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저자인 유시민 작가가 절판시킨 책이 한 권 있습니다.
1987년, 학원업으로 돈을 좀 많이 벌었던 서한샘씨가 새로운 청소년 문화를 만들어보겠다고 청소년 잡지를 창간합니다. 문제는 이 잡지가 거의 1년만에 문을 닫아요. 1987년 초에 창간했던 잡지가 88년 2월인가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 잡지에 실렸던 글들은 지금의 저를 만드는 기반이 되었죠. 그때 실려 있었던 수많은 글들 중에 세계사 이야기를 뽑아서 만든 책이 ‘거꾸로 읽는 세계사’입니다.
이 초고를 작성하던 당시 유시민 작가는 시국사건으로 수배중이었습니다. 원고를 써서 도피자금으로 썼던 셈인데, 이 책은 그 이후로도 잘 팔려 지금의 유시민 작가의 입지를 만들어줬죠.
사실 이 책의 내용은 1980년대에 사회과학 동아리들, 혹은 써클에 들어가면 첫 해에 읽게되는 수많은 책들을 정리 요약한 겁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고 경찰 수배를 받아 도서관도 갈 수 없었던 중에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썼기 때문에 오류들이 상당히 많았다. 뭐 몇 년전부터 나오고 있는 기밀해제 문서들에 기반해서 보면 얼척없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 책에서 다룬 붉은 중국의 탄생은 에드가 스노우가 쓴 ‘중국의 붉은 별’을 요약정리한 겁니다. 에드가 스노우의 책 자체가 중국 공산당이 보여주고 싶었던 사실만 기술되었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죠. 유시민 작가는 문화대혁명을 감안하면 중국편이 너무 많이 미화되었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고, 나중에 개정판에선 몇 마디 첨언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조선공산당사를 공부했던 사람들은 훨씬 전부터 다른 역사적 사실 때문에 중국 공산당과 소련 공산당에 대해 그닥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죠.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615.html
그러니까 중국 공산당의 폭력성에 대해 치를 떨었던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 90년대 초반에 유작가님이 자신의 베스트 셀러를 수정했던 것을 보곤 좀 깼습니다. 마오쩌둥의 문제를 ’문화대혁명의 잘못’만 짚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있습니다. 어지간한 크기의 책장 한 칸을 가득 채울 분량의 책들을 아주 얇은 책 한권으로 압축했거든요. 한국에선 이런 압축본이 항상 잘 팔리지요. 저작권 문제는 차치하고 말이죠. 독자들 입장에선 압축적으로 사안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은거지요.
사실 현대는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어느 분야에서 전문가 소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일을 하다보면 대중적 소통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되거든요. 아닌 말로 대학 4년 동안 정말 죽자고 공부만 했던 내용이 한 업계에선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이 되는 세상이잖아요. 이걸 요약해서 대중에게 설득하기 쉽게 만들어내는 능력은 대단한거죠. 이런 일을 하는 분을 ‘컨텐츠 전달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주 큰 문제가 여기서 생깁니다. 컨텐츠 전달자는 전공자가 아닙니다. 요약정리 잘못 들으면 어마어마한 삽질을 할 수 있습니다. 스팀잇에 오시는 분들이라면 유작가님이 암호화폐 관련 토론에 나왔을때 비트코인과 알트코인을 오고가며 자신의 논리를 방어하던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설득력있게 포장하는 능력은 그 토론회에서 발군이었지만 정작 사실 관계는 꽤 틀렸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