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황금 같은 휴가를 보냈다. 우리 가족은 연천 어느 골짜기로 떠났다. 휴가 준비는 아내가 맡았다. 일의 특성상 늦은 시간에 퇴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하고 바리바리 싸 들고 가는 것을 싫어하다 보니 최대한 가볍게 준비하기로 했다. 아이들 입을 옷가지들, 아이들 쓰는 물총, 튜브, 아쿠아 슈즈, 아이들 먹을 과자와 간식, 아이들 읽을 책 몇 권 등만 준비해 놓고, 출발하면서 마트에 들러 먹을거리를 샀다. 이번에는 바비큐도 안 하기로 하고 양념 된 채로 판매하는 불고깃감을 주로 샀다. 모자란 건 다 사 먹기로 했다. 무더운 날씨에 바비큐 안 하기로 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너무 가볍게 준비한 나머지 코펠을 빼먹었다. 우리가 예약한 곳은 전통의 민박! 가재도구는 아무것도 없는, 방만 제공해 주는 곳이다. 다행히 tv와 에어컨은 있었다는...
한 달 전부터 휴양림 예약 좀 하라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놓치고, 물이 있는 곳을 찾다가 휴가 떠나기 이틀 전에 예약했던 곳이었다. 나무젓가락 한 봉지와 종이컵 한 줄로 모든 가재도구를 대신해야 했다. 그러나 컵밥에 들어 있는 일회용 스푼도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하고 인심 좋은 민박집 주인 할머니가 빌려주신 28cm 웍이면 한끼 식사가 충분했다. 물론 가스렌지도 빌려야 했고 햇반을 덥히기 위해 전자렌지도 수시로 빌려 써야 했다. 친절하게도 가스렌지에 필요한 부탄가스는 손님들이 쓰다가 남은 것들을 빌려주셨다. 그러니까 그냥 가져다 썼다. 2박 3일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일회용품 쓰레기가 잔뜩... 인지부조화라는게 알고 보니 별거 아니었다.
난 식사 때만 잠깐 고기를 볶든가 물을 끓이든가 하고는 거의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첫날 물에 잠깐 발만 담그고 말았다. 잠 자고 핸폰 보고 tv 보고 밖에 나와서 한 대 피우고, 그렇게 2박 3일을 때우는데 왜 이리 좋은 걸까.
첫날 집에서 연천으로 향하는 37번 국도의 하늘이 무척 예뻤다. 파란 하늘에 솜뭉치들이 흩어져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하늘 풍경이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운전 중이어서 눈에만 담았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민박집에서 보이는 좁은 하늘을 찍어봤다. 37번 국도에서 본 그런 와이드한 풍경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
사진 찍은 게 몇장 없어서 나뭇잎이라도...
이 민박집은 백숙, 닭볶음탕 같은 것들도 팔고 있다. 여름이면 한 번씩은 가봤던 물가 평상이 있는 유원지다. 근데 백숙이 좀 예술이었다. 역시 이런 건 느닷없이 당해야 기쁨이 두 배가 된다.
두메산골이라 그런지 해 지고 나면 선선하다기보다 그냥 깜깜했다. 불볕더위는 이런 산골도 비껴가지 않았다. 선선할 줄 알았는데... 에어컨 켜 놓고 잤다. 아이들은 실컷 물에서 놀고 나는 실컷 아무것도 안 하고 아내도 아무것도 안 하고... 정말 유익한 휴가였다. 마지막 날 민박집 할머니의 딸은 뭐 이런 대책 없는 가족이 다 있냐는 표정에다가 웃음을 더해서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