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베클리 테페>
요컨대 학계와는 달리 초고대 문명의 존재를 예전부터 주장했던 역사 저널리즘
쪽은, 비록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고도의 하이테크 문명은 아니지만, 요즘 자신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에 뿌듯해 할 듯 하다. 이들이 주장하는 초고대 문명의 시기는 적어도 기원전 1만 년 이전인데 해수면 아래 잠겨있는 유적들과 피리 레이스의 지도 같은 몇몇 강력한 오파츠들이 고도로 발전한 초고대 문명의 근거로 제시되었다. 학계는 그때를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후기 구석기 시대로 분류한다.
농경의 흔적이 시기를 계속 거슬러 오르면서 집단 정주 생활에 의한 문명의 발전 시기도 점차 후퇴했지만, 역사 저널리즘은 실재적인 발굴과 연구 결과로써의 고도 문명이라 부를 만한 결정적 단서들을 내놓지는 못했다. 물론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연구 재료까지
불신 받거나 제외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주류 학계에서 발굴, 연구된 기원전 6000년경의 터키 차탈휘이크 유적과 예리코에서 발굴된 기원전 9000년경의 유적도 문명의 개화 시기를 앞당기긴 했어도 기존의 학설을 뒤집지는 못했다. 문명사회의 여명기를 앞당기다 못해 인류사를 다시 써야 할 지도 모르는 발견은 이전에도 잠깐 이야기했던 터키의 괴베클리 테페 유적에서 나왔다.
정교한 거석 문명이었고 무려 기원전 1만 년 전의 것이다. 유수의 전문 고고학자들이 내놓은 연대라서 재론의 여지가 없다. 스톤헨지가 기원전 3000년경의 유적이고 이집트 피라미드가 기원전 2000년 대의 유적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발견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 유적을 사용했던 사람들은 유적을 일시에 흙으로 덮었는데 이 때문에 흙 속의 유기물을 대상으로 하는 정확한 탄소 연대 측정이 가능했다. 거석 유적은 돌 자체만으로는 연대 측정이 불가능하다. 탄소 연대 측정은 돌에 묻은 유기물을 분석하여 그 시기를 가늠한다. 방치된 돌덩이에는 여러 세대에 걸쳐 유기물이 달라붙기도 하고 이것은 정확한 연대 측정을 방해하기도 한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인위적으로 덮였기 때문에 유기물에 의한 신뢰할만한 연대를 얻을 수 있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 유적의 다른 부분은 그 건설 시기가 더 오래전으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T자형으로 깎은 거석에 수십 가지의 정교한 동물 모양을 조각해 놓았고 일반적으로 신전이었다고 정리되고 있다.
학자들은 수렵과 농경을 병행하던 농경 사회 초입의 문명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농경 사회든 수렵사회든 괴베클리 테페가 갖는 의미를 축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축구장 8개가 들어가는 규모의 넓이에 정교한 문양을 넣은 수 톤에서 수십 톤 거석이 수백 개라면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대규모로 집단생활을 영위했고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가진 최고 지도자가 있었다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석 문명이 발달할 수 있었던 그 이전의 프로토타입이 있었으리란 것도 두말하면 잔소리다.
♡ 어뜨케,,, 어뜨케 끝낸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