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 선사 문화의 이해란 책을 보고 있는데 수백만 년 전의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비교적 최근까지의 문명의 발달에 대한 고찰이 망라된, 지은이의 식견이 돋보이는 책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영장류 이후의 세계를 조망하는 초중반 부는 특히 인상 깊다. 전 세계에서 출토되고 있는 석기들이 인류의 인식 발전과 더불어 얼마나 정교해졌는지도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 책에 괴베클리 테페 유적이 짧게 요약되어 있다. 발굴과 연구가 진행 중이라 말을 아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간단히 짚고만 넘어간 건 많이 아쉬운 대목이다.
괴베클리 테페는 시기적으로 후기 구석기 시대의 문명이다. 이 문명이 오랜 기간에 걸쳐 흥망성쇠를 겪은 후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서도, 우리가 배운 신석기 시대는 시작도 안 한 채 출발선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몸을 풀고 있었다.
내가 궁금한 건 다음과 같다.
학자들이 괴베클리 테페 거석 문명을 기원전 1만 년으로 특정하였다면 이 돌들을 어떻게 가공하였을까. 무른 석회암이라고 해도 돌로 돌을 육면체로 깎고, 돌로 돌에다 정교한 문양을 새길 수는 없다. 가장 빠른 청동기 문명이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 문명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메르 문명이다. 한때 세계 최초의 문명으로 주목 받았으나 그 영광은 오래전에 빛을 잃었다. 그렇지만 문자의 발명과 금속의 발견은 아직 이들의 몫이다. 청동기가 금속이라고는 하지만, 이것으로 돌을 다듬을 수 있을까.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기원전 1만 년과 기원전 3500년의 시간의 간극을 메울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이것을 설명하지 않고서 기존 석기 시대의 분류만을 고집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조금 정교한 주먹도끼로 때려서 거석을 조각했다고 우긴다면 몰라도...
또 한 가지는 그 당시 인류의 집단생활이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다. 국가급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조직과 인원이 있어야만 이런 문명의 건설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정주 생활을 하는 대규모의 집단이라면 먹거리는 농경을 통해 해결했을 가능성이 높다. 농경 생활이 가져다주는 장점이 수렵, 채집에 비해 별무신통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지만, 좁은 지역의 과밀한 인구는 대부분, 자의든 타의든 곡류의 재배로 연결되었다. 이집트에서도 기원전 1만 년경의 유적에서 곡류의 재배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얘기를 예전에 본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탄화 볍씨 흔적이 발견되었으니 우리 예측을 넘어서는 대규모 농경이 그다지 믿기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극 최신의 연구를 접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괴베클리 테페의 거석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와 인력에 대한 연구가 선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렇게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이해 불가해 보이는 문명의 흔적이라면, 석기 시대의 끝자락이나 도시 국가 출현의 시대는 한참 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선언하는 정도의 융통성이 먼저 발휘되어야 한다.
안녕하세요 스티미언님들!! 프로댓글러가 되고 우부입니다. 굿모닝! 스티미언님들❤ 화요일날 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