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대문 선물해 주신 @marginshort 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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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은 다시 한 번 손에 든 주소를 바라 보았다.
XX 아파트 106동 302호.
"여기네."
영인은 꾸물꾸물한 하늘을 한 번 휙 올려다 보고는, 106동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얼굴에 함박 웃음을 지은 채로 영인이 가져온 공조 서류에 서명하던 감식 과장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쳇. 너구리 같은 영감탱이.'
영감이라고 불리기에는 아직은 나이가 많이 모자란 것 같은 감식 과장 이었지만, 영인에게는 별 상관 없는 일이었다.
감식 과장을 위해서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손톱 만큼도 없었지만, 어쨌든 이걸 해결 해야 안 그래도 최악인 업무 환경이 조금 나아질 것 같은 영인이었다.
"후딱 후딱 가 보자!"
지은지 꽤나 되어 보이는 아파트는 입구 문 부터 낡아 보였다.
101호와 102호 사이에는 때가 많이 탄 엘리베이터가 느릿 느릿 움직였다.
'걸어 올라갈까......'
'5'라는 숫자를 보고 살짝 고민하던 영인은,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내려오는 것을 보고 버튼을 꾹 눌렀다.
스르르르르르......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숫자를 바꾸며 1층까지 내려왔다.
땡!
생각보다 크게 울리는 도착 벨소리와 함께, 덜컹이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60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기운이 축 빠진 걸음 걸이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영인은 살짝 옆으로 비켜 드리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3층 버튼을 눌렀다.
스르르르르르...... 쿵!
천천히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약간 덜커덩 거리며 3층을 향해서 올라갔다.
'꽤나 낡은 아파트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영인은, 302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틱, 틱!
'눌리는 건가, 이거?'
벨이 작동하는 건지, 아닌 건지 밖에서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영인은 벨을 몇 번 더 눌러 보고, 벨이 고장 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영인은 무의미한 시도를 그만 두고, 철로 된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페인트가 벗겨져 여기 저기 녹이 슨 철문은, 붙였다 떼어낸 여러 광고 스티커들의 흔적으로 지저분했다.
"계세요?"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계세요?"
영인은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계십니까?"
몇 번을 두들기고 불러 보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이 시간에 오면 있다고 했는데......'
영인은 따로 메모해 놓은 전화번호를 찾으려 수첩을 찾았다.
그 때 였다.
301호의 문이 열리는 소리에, 영인은 뒤를 돌아 보았다.
"누가 왔어요?"
걸쇠를 걸고 문 틈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영인을 마뜩찮은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아, 네. 서에서 나왔습니다."
영인은 경찰 수첩을 펴서 그 아주머니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의심의 눈초리를 그닥 풀지 않는 눈치였다.
"뭐,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그걸 봐서 경찰인지 알겠수......?
누구 찾아 오셨나봐요."
영인은 접대용 미소를 한껏 지으며 아주머니에게 대답했다.
"아, 네. 오늘 302호 아주머니를 뵈려고 약속을 잡았는데요.
집에 안 계시는 것 같아서요."
"그래요?"
아주머니는 영인을 아래 위로 훑어 보더니, "잠시만 기다려 봐요" 라고 하고는 문 앞에서 사라졌다.
문 안 쪽에서 "훈이 엄마, 경찰에서 왔다는데, 약속한 사람이 아가씨 맞아?"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러니 형식 선배가 싫어할 만 하지.'
곤란해 하던 형식의 얼굴을 떠올리며, 영인은 피식 웃었다.
'형식 선배는 이런 건 정말 못 할 거야.'
아주머니는 영인에게 오래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어느 새 문 앞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영인에게 "들어와요. 훈이 엄마는 우리 집에 있으니까." 라고 말하며 문을 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영인은 조심스레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주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인 듯 했다.
온갖 탱화와 불경 구절, 붓글씨, 염주, 조그마한 불상들이 집 안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엄청나게 불안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앉아서, 염주를 따륵 따륵 굴리고 있었다.
"저...... 박덕순 씨...... 되시죠?"
영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훈이 엄마' 라고 불린 그 아주머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영인이라고 합니다."
"거기 앉아요. 방은 정신 없지만, 내 마실 거라도 좀 내올 테니까."
문을 열어 준 아주머니는 휑하니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영인이 사양할 새도 없었다.
영인은 자세를 고쳐 앉고는, 덕순을 바라 보았다.
"저...... 저 한테 뭐 물어볼게 있나요?"
계속 불안한 눈동자로 염주를 굴리는 덕순을, 영인은 안심시키려 했다.
"아,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절차 상 찾아 뵌 겁니다.
안심하세요."
최대한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이려는 영인을, 덕순은 여전히 흔들리는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이거, 나 제대로 웃고 있는 거 맞나?'
거울이 있다면 자신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은 영인이었다.
"들어요."
어느 새 부엌으로 사라졌던 아주머니가 오렌지 주스를 투명한 컵에 담아 내밀었다.
쟁반 위에 놓인 주스를 영인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집어 들었다.
"감사합니다. 안 주셔도 괜찮은데......"
"날도 더운데, 마시면서 해요.
너무 사람 잡지 말고.
안 그래도 혼자 못 있어서 우리 집에 있어요, 훈이 엄마.
밤만 되면 뭐가 자꾸 보인다나, 어쩐다나."
아주머니에 말에, 덕순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나, 나는 그냥 처음 본 것 뿐인데, 나한테 씌었나 봐요.
밤만 되면 자꾸 소리가 들려요......
그 아가씨가 우는 소리가 들려요......"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억지로 뭘 물어 보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영인은 손사래를 치며 덕순을 진정시키려 했다.
"자꾸 그 아가씨가 꿈에 나와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꾸......
아이고 부처님......"
덕순은 눈물을 흘리며 염주를 손에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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