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평생 나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라기 보다 운전 면허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포터를 겸한 운짱이 되어야 한다.
운전 중 덤프트럭이 옆으로 지나가면 아내는 악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내 머리털은 곤두선다. 겁이 많은 데다 비명이 생활화되어 있어서 옆에 있는 사람은 마음의 준비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순간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 받게 되면 머리털이 곤두서는 쭈뼛한 경험을 해야 한다.
그래도 요 근래 내가 귀찮아서인지 면허증 취득 의지를 내비친다. 넌 겁이 많아서 운전해서는 안된다고, 토사구팽 당할까봐 두려운 마음을 담아 은근히 말렸다. 운전까지 빼앗기면 내 인생 남는 게 없다.
"아이들 여권 만들러 파주 시청에 가야돼"
ㅋㅋ
난 약간의 멸시와 우월감의 눈빛을 날렸다. 돌아오는 반응이야 매 번 똑같다.
그렇게 좋냐..
이런 표정이다. 눈빛과 표정만으로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어야 진정한 부부라 할 수 있다.
파주 시청 가는 길은 길어야 30분 남짓이지만 얼굴만으로는 불가능한 다소 긴 문장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첫째는 학교 생활 잘 해?"
첫째 아이는 붙임성이 떨어지는 편이라 늘 걱정이 앞선다. 간난쟁이였을 때, 업혀 있는 걸 내려 놓으면 그대로 움직이지도 않은 채 눈만 멀뚱거렸고 방에 앉아 족발을 먹으면 내 발목에 턱을 괴고 누워 역시 눈만 멀뚱멀뚱 쳐다보던 놈이었다. 어디 붙어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친구들에게 붙는 건 싫은 모양이다. 아내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사춘기의 영향인지, 다행히도 자아를 찾는 긴 여행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청에 들리기 전 점심을 먹기로 했다. 파주 시청 근처의 보배집이라는 육개장 집이다. 이 근처에 올 때 한 번씩 들리기도 하고 해장국이 생각날 때 일부러 찾기도 한다. 백종원의 3대천왕에 출연하여 단숨에 육개장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를 뻔 했던 집이다. 오매불망 해보고 싶었던 먹스팀 포스팅에서 차후 맛과 분위기를 전할 예정이다.
여권 사진이 필요해서 전날 사진관에 들렀었다. 역시 운전자의 도움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출중한 운전 솜씨와 여유로운 주차를 뽐낸 후 아내는 아이들과 사진 찍으러 들어갔다. 나는 그 동안 부대찌개를 포장해 오기로 했다.
이것도 맛있는데...
포스팅 거리가 줄을 서는구나..풉
출력된 사진에는 첫째가 희멀건하게 나왔다. 어색한 표정에다가 목이 길게 찍혀서 뽀샵질을 심하게 했단다.
첫째에게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냐?"
이랬더니 화를 낸다.
"사슴을 표현한건데 옛날에 유명했던 시야."
이렇게 말해 줘도 통하지 않는다. 중2 교과서에는 아직 안나오는구나 하고 말았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과의 대화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체감한다. 대화라기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에 <&%:%을 #%^양코대전쟁₩&*"
저녁 식탁에 둘러 앉아 게임 이야기를 하는 첫째와 둘째의 대화 내용이다. 양코대전쟁이라는 말은 알아 들었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파주 시청에 들러 아내는 민원실로 직행하고 나는 주차 후 따라 들어갔다. 아내는 예쁜 글씨로 또박또박 신청서를 작성했다. 미리 준비한 국제 규격식 영문 이름도 작성하고, 나는 네모 안에 비뚤어지지 않게 사진을 붙였다. 너무 정성을 다한 나머지 미리 뽑은 대기 시간표를 지나쳐 버려 한 번 더 뽑아야 했다. 그렇다고 오래 기다린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들은 면접 심사관처럼 꼼꼼하게 확인 하는 듯 했다. 우리 차례에서 아내는 당당하게 신청서를 제출했고 잠시 후 개무룩하게 돌아왔다. 나는 우리들의 대화법으로 아내를 응시했다.
"퇴짜 맞았어."
"왜에?"
당황스러워 물었다.
"뽀샵질을 많이 해서 여권 사진으로 쓸 수가 없대."
"헐.."
"사진관 가기 전에 여권 사진 되냐고 물어봤었거든. 분명히 된다고 했단 말이야. 아니 여권 사진 찍어 봤다는 사람이 뽀샵 하나 적당히 못한다는 게 말이 돼? 아 짜증나. 언제 가서 또 찍어. 내가 전화해서 다시 찍어 달라고 할테니까 자기가 애 데리고 가서 내일 다시 찍고 와. 아, 내일 자기 일 나가지. 어떡하지...."
점심 먹고 오길 잘했다. 아내는 배고프면 인성이 변한다. 나는 아내의 허기와 짜증을 동시에 감당할 수 없다.
미세먼지가 적당히 드리운 따뜻한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 그 미세먼지 속으로 아내의 푸념이 연달아 흩어졌다.
"창문 좀 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