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7남매중 막내로
할머니가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낳으신 늦둥이다.
중매로 아빠를 만나 결혼식을 앞둔 며칠전
할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아빠 없이 결혼식을 올려야 했던 막둥이를 안쓰러워 하셨다.
그렇게 결혼을 해서 아이 셋을 낳고 막둥이에서 엄마가 됐다.
그런 막둥이가 항상 눈에 밟혔던 할머니는
시골 생활을 정리 하시고
맞벌이던 하시던 엄마를 대신해
우리 삼남매에겐 엄마의 역할을 해주셨다.
생각해보면 할머니 연세는 그때 이미 여든을 바라보고 계셨을텐데
힘든 내색 하나 없이 꼬꼬마였던 초딩 언니의
등하교를 도맡아 해주셨다.
할머니는 늘 쪽진 머리에 쪽빛 한복을 입고 계셨었다.
주변에서 편하게 파마를 하라고 해도 절대 고집을 꺾지 않으시고
단정한 쪽진 머리에 항상 은색 비녀를 꽂고 계셨다.
항상 입고 다니시던 쪽빛 한복에서
스웨터로 바뀐것이 할머니의 유일한 변화 였다.
그런 할머니의 최고의 단짝은 라디오 였다.
거의 24시간 할머니는 라디오를 들으셨다.
라디오를 들으시며 할머니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알고 계시는듯 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외로워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 할머니에게 효도할 수 있을줄 알았다.
효도할거야라던 다짐들.. 그 생각들은 어느새 잊혀져 갔다.
성인이 됐을 무렵 할머니는 노환으로 많이 쇠약해 지셔서
시골 삼촌댁으로 거처를 옮기셔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개월전
엄마, 언니, 나는 할머니를 뵈러 가기 위해 삼촌 댁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본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충격이었다.
90평생 쪽진 머리를 고수하시던 할머니는
단발머리로 우리를 맞으셨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슬프고 가슴이 먹먹하던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한동안 너무 떨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마디라도 했다간 눈물이 먼저 터져나올것 같았다.
이미 기력이 쇠해진 할머니에게서는 예전을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마음을 추스리고 할머니 곁에서 이것저것 말을 해봐도
할머니는 그저 미소만 지으실뿐이었다.
그런데 할머니의 단짝이었던 라디오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언니와 나는 무작정 나가 동네를 뒤져서 라디오 하나를 샀다.
그깟 라디오 하나 사드리지 못한 오빠들에게 야속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라디오를 우리가 사드릴수 있으니
참 다행이단 생각도 들었다.
예상대로 할머니는 너무 좋아하셨다.
몇개월뒤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쓰러지신 후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셨다.
오빠들의 말로는 할머니는 우리가 사드린 라디오를
한시도 끄지 않으시고 곁에 두셨다고 했다.
할머니의 사랑은 그 어떤것으로도 보답할수 없지만
부디 할머니께 그때 그 라디오가 작은 기쁨이셨기를 바래본다.
보고싶은 우리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