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처가'라는 단어를 듣기는 했을 것이다. 정확하게 그 뜻을 안 것은 '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TV 코미디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 와요>의 꼭지를 통해서였다.
남자들이 모여 있고, 사회자가 공처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남으라고 했다. 모두가 공처가임을 자인하면서 빠졌는데, 오직 한 사람만이 자리를 지켰다. 구봉서나 배삼룡보다는 약간 젊은 편으로 '땅딸이'라는 별명과 함께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따라라 하는 유행어와 동작을 여러 개 만들어냈던 이기동이 그 역할을 맡았다. '어떻게 그렇게 용감할 수 있느냐'라는 사회자의 물음에 이기동이 고지식한 무표정이지만 큰 소리로 대답한다. "마누라가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어렴풋이 공처가라는 단어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어른들이 그 단어를 쓰는 것을 들으며 더욱 명료하게 알게 되었다. '공부가(恐夫家)'라는 단어는 거의 쓰지 않고, 공처가라는 단어가 주로 쓰인다는 데서, 역설적으로 공처가가 상식에 반하는 것이란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남편을 두려워하고, 그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마치 '여자고등학교'나 ;여자대학교'는 있는데, 남자들만 다니는 학교에 굳이 ;남자'라고 붙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일 년 전쯤에 읽다가 뒷부분 약간을 남겨 놓은 <후흑열전>(이종오 지음, 김수연 옮김, 아침 펴냄, 1999)을 마저 읽었다. 처가 '후흑'을 소재로 한 글을 한번 생각해보라고 권해서였다. 그런데 마지막 대목에서 공처가에 대한 꼭지가 상당한 분량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에 나온 역사에서 유명한 공처가들 몇몇의 사례를 들어놓았다.
오호십육국에 이은 남북조시대의 혼란을 수습하여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문제는 공처가 중의 공처가였다고 한다. 어느 날 황후가 화를 내자, 산속으로 도망가 이틀이나 숨어 있었단다. 대신들이 나서서 황후의 화를 진정시킨 후에야 겨우 궁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아내를 보면 쥐처럼 굴고, 적을 보면 호랑이처럼 굴라"라는 말을 실천한 황제였다.
수를 이은 당나라의 정관지치를 펼친 현군 당태종이 총애하던 신하 중의 하나가 방현령이었다. 공처가로 아내에게 시달림을 당하던 방현령이 참다못하여 당태종에게 아내를 어떻게 황제의 힘으로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다. 당태종이 방현령의 처를 불렀는데, 그 처의 말 몇 마디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래서 이후에 방현령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단다. "너의 부인은 보기만 해도 무섭구나. 이후에 그녀의 명령에 잘 따르는 것이 상책일 것 같다."
명나라 때 황제의 친척으로 장군이었던 계광은 부인에게 시달리다 못해, 어느 날 군법으로 부인을 처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 군대를 소집하여 놓고 호기롭게 부인을 불렀다. 부인이 나오면서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라고 소리치자, 당황해서 땅에 엎드려 '열병식에 참여하라고 부인을 불렀소'라고 답했단다. 나중에 왜적이 쳐들어왔을 때 앞장서 물리쳐 명장 소리를 들었던 이가 그랬다는 것이다.
이런 공처가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력으로도 일가를 이룬 인물들 얘기와 함께 '공처가 경전'의 몇 가지 원칙들도 소개한다.
아내를 무서워하는 자는 밖에 나가서도 감히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사람들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되니 나라가 번성하지 않을 수 없다. 군자는 근본에 힘쓰는데, 근본이 서면 곧 도가 생겨난다. 마누라를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중국을 부흥시키는 근본이다.
아내가 안에서 명령을 내리면, 남편은 밖에서 분주히 뛰어다닌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남편은 아내가 화내는 모습을 보면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가 불안하게 된다. 따라서 남편은 진심으로 존경하여 매사에 아내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 없게 하라.
마누라가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마음을 진정시키고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여 부드러운 소리로 충고한다. 충고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욱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한다. 이렇게 세 번을 충고해도 듣지 않으면 통곡을 하며 그녀를 따른다.
아내란 남편이 의지하여 평생을 다하는 존재이다. 신체의 모든 것은 다 아내에게 속한 것으로, 함부로 훼손하거나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공처가 철학의 시작이다. 입신출세하여 후세에 이름을 남김으로써 아내를 돋보이게 해주는 것이 공처가 철학의 끝이다.
그는 향후의 역사서에는 충신이나 효자의 전기와 함께 공처가도 일군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설파하는 공처가 철학의 심오함과 영향을 감안하건대 당연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