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막바지였던 1987년 1월14일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중이었던 박종철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살해당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우선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로도 기록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출연 배우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 뜨거웠던 80년대를 몸소 경험한 사람들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김윤석, 하정우, 문성근, 유해진, 우현, 김의성, 설경구, 강동원, 여진구, 김태리, 문소리, 고창석, 오달수...
대공처장역의 김윤석과 일간지 편집장역의 오달수는 고 박종철군의 고교 후배이며 치안감역의 우현은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집행부 소속으로 우상호(현 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고 이한열 군의 장례식을 이끌었던 사람이다. 장세동역의 문성근은 문익환 목사님의 아들로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영화 제목만 봐서는 주인공일 것 같은 고 박종철 군의 역할은 여진구가 맡았고 같은해 6월9일 최루탄에 직격으로 맞아 7월에 사망한 고 이한열군의 역은 강동원이 맡았다. 강동원이 극중 김태리를 백골단으로부터 구한 뒤 마스크를 벗는 순간 극장내에는 끝내 탄성이 흘렀다. 모두 주연급의 배우들이 까메오처럼 수없이 출연한 영화는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 딱 한장면에서 버스 위에 올라서 구호 선창을 외치던 배우가 문소리라고 하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엔딩 자막이 올라가기 전엔 필자도 몰랐다!
1987년은 군사독재정권이 호헌(대통령 간접선거제의 당시 헌법을 개정하지 않음)을 통해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마지막 발악을 하던 해였다. 박종철군과 이한열군과 같은 무수한 학생들의 희생으로 호헌철폐(대통령 직선제로의 헌법 개정)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더 이상 거부하지 못하고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가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의 개헌을 수용하는 6.29 선언을 하게된다.
6.29 선언 이후 이제 드디어 이 땅에도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듯하였으나 김대중과 김영삼이 정권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노태우가 36.6%의 득표율로 13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어렵게 대통령 선거권을 얻은 시민들은 군사정권을 연장시키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1987년에 얻었던 그 쓰라린 경험은 매우 오랫동안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2016년 10월29일에 시작된 촛불집회에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지만 그리고 그 결과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혁명으로 이어졌지만 대통령 선거 직전까지도...이번에도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공포는 사실 1987년에 얻은 기억 때문이었다.
나쁜 사람은 원래 나쁜 사람이었나? 좋은 사람은 평생 변하지 않는가?
박종철군이 목숨을 버려가면서 지켜주려했던 선배 박종운은 한나라당으로 갔다. 오늘날 적폐의 최고 대상이 된 이명박은 고대 재학당시 박정희 정권을 상대로 한일 굴욕외교 반대 투쟁을 하던 운동권 학생이었고 김성태 자유당 원내대표는 한국노총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이었다. 김문수는 같이 학생운동을 하던 심상정과 유시민을 목숨을 걸고 지켰던 의리있는 사람이었다. 김무성은 김영삼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하여 1984년 민추협에서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하정우가 분했던 최환 검사가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고 박종철군의 부검을 고집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에서처럼 당시 최환 검사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용기있는 일을 하였다. 하지만 그 또한 수많은 학생들을 용공분자로 몰아 처벌한 사람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고 이한열군의 어머니와 같은 자리에서 그와 마주하는게 아직도 불편했다고 말했다.
그날이 오면...
젊음을 뜨겁게 불살랐던 그들이 원했던 그날은 한두사람의 영웅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닌 평범한 시민들... 그렇게 모인 촛불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걸 지난 겨울에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