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소유물 중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을 2개 선택하려 이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쓰시오. 라는 물음에 단번에 생각나는 물건은 사실 없었습니다.
보통 저의 또래 남자들이 좋아하는 자동차도 일찍이 소유해보았지만, 서울에서 겪는 주차 스트래쓰와 차량에 쓰게 되는 상당히 비효율적인 시간과 금전적인 부분에 지쳐, 4년전에 타던 차를 아버지를 드렸고, 정말 가지고 싶은 ‘내 집’은 아직 먼 미래의 꿈같은 이야기로 가지고 있으니, 딱히 생각나는 물건이 없었습니다.
꼭 하나를 찝어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물건이 없었지만, 저에게 특이하게도 남들보다 상당히 큰 지출과 신경을 쓰는 2가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특정한 한 가지가 아닌 제가 평소에 좋아하고, 지출을 아끼지 않는 혹은 특이하고 과도하게 지출을 하는 것 먼저 접근을 하니 생각나는 물건에 접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은 ‘양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검은색 ‘비비안 웨스트 우드’의 양말입니다. 색은 검은색이라고 얘기 했지만, 사실 가장 많이 들어간 색이 검은색이고, 빨간색, 녹색, 노란색, 빨간색 의 타일처럼 파티션을 나누었고, ‘비비안 웨스트 우드’의 로고인 ‘우주선’ 모양이 양말 한쪽당 3개식 들어 가 있습니다.
아마, 흔히 말하는 명품이나, 브랜드 혹은 패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양말을 보고, 바로 알아 볼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아주 특이한 ‘취미’와 ‘소비’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양말’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신체에서 가장 ‘청결’과는 거리감 있는 부분인 발을 보온하고, 보호하는 ‘양말’에 저는 과도하게 지출을 하고 수집을 하고 집착을 합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물건중 하나라고 말하는 비비안웨스트우드의 검정 양말은 잘 기억은 안나지만 10만원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제가 신고 있는 양말의 가격대도 비슷비슷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1,000원~3,000원 가량의 양말을 신는거에 비하면, 엄청나게 과도한 소비를 하고 집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양말에 저는 소비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샌가, 저에게 어느정도의 경제력 여유가 생기면서 하나씩 제 자신에게 양말을 선물해주던 습관이 20대중반 어느날부터 생겼습니다.
그 이유를 서술하자면 아무래도 저의 10대후반 시절과 20대 초반의 시절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또래 친구들과 전혀 다른 순서로 성장을 했습니다. 보편적인 대한민국에서 성장하는 친구들과 전혀다른 성장의 길을 걸었습니다. 표면적인 몇가지를 설명하자면, 중학교 시절 호주로 조기유학을 떠났었고, 17살 때 이미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끝낸상태였고 18살 때 처음 ‘대학’ 이란 곳을 입학을 하였고, 한 학기를 채 채우지 못하고 자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가 아닌 직업이 생긴 나이도 18살 때입니다.
꾀나 풍족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다가, 갑자기 가세가 기울어져 또래 친구들보다 사회에 일찍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겁니다.
21살때부터, 23살때까지 였습니다. 그 2년동안 저는 대한민국 남아라면, 꼭 해결해야 하는 의무인 군복무를 하게 되었는데, 어쩌면 다른 분들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군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사회인들과 비슷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방위산업체’에서 군 대체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경제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월급은 들어 갈 곳은 이미 정해져있고, 경제 생활을 하면서도 너무 빠듯한 생활을 하게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 저는 500원짜리 양말 하나 살수 없는 형편으로 2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겨울에 저의 양말을 보고, 가장 친한 친구 녀석이 시장에서 양말을 한 가득 사다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난답니다.
그 때 그 시절이 너무도 힘들었던지, 아니면 저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은건지 어느샌가 저는 저에게 ‘고가’의 양말을 선물 해주기 시작하고, 지금은 디자이너의 양말외에는 신지 않게 되었습니다.
보편적인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신발보다 비싼 양말을 신고다니는 저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주변분들이 아직 꾀나 있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 저의 주변분들은 저의 이런 양말에 대한 집착을 그럴려니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런 집착을 가지고 있는 양말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검정 비비안 웨스트 우드 양말은 특별
한 계기로 제가 구매를 하거나 선물을 받은건 사실 아닙니다.
3년 전쯤 오키나와 여행에서 들렸던 한 백화점 1층에서 눈에 번뜩 뜨여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충동구매로 구매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양말인 이유는 이상하게도 이 양말을 신을 때 면이 닿는 기분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면수도 상당히 좋은 것 같습니다.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품질도 꾀나 우수해서 정이 가는 양말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약속장소나 행사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이 양말을 신고가는 일이 잦아지고, 좋은 일도 꾀나 같이 겪은거 같아 양말에 애정이 꾀나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른 더 정감가는 양말을 만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양말로써 위치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제가 생각나는 물건은 의미를 부여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바로 형의 박사학위 증명서입니다.
저의 박사학위도 아닌, 형의 박사학위 증명서가 저의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 중 하나라는 사실에 또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괜시리 많을 것 같습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저의 삶의 순환이 보편적인 남들과는 꾀나 다르게 흘렀습니다.
이른 경제 생활의 이유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 은 홀로 외국에서 덩그러니 있었던 저희 형의 존재가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시기에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서, 홀로 타국에 있는 형의 생활비 및 학비를 부모님께서 보내주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고, 조기유학을 떠났던 저희 형제는 자립심이 강한 편이라 부모님의 도움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꾀나 큰 문제이긴 하였으나, 문제 해결을 우선적으로 생각해고 행동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타국에 홀로 지내는 형이 가장 큰 걱정 이였습니다. 형은 유학길을 떠나면서, 학업도 중간에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오기엔 상당히 큰 위험요소가 있었고, 호주에서 모든 적응이 끝난상태라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다시 적응을 해야하는 상황이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형의 학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고, 저 또한 형의 학업이 잘 마무리 되기를 매일 바라며 지내왔습니다.
그렇게 저의 10대 후반과 20대 중후반은 형의 학비와 형의 학업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압박감이나 의무감이 생겨서 한 것은 아니고,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린시절 워낙 공부에 뜻이 없던 형이 어느샌가 꾀 좋은 조건으로 엄청 이른나이에 박사학위를 받게되는 기적같은 일도 저에게는 생겼습니다.
20대후반의 나이에 형은 지금 가장 유망한 업종 중 하나인 빅데이터, AI 전문가로써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귀국을 하였습니다.
중간에 한국에 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호주에서 한국까지 한 번이동에 드는 비용이 꾀나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저는 10여년만에 형을 형의 박사학위와 같이 만나게 되었던 겁니다.
사실 귀국의 뜻도 박사학위가 아닌, 공부가 끝난 형이 나라의 부름인 군복무 의무를 해야만 하였기 때문에 귀국길에 오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형의 박사학위를 보는 순간 저는 저의 남달랐던 20대를 모두 보상받은 기분이 였습니다.
어쩌면 형의 박사학위는 온전한 저의 물건이 아닐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물건 보다 저에게는 값비싼 종이 한 장입니다.
아마도 제 또래의 친구들은 중학교를 들어가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또 졸업하고, 그리고 대학을 갔다가 남자인 친구들은 군복무를 하고,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는 그렇게 하나한 만들어가고 성과도 하나식 눈으로 만나기도 하였을거라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그 성과물이 형의 박사학위 증명서였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공허하게 시간을 보낸 것 같은 저의 20대를 증명해주는 증서 였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항상 웃으면서 하는 농담이 있습니다. 형은 고작 박사학위를 받아서 박사가 되었지만, 저는 박사를 만들었다고, 그래서 제가 더 대단하다고 합니다.
이런 농담도 할 수 있게 만들어준건 순전히 형의 저 박사학위 증서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은 전문연구요원으로 군대체 복무를 하는 저의 형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한국생활에 하루 하루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도 한 장의 종이 덕인 것 같아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물건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소유욕을 일으키거나, 남들에게 큰 관심을 끄는 물건이 저에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소중하다는건 저의 주관으로 정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