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환자 분들이 물어 보십니다. 충치... 꼭 치료 받아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때면 제 머리 속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
이 세상에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있을까? 누군가 꼭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면, 만약 그것을 하지 않을때 과연 어떤 문제가 발생하기에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인가.
펀드 매니저들은 돈을 은행에 그냥 두지 말고 꼭 주식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부분 일리 있는 이야기 입니다. 은행 이자율보다 물가 상승률이 더 크기 때문이죠. 다만 주식은 돈을 잃을 수 있는 리스크를 안아야 합니다. 그 리스크는 개인의 몫입니다. 사실 펀드 매니저가 주식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주식 투자를 업으로 삼고 있기에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돈에 대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전문가이며,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바로 그 돈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에 펀드 매니저들의 머리 속은 투자로 꽉 차 있죠. 펀드 매니저에게 있어 투자는 때로 자신의 인생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문화 컨텐츠를 제작하는 창작자들은 인생에 있어 문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신이 문화 생활의 가장 근간이 되는 컨텐츠 제작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런 직업을 선택한 이유 자체가, 본인 스스로 문화 생활을 무척이나 즐기고, 자기 삶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 주식 투자는 아직도 먼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문화 생활 역시 마찬 가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투자할 필요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문화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그냥 돈이 은행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을 때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고, 문화 생활에 돈쓰는 것을 아깝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바보라거나, 인생을 잘 모른다고 여기는 것은 오만입니다. 각자의 성격, 취향, 타고난 특성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 반드시 해야할 것이라고 동의하는 것들이 분명 존재 합니다. 밥 먹고 배변하는 생리적인 활동,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 받기 위해 병원을 가는 것 등이죠. 이는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모든 것들은 사실 자기 선택 사항입니다.
충치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치아에 세균이 침입하여 그 세균이 만들어내는 산성 물질로 인해 치아가 손상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리고 모든 충치가 위협적이지는 않습니다. 때로 충치가 진행되다 그대로 굳어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또한 유전적 특성에 따라 어떤 사람은 충치가 생겨도 진행되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의 치아에 생긴 충치는 잘 진행되지 않기도 합니다.
다만 만약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어떤 치아에 있는 충치가 계속 진행되어 치아를 광범위하게 파괴하고 때로 신경까지 이를 수 있다면 그 충치는 사전에 치료하는 것이 더 이익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기술적인 이야기에 불과 합니다. 실제 현실은 더욱 복잡하죠.
어떤 치과에 가서 충치로 진단 받은 치아의 충치가, 사실은 충치가 아니라면? 이미 굳어버려 진행이 되지 않은 충치일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모든 치과의사가 단 한 번도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또한 그 충치가 실제 진행되는 충치가 맞다 해도, 어떤 치과에서는 저렴하게 때우는 정도로만 치료를 하면 된다 하고, 또 어떤 치과에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제거해서 비싼 재료로 덮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은 후자의 치과에서 과잉진료를 권유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의 충치보다 더 광범위하게 제거해서 더 좋은 재료로 덮는 것이 때로 이익인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이익이란 과연 얼마나 이익일까요? 치아라는 것은 치료만이 아니라 관리도 중요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을 고려 했을때 직관적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려 어떤 것이 더 이익인지를 매우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처음에 간 치과를 믿지 못해 이번에는 여러 치과에 가서 진단을 받아본다고 해 봅시다. 만약 그렇게 간 치과들에서 똑같은 진단을 내린다면 할 말 없겠죠. 아니 그런데? 세상에 진단이 다른 겁니다! 어디서는 충치가 굳었다고 하고, 어디서는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며, 또 어디서는 광범위하게 제거해서 수복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렇다면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요?
물론 더 많은 치과를 가서 진단을 받을 수록, 어쩌면 진단 내용은 더 정확해지겠죠. 하지만 그렇게 많은 곳을 굳이 돌아다녀야 할까요? 에라, 그냥 돈도 안 쓸 겸 조금 더 기다렸다가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여유가 생길 때 다시 치과를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사실 치과의 충치 치료는 신경까지 깊이 진행되어 큰 통증을 유발할 정도가 아닌 이상 다른 심각한 질환 치료보다는 그 중요도가 떨어지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해도 무방합니다. 긴급하게 결정을 해야 할 정도의 치료가 아니라는 뜻이죠. 기본적으로 충치 치료는 예방 치료에 속하기도 하구요. 혹 빠르게 진행되어 신경까지 침범해서 신경 치료를 하고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돈도 들고 그 치아의 수명도 줄어들겠죠. 그런데 그게 그렇게까지 큰 문제입니까? 살아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인생에 있어 뭐 그렇게 중요하고 긴급한 것이 있긴 한가요?
어떤 치과에서 당장 해야 할 것처럼 겁준다거나 매우 심각하게 긴급한 치료처럼, 지금 치료를 결정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것처럼 한다면.. 잠시 물러나서 천천히 다른 치과도 가보면서 마음이 끌리는 믿음직한 치과의사와 직원들이 있는 치과를 발견하기까지 치료를 미뤄도 좋다고 생각 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치과마다 가격 차이가 크기도 합니다만, 이건 안비밀인데, 매력적인 가격과 긴급한 치료 요구에는 다른 모든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란 때로 환자와 별 상관 없을 수도 있구요.
다시 질문. 충치가 있다는데.. 꼭 당장 치료 받아야 하나요?
여기에 대한 저의 대답은, '아니오' 라고 확신있게 말씀 드립니다. 그런 질문이 떠오른 것은 아직 해결 못한 마음 속 불안과 불만족이 남아있기 때문이거든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대답을 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