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과 고립

room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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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kang@lekang님이 독립에 대한 글을 부탁했고 이리저리 고민하다 쓰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독립이란 무엇인가로 첫발을 떼어 보는 쪽이 좋을 것 같네요. 물론 첫발이 끝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독립이란 걸 머리 속에 떠올리면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는 상태를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타인에게 의지만 하는 모습을 독립이라 부르긴 어렵죠. 하지만 타인과 어떤 교류도 없이 홀로 있는 상태는 독립보다는 고립에 가깝습니다. 분리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먼저 생각해봐야 할 조건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응집성'입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응집성'이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지식과 경험의 집합을 말합니다. 지식 뿐 아니라 경험이라고 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실을 아는 것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과정은 책이나 객관적인 사실 만으로 배우지 않지요. 나를 받아주고 돌봐주는 사람과의 따뜻한 관계, 친하게 어울린 친구와 함께 한 시간, 좋아하는 대상에 빠져 지낸 세월들을 통해서 직관적으로 체득하게 됩니다. 꼭 좋은 관계 뿐 아니라 나빴던 경험들 속에서도 배웁니다. 그러니 독립에는 반드시 타인이라는 존재, 나 외의 사물이나 대상과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에는 의지와 의존이 있을 수 밖에 없죠. 아이러니하게도 독립에는 의존이라는 경험이 필요한 셈입니다. 그래서 심리상담의 세계에서 '잘 의존한 사람이 잘 독립한다'라는 금언이 있지요.

타인에게 의존하며 사는 사람은 독립적이지 못하다고 규정되는데 사실 이런 사람들의 내면에는 나를 정의할 응집성이 희박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를 정의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늘 필요로 하고 상대방이 허용 가능한 한도 의상으로 의지하게 되지요. 문제는 상대방이 허용 가능한 한도를 넘어선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 결과 인간관계가 틀어지죠. 내면은 공허한데 눈에 보이는 사람들 반응이 좋지 않으니 자신에 대한 비난을 더하게 됩니다. 겉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행동을 바꾸라고 하지만 큰 효과가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행동의 변화 이전에 희박한 응집성을 어떻게 해야 하겠지요.

사실 우리는 모두 다 응집성이 희박한 시기를 거쳐 왔습니다. 어릴 때죠. 힘들고 화나고 슬프고 억울한 일 있으면 양육자에게 의지하고 먹고 사는 모든 문제도 의존해 왔지요. 이렇게 의존의 시기를 거치며 얻은 것들로 나라는 개인을 구성하고 그것으로 분리된 나, 독립된 내가 존재하는 겁니다. 어떤 이는 나를 성장시킬 충분한 환경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환경을 적당히 탓하는 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고, 스스로를 너무 심하게 비난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나라는 것을 응집시킬 수 있는 어떤 경험이 필요하죠. 성인이 되어 말도 안 될 정도로 의존하는 사람의 모습은, 실은 그 과정에서 나를 찾아 단단히 하기 위한 서글픈 시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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