탐욕스런 부자들은 아편팜, 즉 아편의 전매권을 식민지 당국으로부터 따냈고, 노동자를 대거 투입하면서 줄어드는 이윤을 아편 장사를 통해 만회 아니 ‘묻고 따블로’ 벌 수 있었다. 라오케(老客) 즉 먼저 와서 터를 잡은 중국인이 신케(新客), 즉 나중에 온 중국인을 노예 부리듯, 중국인 특유의 ‘쪽수’를 아낌없이 투입하는 한편, 그들에게 아편 장사를 해서 또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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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가 들면 들수록 수익이 늘어난다는 이 신묘한 아편과 깡통의 최대효용의 법칙 아래에서 아편과 깡통의 궁전은 으리으리하게 지어진다.


아래의 부를 일군 청퀭퀴 (정타이핑의 아버지)

그 부가 어느 정도로 부풀려졌는지를 훑는 대목에서 천정을 보고 허허 웃고 말았다. 20세기 초반, 수마트라 북부의 명문 화인(華人) 가문의 총아피(張阿輝)의 딸 퀴니 창이 페낭의 최대 부자 가운데 하나인 청타이핑(鄭太平)의 집을 방문한다. 나름 공주같이 자라난 퀴니 창이었으나 그녀는 그만 질투를 느낄 만큼의 부유함에 압도당한다. 그 중 한 풍경. 청타이핑의 부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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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바다 밑에 식당을 두도록 디자인했지. 남편은 물고기들과 어울려 식사를 한다면 우리의 따분함 (와 맙소사)이 덜해질 것이라고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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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식당은 바다 밑에 지어져 있었다. 유리 돔 위에서는 물고기들이 노닐었고 그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식사하면서 ‘따분함’을 잊었다는 것이다. 무려 1909년에. 20세기 초반에 이런 ‘돈지랄’이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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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수많은 걸물 중국인들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빈털터리로 바다 건너온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그 중의 소수는 엄청난 부를 일구었고 그들은 기존에 동남아에서 무역으로 먹고 살던 중국인들과는 또 다른 부류였다. 그들은 변발을 했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청나라 관복을 입고 관을 쓰며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하는 것 같았지만 본격적으로 불어닥치는 제국주의와 또 하나의 ‘궁전’을 짓게 될 ‘악마의 밀크’ 고무 산업이 도래하면서 또 다른 부침을 겪고 몇 번씩이나 그 위상과 성격을 수정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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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대한 역사를 어찌 책 한 권에 담을 수 있겠으며 이 책 한 권으로 대충 짐작을 했다 오만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장님이라 해도 코끼리를 만져야 코끼리를 실감할 수 있고 여기저기 만지면 코끼리의 윤곽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는 나에게 별안간 들이닥친 코끼리였다. 일단 코끼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또 다른 면을 만지고 싶고 쓰다듬어 보고 싶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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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낭 최초의 중국인 이주자이자 실력자로서 역사에 기록된 코라이환(辜禮歡, ?~ 1821)의 증손자 중 하나인 고홍명(辜鴻銘,1857~1928)은 아홉 개 언어를 구사하며 철학과 문학 등 13개 학위를 딴 뒤 페낭으로 돌아왔고 그는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중국으로 가서 북경대 교수로 중국학을 연구한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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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서남북인이다. 남양에서 태어나 서양에서 공부하고 동양에서 결혼하여 북양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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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어이없도록 광범위한 사람을 보면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임진왜란 이후 강화도 조약 이전까지 한반도의 나라와 백성들은 세계사적으로 가장 고립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우리 근대사에 이런 사람이 있을 리 없었던 것은 운명일까 선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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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각국은 이미 밀려드는 서양 세력과 아웅다웅하며 싸움도 하고 협상도 하며 그 실체를 이해하고 있었고 중국은 주변부에서는 수백 년 동안 교역을 진행하고 있었고 서양인들과의 인적 교류도 상당했다. 쇄국을 내세우면서도 데지마 상관을 유지하고 네덜란드인들로부터 꼬박꼬박 국제 정세를 익혔던 일본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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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독 그 시기, 서세동점이 본격화되기 이전 조선 사회만큼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는 행복(?)을 누렸던 곳이 조선 말고 또 있었을까. 그때껏 자신들이 쌓아놓은 상식(?)의 벽 안에서 ‘아편과 깡통의 궁전’이 아닌 ‘쌀과 무명의 오두막’을 짓고 그 안에서 안분지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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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역사는 간단하지 않다. 역사 교과서에 몇 줄 남는 사람과 사건은 대개 수십만 명의 피와 눈물과 땀의 결과이기 일쑤고, 그 수십만의 이름과 삶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요 무대인 페낭에 가 보고 싶다. 그곳의 ‘궁전’에 남아 있다는 화려한 유물들과 콜렉션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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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해도 아들 녀석이 열심히 보던 일본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현자의 돌’들을 구경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만화 속 현자의 돌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피를 재료로 만들어졌으니까. 아편과 깡통의 궁전이 쿠울리들의 뼈와 살로 지어졌듯이.

<산하의 오책> 동남아시아로 간 중국인들 - <아편과 깡통의 궁전을 읽고>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