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을 보며 : 그 지향점은.

rextoys(49)
Published in
#kr-art
Words
663
Reading
3 min
Listen
Play
9y

미투운동.jpg

미투 운동. 이것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성추행에 대한 고발이 아니다.

무시 받고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던 약자들이 자기 소리를 내어 자신을 괴롭혔던 강자가 행했던 짓을 폭로하는 긴 폭로전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동안 부당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해야 했던 사회 곳곳의 약자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

권력을 쥔 사람들은 늘 어떤 식으로든 다수의 약자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약자들을 분열 시키거나 경쟁 시키고, 파벌과 라인을 만들어 자기 그룹에 속하지 않은 파편화된 약자들을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이는 각자의 이해관계와 욕망, 두려움을 가장 훤히 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인간 심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바로 강자이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을 단순히 남녀 간의 성폭행 문제가 아닌, 이와 같은 강자와 약자의 구도로 한 번 생각해 보자. 연극계의 강자는 약자인 다수 배우들을 특정 극단에서 일하게 해줄 수도 있고, 캐스팅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약자들은 한정된 극단 자리와 캐스팅 역할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 때문에 강자의 요구나 요청을 그리 쉽게 거스를 수 없다. 누군가 강자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한다면, 강자는 다른 약자들에게 그 약자를 제명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약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그 약자를 제명시켜 버린다. 경쟁자를 한 명 제거하고, 강자의 그와 같은 명령에 충실히 따름으로써 강자의 눈도장을 한 번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자의 무리한 부탁과 요구에 응한, 무명 배우에 해당하는 약자는 그로 인해 여러가지로 피해와 상처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강자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서 일을 하고 배역을 따낼 수 있다. 그런 기회를 발판 삼아 그 약자는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연극계의 또 다른 강자가 된다. 새로 강자가 된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를 회상하면서, 선임 강자의 무리한 요구에 응한 시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을 강자로 만들었던 것은 팔 할이 선임 강자의 부당한 요구에 응했기 때문이었다는 인과론을 받아들이게 되어, 새로운 강자는 다수의 다른 약자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괴롭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물고 물리는 관계가 하나의 관행이 되어, 이제 이 연극계에 들어오는 모든 약자들은 이런 관행이 성공을 위해 치러야 하는 신고식과 같은 것 쯤으로 여기게 된다. 이런 신고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연극 일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신고식에 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입은 정신적 상처를 앞으로의 성공을 위해 꼭 얻어야 할 명예 훈장 쯤으로 여기게 된다.

이 때부터 이 연극계에 속한 소수 강자의 부당한 부탁과 요구는 성공의 길을 향한 티켓으로 세탁되어 돌아다니게 된다. 이 티켓을 공증해 주는 것은 더이상 소수 강자가 아닌, 다수의 약자들이다. 이제 이 업계에서 강자의 잘못이란 없어지게 되고, 단지 관행을 따르는 열정 있는 약자냐 아니냐의 판가름 기준만이 남게 된다. 약자들 스스로가 약자를 괴롭히는 문화가 완성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해 행해지는 여성 성추행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여러가지 형태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관행이 문화처럼 남아 있다. 미투 운동을 남녀 구도로 한정 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로 그것은 명확히 인지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괴롭힘을 당하는 약자들 스스로가 강자의 논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장에게 욕을 먹고 폭력을 당해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고 승진을 한 사람들은 결국 사장을 옹호하게 된다. 그러면서 윗사람의 폭력에 저항하는 청년들을 열정 없는 사람들로 매도한다.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 미투 운동은 받을 거 다 받아놓고 이제 와서 뒤통수 치는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나는 미투 운동이, 단순히 성추행 했던 권력 있는 남자들을 고발하고 처벌하는 것으로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침묵하는 다수 약자들이 반성해야 할 길고 긴 운동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약자들은 강자들이 쳐놓은 올가미에 스스로 들어가게 되었는가? 강자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일개 개인이 저항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서? 인간의 이해관계와 욕망을 통제하고 그것들을 채워줄 권한을 쥔 사람들에게 한 명의 약자인 개인으로서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문화계의 거장들이 수많은 여성 후배들을 성추행 하고 있을때, 거장 곁에 있던 다른 약자인 남자들과 여자들은 무엇을 했나? 왜 그들은 침묵해야만 했는가. 사실은 그들 역시 공범이 아닌가. 그런 관행을 하나의 정상적인 문화로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일조한 공범이라고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한 명의 개인이지만 그런 문화를 깨기 위해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끊임없이 모여 토론하고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결국 자기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비합리적인 권위와 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으면서도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문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미투 운동이 점점 더 범위를 넓혀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받은 부당한 피해를 고발하고, 더 나아가 이것이 단순히 강자에 대한 고발이 아닌, 침묵하는 똑같은 입장에 선 약자들의 반성으로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