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에 적성검사라는 게 있었다.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할 때 자신이 어느 쪽에 적합한 뇌 구조를 가졌는지 알려주는 검사였다. 문과와 이과를 나누어서 점수로 보여주는 것이라 요즘처럼 복잡하거나 세밀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고2부터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 배우는 과목도 달라지고 대학에 지원할 학과도 달라졌다.
나는 거의 비슷한 점수를 받은 특이한 경우였는데 양쪽 모두 높은 점수였다면 모를까 그냥 고만고만한 낮은 점수였다. 머리 안에 저밀도의 뉴런 조직이 나름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적성검사 점수가 불과 2점 높아서 이과를 선택했다. 비루한 이유를 덧붙이자면 영어가 싫어서였지만, 그 당시 대입 시험에서는 이과나 문과나 영어 점수의 비중이 똑같았다. 암기 수면증이 암기 과목을 멀리하게 만들었고 단지 영어가 한 몫을 거든 것뿐이었다. 그때 불이님만 알았어도...
중1 때 예쁜 지리 선생님을 만나서 1년 내내 지리 과목을 거의 100점 수준으로 받아본 이후로 암기 과목은 지리멸렬해졌다. 이과를 선택하고 고2에 올라와 암기에서 해방되나 싶었으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교과서를 받고 보니 생물, 지구과학, 화학, 전부 해롱해롱한 암기 과목이었다. 그때부터는 수학조차도 암기 과목의 반열에 올라서서 심신을 어지럽혔다.
화학을 담당하신 젊은 여자 선생님을 설명하자면 그 다양한 특성을 나열해야겠지만, 이런 말 하면 안 되겠지만, 어디 가서 '잘 생겼네' '예쁘네(괜한 오해 살까 봐 요즘은 안 한다)' 말은 해도 이런말은 잘 안 하는데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는 없고, 죄송스럽지만, 정말 못 생기셨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나는 이 분 덕에 화학을 좋아할 수 있었다. 열정적이면서도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주셨고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다. 원소기호 20번까지를 각자 아는 노래에 맞춰 가사 대신 부르게 하셨는데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제대로 부를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너희가 영어권에 사는 사람이라면 번호만 외우면 되는 것인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영문 기호와 번호를 함께 외워야 한다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그분은 화학이 재미있는 과목임을 알게 해 준 선생님이셨다. 화학 시간은 교과목 중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겨우 1, 2주였을까. 학기 시작 후 내 기억으로 적어도 한 달을 넘기지 않는다. 선생님은 일본으로 훌쩍 유학 가셨다.
후임으로 오신 분은 착한 선생님이었지만 화학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게 했다. 그 선생님의 설명은 1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한 시간이 길고 지루했다. 그래서 그 선생님 시간에는 고개를 숙이고 혼자 화학을 공부했고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전체 과목 1등이 아니라 화학만 1등이다. 다른 과목은 말할 수 없으니 이해해 주시길... 고3 대입 원서를 작성하던 날 담임 선생님은 어느 학교에 지원하고 싶냐고 물어서 나는 화학과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럼 이 학교가라.
네.
대입 시즌이 다가오면 높은 진학률을 원하는 선생님과 더 좋은 대학을 원하는 학생(학부모)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원만하게 합의되지 않는 경우 격하게 대립하기도 하고 결과는 학생이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이은 상담과 실랑이로 피곤해 진 선생님께 나는 쉴 시간을 드렸다. 그리고 무사히 화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화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단 한 번도 화학 관련 일에 종사해 본 적 없었어도 그 대학에서 나는 삶의 지표를 다시 쓸 수 있었다. 내 심장의 펌프질은 나침반처럼 여전히 한 곳만을 향하고 있다.
인연의 무게를 재는 저울에 평형이란 있을 수 없다.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내 인생을 바꾼 화학 선생님에게 나는 깃털보다 가벼운 존재이지만 그 선생님은 한없이 깊은 발자국을 내게 남겨 주셨다.
인연을 더듬다 보면 그것이 운명의 다른 이름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