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태어난 사람은
모래 언덕 뜨거운 감촉을 잊지 못하고
가시 덮인 키 작은 관목 숲을 보고 자란 사람은
황무지의 바오밥 그늘보다 안락한 잠자리를 알지 못한다
덤프트럭에서 자갈 한 개 떨어졌다
동그랗게 다듬어 주던 물길
어루만짐의 강을 떠난 돌멩이는
차에 치이고 발에 채이면서 몇 번의 고비를 넘길까
제 발로 돌아가지 못하는 단단한 그 마음이 슬픔 아니겠는지...
내 본적은 공덕동 꼭대기 아파트
풀 한 포기 없는 고향이 그리울 리 있겠나
예멘에서 아이들을 태운 버스가 공습을 받아 50여 명이 죽고 70여 명이 다쳤다. 12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번 공격은 사우디와 그 연합군이 저지른 일이다. 예멘은 몇 년째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내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의 양상은 예멘 정부군이라 불러야 마땅한 안사룰라와 사우디 중심의 연합군과의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사우디는 눈엣가시 같은 안사룰라를 금방 제거할 줄 알았겠으나 오히려 반격까지 받으며 몇 년째 고전하고 있다. 더불어 사우디의 예멘 민간인을 향한 공격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오폭이라고 항변하지만, 오폭이 아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안사룰라를 국민으로부터 떼어내려는 심리전이다. 달리 말하면 공포를 조장하는 방법 외에는 가용수단이 없다는 얘기다. 이란만이 예멘을 지지하고 있고 나머지 중동 국가들은 중립 아니면 사우디 편이다. 여기서 중립이란, 예멘이라는 약자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것이므로 사우디와 같은 편이라 말할 수 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저 냉혹할 뿐이다. 미국은 어느 쪽일까. 조금 금이 갔다 해도 사우디는 전통적 우방이고 이 기회에 무기를 팔아먹을 수 있으며 중동 정세가 안정되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환영할 일이 아니므로 중립처럼 보이는 미국도 사우디와 한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다.
아이들 돌팔매 싸움처럼 니편 내편 가르는 것이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이 미치는 영역에 선택과 암묵적 선택은 있어도 중립은 없다. 약자를 편드는 쪽이 있으면 약자를 편들지 않는 나머지는 모두 강자의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도 예멘의 반대쪽에 있는 것과 같다. 예멘이나 시리아의 난민이든, 기아에 허덕이는 소말리아의 어린이든, 단돈 얼마라도 기부하고 있지 않는 나 또한 약자의 반대편에서 우쭐대고 있는 것이다.
유니셰프를 포함한 세계적인 구호 단체나 작게는 우리나라의 결식아동 돕기 캠페인이나, 나는 조금 불편하다. 선택하지 않으면, 편들지 않으면, 즉 돕지 않으면 등을 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 구호 활동의 순수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조금씩 덜어내서 돕자는데 사심이 끼어들지 않는 한 반대할 사람이 어디있을까.
어떤 프로파간다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내 이분법적 사고가 원망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