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대문 선물해 주신 @marginshort 님께 감사 드립니다.
"혹시...... 그 아가씨랑 아는 사이셨나요?"
덕순은 고개를 모로 흔들었다.
"얼굴만...... 얼굴만 알아요 얼굴만......
아무래도 오며 가며 보이고는 하니까......
이름도 몰랐어요......"
아직도 몸을 떨고 있는 덕순을 바라보며, 영인은 눈매를 좁혔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인데, 꿈에 나타나서 자꾸 말을 한다고?
왜?'
"그럼...... 혹시 그 아가씨가 꿈에 나와서 뭐라고 자꾸 이야기 하나요?"
"자꾸 울어요......
자꾸 우는데...... 울면서 그래요......
피를 돌려줘요...... 피를 돌려줘요......
귀에 잘 들리지도 않도록 작게 말하는데 그게 다 들려요......"
덕순은 다시 몸을 격하게 떨면서 염주를 꼭 그러쥐었다.
"정말 얼마나 소름 끼치는지 몰라요......
그러고 자고 일어나면 온 몸에 기력이 쭉 빠진 것 같고......
다시 자지도 못 하고...... 이러다 죽지 싶어요......"
"에구...... 불쌍한 훈이 엄마......"
옆에서 301호 아주머니가 눈시울을 훔쳤다.
"그...... 경찰 양반, 뭐 더 물어 볼 게 있수?
훈이 엄마 너무 힘들어 보이는데......"
"아, 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힘드신데......"
덕순은 이미 염주를 그러쥐고 계속 뭔가 중얼거리며 엎드려 있었다.
어차피 이 이상은 이야기 하기도 힘들어 보였기에, 영인은 자리를 뜨기로 했다.
"역시."
인재는 전화를 끊고 형식을 바라 보았다.
"그런 에어컨 기사는 없다는데."
"흠."
형식은 머리를 긁적였다.
"둘 다 없다고?"
인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날 A/S 신청한 기록은?"
"그것도 없대."
형식은 피식 웃었다.
"그럼 여기서 A/S 신청한 사람을 찾아야 되는거네?
그건 있을 거 아냐."
"어, 그것도 찾았어."
"누군데?"
"그 죽은 청소부 아줌마."
형식은 혀를 쯧, 하고 찼다.
"젠장."
"그 날 에어컨이 고장 나서 A/S 맡기려고 했더니 그 아줌마가 자기가 신청한다고 했다나봐."
인재의 말에 형식은 작게 박수를 쳤다.
"완벽하게 지웠네."
"그렇지."
후- 하고 한숨을 쉬며 형식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을 구겨 휴지통을 향해 던졌다.
핑그르르 돌며 날아간 종이컵은 휴지통 가장자리에 맞고는 아슬아슬하게 휴지통 안으로 들어갔다.
"그 A/S 기사들 CCTV에 사진 남은 건 없어?"
"있는데 다 못 써. 걔네 모자 쓰고 있어서."
"하하......"
형식은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증거도 완벽하게 인멸 당했고......
연결 고리는 다 지웠고......
보통 놈들이 아닌데."
인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어디서 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나."
형식은 사건 파일을 들어, 처음부터 차근 차근 보기 시작했다.
'몸에 피가 거의 남지 않은 사람이, 계단에서 발견됐다......
사실 제일 이상한 건 이 부분이지......'
"피가 없었던 건가...... 누가 피를 뽑은 건가......
어쨌건 저쨌건 치사량인데......"
인재는 쭈욱 기지개를 켰다.
"형, 그 쪽 건물에서도 CCTV에 남은 거 없다고 했지?"
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 참...... 어렵네."
인재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로 책상을 가볍게 탁탁 치며 말했다.
"지울 수 있는 시간을 너무 많이 줬어."
"이럴 줄은 몰랐으니까."
형식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을 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
이렇게 깔끔하게 일 처리 하는 녀석들이면 분명히 조직일텐데......
더 들어가면 무슨 일 날지도 모르겠는데."
인재의 말에 형식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이미 많이 넘었을지도 모르지.
별로 알아낸 게 없어서 목이 붙어 있는 걸 수도 있어."
"그래도 뭐 드라마 처럼 윗대가리들이 관련 돼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닌가봐.
그런 거였으면 공조부터 나가리 됐을 텐데."
"글쎄......"
형식은 현장에 나갔을 때 적었던 수첩을 들고 다시 한 번 찬찬히 갈겨 쓴 글씨들을 바라 보았다.
벌써 몇 번 째 훑어 보는 수첩이었다.
'빠진 게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빠진 게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젠장할.'
너무 건성 건성 훑어 보고 온 것이 후회가 되는 형식이었다.
'그래도 나름 다 뒤져 봤다고 생각 했는데......'
형식은 그 날, 갑자기 쎄한 느낌에 건물 옥상에서부터 걸어서 내려온 일을 생각했다.
'그 쎄한 느낌이, 그냥 느낌이 아니었을 수도......'
갑자기, 형식은 머리에 뭔가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젠장! 그 때 문이 다 잠겨 있었다고, 사건 당일에 문이 안 잠겨 있었다는 보장은 없잖아!'
인기척에만 신경 쓰다,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린 것이다.
"그 공실......! 그 공실을 더 조사 했었어야 했는데!"
형식이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인재는 형식을 바라 보았다.
"공실?"
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빌딩에 공실이 있었어."
"거기 수사반 애들이 조사 하지 않았어?"
"꼼꼼하게 했겠냐."
'나도 안 했는데.' 라고 말하려다 형식은 입을 다물었다.
"지금 가 봤자 늦지 않았겠어?"
인재가 어깨를 으쓱, 하며 말했다.
"그렇겠지."
형식은 다시 한숨을 쉬며,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한 대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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