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한시간 정도 타고 들어오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매주 운동을 해서 땀을 내긴 하는데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흐르는 땀은 또 다른 느낌이다. 겨울 내내 자전거를 타지 않아서 그런지 자전거도 조금 더 삐꺽거리고 나 또한 안쓰던 다리 근육을 쓰니 다리도 좀 저리지만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며 느끼는 시원함이 좋다. 자전거를 타고 와서 맥주한캔을 손에 들고(운동의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 쇼파에 앉아 영화를 보는 호사도 누렸다. 패들턴이라는 영화였는데 한명이 시한부인 아래위로 사는 두남자의 이야기였다. 인생에서 마지막을 함께하는 두 사람의 우정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두 남자가 좀 엉뚱하기도 했지만 잔잔하니 일요일 오후에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일요일을 이렇게 호사롭게 보냈다.
김훈의 새 산문집 <연필로 쓰기>를 보았다.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김훈의 책을 꽤 많이 보았다. 그의 수필집인 <공터에서>, <자전거 여행>, <라면을 끓이며>와 소설 <칼의 노래>, <현의 노래>까지. 내가 그의 책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바로 문장의 매력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전에 김훈의 책을 보고선 내가 남긴 글을 봤는데 거기에서도 나는 그의 문장을 묵직한 나무에 비교하며 문장의 밀도에 대해 감탄했었다. 이 책 <연필로 쓰기> 역시, 수필집이니 비록 소설인<칼의 노래>나 <현의 노래>처럼 숨막히는 밀도는 아니였지만 여전히 그의 문장은 김훈만의 깊은 밀도로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수필집 속 그의 이야기는 정확히 우리 아버지 세대가 지금을 살아가며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책을 보는 내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마냥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며 보았다. 국민소득 80달러에서 지금까지 올라오는 과정이었던 60~90년대에 젊음을 살아낸 그 세대의 이야기와 지금에 와서 그 시절을 돌아보며 사유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는 그가 살고 있는 일산 호수공원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똥에 대한 이야기, 마음속의 이순신, 배달을 하는 라이더의 모습, 오이지에 대한 이야기, 태극기 이야기,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매들의 이야기, 남북한의 과거와 지금, 친구들과의 송년회 자리 이야기 등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 시작하여 깊이있는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책을 읽어가며 여전히 손으로 원고를 써가는 저자의 모습에 장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금 내가 본 이 책은 깨끗히 인쇄된 책이지만 그는 자신의 머리속 생각을 손을 이용해 한줄한줄 노동을 통해 써갔을 것이다. 아마 한 권의 책을 마무리를 하고난 후의 기쁨은 쉽게 쓰여진 글보다는 더 크리라. 지금 시대에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고 연필로 글을 쓰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시대가 변했으니 당연히 좋은 환경을 이용해 좋은 글을 쓰는 행위도 필요하지만 시대가 변해가도 이렇게 원래의 모습으로 글을 써가는 사람, 그러니까 옛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감사하고도 또 대단하게 다가온다. 몇 장만 써도 아마 팔이 쑤시고 눈이 흐릿해질텐데 노동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김훈의 글쓰기는 박수 받아야 마땅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시대가 변해가는 가운데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을 써가는 것, 빛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책을 보면 내가 살고 있는 일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번책의 시작 또한 일산 호수공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소소한 가을 풍경이 내가 종종 가는 호수공원의 느낌을 그대로 옮겨논 것 같아 재미있게 본 부분이다. 호수가로 나와 볕을 쬐고 있는 자라의 이야기부터,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세우니 아이가 산신령이 도와주었다고 하는 이야기 등 소소한 이야기들이 화려하진 않지만 살만한 이 일산이라는 곳을 잘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책 속 이야기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공원 한켠, 노인들이 장기를 두는 곳에서 그들은 죽음을 아주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장면인데
그 최씨 있잖아, 1.4 때 내려왔다는 사람. 요즘 안보이네. (중략)
최씨가 누구야? 난 기억이 안나
아, 거 상 잘 쓰는 사람 있잖아, 상으로 난데없이 옆구리 찌르는 사람 말이야. 못당하지, 못 당해.
상 잘 쓰는 사람! 나는 이 사소한 것의 신선함에 놀랐다. 이렇게 기억되는 생애는 얼마나 가벼운가
김훈은 본인은 상 못쓰는 사람으로 기억될 법 하지만, 잘 쓰는 사람은 기억되지만 못쓰는 사람은 기억되지 않는다라고 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라는 생각을 했다. 유독 장기판의 노인이야기뿐만은 아닐 것이다. 잘 쓰는 시람 그러닌까 우리는 잘난사람만 기억하고 기억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난 한켠으로 구지 그렇게 기억되어야만 우리의 삶이 가치있는 것은 아니라는 반대적인 생각을한다. 김훈은 일산으로 온지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이 곳에 온지 20년이 되었다. 이제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한 김훈의 이야기는 이 곳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문맹 노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우리 현대사 속에서 고난의 시대를 치러낸 세대인데 그들은 고된 삶속에서 삶을 배웠지만 글을 배우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다행인 것은 최근에 여러 지방단체가 고령의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서 할머니들의 읽고 쓰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 책에 할매들이 쓴 글을 실었는데 울컥하게 하는 글들이 많다. 할머니들의 사투리 섞인 글들이 구수하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감성에 감동을 하기도 하고 또 힘들었던 삶의 이야기에 울컥하게된다. 그 중 강금연 할머니의 글을 옮긴다.
딸이 가다 차를 세운다.
야야 와그래 차 세우노
엄마 요앞에 더디 걷는
할매보이 엄마 생각이 나네
우리 엄마도 저래 걸어가겠지 싶어서
빵빵 거리도 못 하고
딸이 그 말을 하이
내 눈에 물이나네
이 글을 보며 한번에 여러 생각이 겹쳐 흐른다. 상황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상황인가. 딸은 길가는 할매를 보며 옆에 앉은 엄마를 생각하고 그 딸을 보며 엄마는 딸 생각을 하고 한편으로는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들을 남기고 싶었을 강금연 할머니는 이제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그간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답답하게 한다. 전쟁, 억압, 가난의 시대에서 이렇게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준 우리 윗세대에 충분히 감사해야하지 않을까.
이 외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소박하지만 생각할거리를 주는 글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70넘은 동창끼리 모여 낄낄거리는 모습에서는 포근함을, 밥과 똥이야기에서는 60년대 가난에 대해 느끼고 또한 우리 모두는 평등하다는 것을, 이순신 이야기에서는 그의 문장의 원천과 리더십에 대해, 세월호 이야기에서는 여전히 슬픔을, 저 멀리 보이는 북한군이 오줌누는 모습에서는 인간다움을, 가야사람이 보던 별에서는 시간의 무한함을 느끼는 등, 소중한 것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독서의 시간이었다. 그는 책에서 이야기는 이어진다고 하고 있다. 그 문장을 보니 많은 이야기들이 내 주위에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할뿐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소한 곳에서 시작하여 더 큰 것을 말하는 작가의 눈에 다시 한번 감동하고 그 것을 다시 밀도 높은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김훈이라는 작가에 대해 또 한번 감탄하며 읽은 책이다. 여전히 연필로 글을 쓰고 있다는 김훈의 모습에서 아버지 세대의 노동의 아름다움 또한 느낀다.
이제, 호수공원의 연꽃은 모두 시들었다. 여름에 빛나던 꽃일수록, 가을에는 더 참혹하게 무너진다. p16
상 잘 쓰는 사람! 나는 이 사소한 것읜 신선함에 놀랐다. 이렇게 기억되는 생애는 얼마나 가벼운가. P23
이야기는 날마다 이어진다. 누구의 삶인들 고단하지 않겠는가. p35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데 태어난 순서대로 가는게 아니고 나중에 난 사람이 먼저 가는 수가 흔히 있어서 가는 데는 차례가 없다. 어쨋거나 다가온다. p66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고, 죽은 자들은 죽지 않은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줄 수가 없다. p71
늙어서 슬픈 일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못 견딜 일은 젊어서 저지른 온갖 못난 짓거리와 바루한 삶에 대한 기억들이다. p73
나는 속으로는 웃지만 겉으로는 엄숙하다. p78
자비나 무자비를 재단할 수 없이, 일이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는 길을 그는 걸어갔다. p109
길바닥에 흩어진 음식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고요했고 시선은 깊었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했는데, 생각이 되어지지 않았고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먹고사는 일의 무서움에 떨었다. p168
지나간 맛을 지나갔다고 해서 부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나간 맛이 살아나서, 먹고 싶은 미래의 맛을 감질나게 하고, 지금 이 순간의 맛이 지나간 맛을 일깨워서, 나는 지나간 맛과 지금 이 순간은 맛과 다가오는 맛을 구분하지 못한다. p181
시간은 우주의 운행과 역사의 흥망성쇠, 중생의 생로병사, 별들의 생성과 소멸뿐 아니라 김칫독, 된장독, 고추장독, 젓갈독 안의 비밀까지도 두루 관장하면서, '있음 being'에서 '됨becoming'으로 사물을 전환시키는데, 그 신적인 작용이 가장 선명하고 육감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단연코 오이지 항아리 안이다. p222
나는 할매들의 글을 읽으면서, 고난에 찬 한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의 생애와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던, 그들의 작은 몸을 생각했다. 할매들은 그 몸을 시대의 밑바닥에 갈면서 살아냈다. p278
말은 말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p338
겨울이었다. 하늘이 찢어질 듯이 팽팽했다. p343
아이들은 자신의 불행을 모른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자란다. 아이들아, 먼지의 장막 뒤에서 별들은 빛나고 있다. 아이들아, 별들은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p349
공은 둥글어서 만인의 것이고 누구의 것도 아니다. p359
맛은 관념이 아니라 관능으로 작동하고 관능은 감각으로써만 소통된다. 맛은 개념이 아니고 기호가 아니고 상징이 아니다. 맛은 인간과 자연의 직거래이다. p385
짧은 기간 동안에 급팽창해서 지금은 누구의 고향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운데, 동네 가까이 한강이 흐르고 수만 년 동안 먼 데서 새들이 찾아오니, 사람이 마음 붙이고 살 만한 동네다. p437
맞아. 늙기가 힘들어도 사는 게 그래도 좋아. 죽을 날짜를 모르니까 살 수가 있는 거야. p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