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폭력이 없이 귀하게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뿐만 아니라 인격에도 자존감을 가지게 되고 타인에게 폭력이나 폭언을 하는 것에 대해 상상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외국 사람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살면서 개중에 전혀 이타심이 없거나 상종 못할 인간들도 보았다. 하지만 보통 일반 가장에서 자라나는 외국 어린이들을 많이 접해보니 삶의 질이 달라선지.. 경제적으로 부유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보는 현상과는 많이 달랐다.
한국에서 살다보면 아빠의 위치는 항상 사업이 우선이었고, 단체와 조직의 일이 우선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마 아직도 그런 관성적인 생각에 완전히 빠져 나오지 못한 것 같다.
어느 외국인과의 일이다. 어느 정도 중요한 일이어서.. 관계자들이 00날 모이기로 했는데 그 때 봤으면 좋겠다고 말을 건넸다. 그 일이 그에게도 중요한 일이어서.. 그리고 그다지 불편한 시간이 아니었고, 긴 약속도 아니었으므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는 분명히 그 약속에 응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약속이 있다면서 양해의 뜻을 비추었다.
"중요한 약속인가 보네요?"
"예, 아들하고 강아지하고 산책가기로 해서요."
그때 한국문화에 젖었던 나의 목구멍엔.. "그 까짓 아들과 약속은 같이 사는데 다음날 해도 되고. 휴일날 해도 되고.. 강아지야 주인이 하는데로 따라올 거고.. 이 것은 당신에게도 중요한 일인데.. 말이 되냐?" 라고 따지고 싶은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가 간신히 참았다.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찌했을까?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었다면, 난 분명히 아들과의 약속을 연기하거나 취소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났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무엇이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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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사랑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보기 쉽지 않다. 적어도 나 같은 관점을 가지고 살아왔던 한국 사람에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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