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 스팀 떡상 가즈아(내용과 무관)

sadmt(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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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본 최고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본 얼티메이텀이었다. 인피니티 워를 보고 나서는 두 영화 중 어느 쪽에 점수를 더 줄지 고민했으나 둘 다 5점 만점에 4.9점을 주기로 했다. 스토리의 배치와 밀도, 액션의 독창성, 눈물에 호소하지 않는 담백함, 사뭇 진지한 전개 등 내 기준에서 나무랄 데 없고 군더더기 없는 영화들이다.
아내는 첫째 아이가 보고 싶어 한다며 인피니티 워를 소장용으로 구매했다. 덕분에 나도 복습 차원에서 보게 되었다. 극장에서 봤을 때 지나쳤던 디테일이 보여서 나름 깨알 재미가 있었다. 타노스 개 멋있...
그런데 말입니다. 타노스는 왜 반띵 정신을 구현하고자 애쓴 것일까요... 그것도 자원의 유한함까지 거듭 강조해 가면서 말입니다...

2
약 1년 전부터, 이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던 때부터 책을 보지 않았다. 새로운 가게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고 올 1월 스팀잇에 가입한 것이 더욱 책과 멀어진 계기가 되었다. 후후! 당연히 핑계다. 가게 일을 나름 열심히 하긴 했다. 일의 특성상 늦은 퇴근 시간 때문에 자기 전에는 스팀잇만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틀리지 않다.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 나이 들어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두 번째 임무는 해골 바깥으로 증발해 버리기 일쑤다.
가게 일은 이제 매너리즘에 빠질 정도가 되었고 다들 느끼다시피 스팀잇도 시들해져서(다시 흥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음) 요즘 시간이 남는다. 멍때리기를 좋아하기는 해도 그건 휴식의 의미지 뭐라도 할 게 없는 지루한 시간은 참지 못한다. 까탈스러운 건가? 뭘 해도 하나밖에 못 하고 지루한 건 못 참고.
1년 전에 보던 책을 들췄다. 절반쯤 읽었구나. 이 책이 1년 이상 가방에 있는 이유는 언젠가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발로라기보다 꺼내놓기 귀찮은 것뿐이었다. 무게추로 사용해서 가방이 가볍게 춤을 추는 것을 방지하는 의미는 있겠다.
'요세푸스와 신약성서'라는 책이다. 요세푸스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물이지만, 예수 전후 시대 신약성서 외 극도로 부족했던 유대 텍스트를 보충한다는 점에서 그의 책은 가치가 매우 높다. 신약의 사실관계를 일부 확인해 줄 뿐 아니라 각 복음서의 상충하는 논점들을 그의 책을 통해 비교 연구할 수 있다. 또한 신약에서는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하는 유대 각 종파에 대한 서술도 역사서답게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요세푸스 자신 앞뒤 안 맞는 설명으로 연구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교양과목 교과서로 채택할만한 자세한 설명에서 지은이의 학문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다. 책은 재미있어야 해! 그러니까 재미없는 책을 피해 다니는 동안 스스로 합리화할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걸 언제 다 보나. 얇은 책인데...

3
어린이 드라마를 촬영한다고 장소를 섭외해 왔었다. 월요일 아침 7시에 촬영하러 오겠다고 해서 6시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이른 아침을 달렸다. 요식업계에서 그 시간은 꼭두새벽이다. 오전 촬영만 예정되어 있었는데 오후가 지나도록 나갈 생각을 안한다. 윗선에서 대관료도 받기로 하고 전화 통화도 여러 번 했으니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들어와서 뭉개는 전략이다. 2층에 분장실까지 차려 놓았다. 오전 내내 사람들은 불나게 왔다 갔다 하는데 정작 촬영은 마을 근처에서 하더라. 오후에야 가게 앞에서 찍었고 가게 안에서는 맨 마지막에 찍었다. 죄송하다는 말과 계면쩍은 표정만으로 넘기기에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명색이 레스토랑이었던 우리 가게는 하루 동안 치킨집이 되었다. POP 물을 제작해와서 가게 안팎을 도배했는데 치킨집치고는 좀 럭셔리 한 거 아냐?

4
쉬는 날이라 느즈막하게 일어났다. 커피 생각이 나서 세수도 양치도 안 하고 개더러운 폼으로 편의점에 들렀다. 날씨가 기막히게 좋아서 파란 하늘에 구름 둥둥 떠 있었고 햇볕은 가을처럼 따끔거렸다. 그늘에 숨은 바람이 간질거렸다.
'잠자리 찾아올 때가 되었네..'
라고 생각한 순간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지나갔다. 비 그치니 하룻밤 만에 가을이 왔나 보다.
'한 마리 더 보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 또 나타났다. 오늘은 운수대통한 날인가 했지만 이번엔 잠자리만 한 노란색 말벌이었다. 근데 요놈이 집 앞까지 쫓아온다. 힐끗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편의점 길 건너편에는 경사진 호박밭이 풍성하게 결실을 맺고 있었다.
'저 호박잎 따다가 쪄먹으면 맛있겠는걸. 몰래 몇 개 따서 쌈장을 찍어볼까..'
말벌에 쫓겨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는데 빨간색 난간에 삶은 호박잎 한 장이 곱게 펼쳐진 채로 올려져 있었다. 뭐, 뭐냐????
여름에 그렇게 기운이 없더니 올가을 돗자리 깔라는 계시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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