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학파와 케인즈 경제학의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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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란 무엇인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약자로 세상을 다스려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제하는 활동이다. 케인스경제학은 수요측면을 강조한 경제학(demand-side economics)이고, 신고전학파경제학은 공급측면 경제학이다. 전자를 비주류, 후자를 주류라고 한다. 이는 권력지향의 관점에서 구분한 것이다. 누가 옳은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도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바탕을 둔 지나친 금융완화에서 온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경제학의 양대 산맥인 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다.

1. 주류경제학

경제학은 강한 당파성을 갖는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주류경제학은 신고전학파(혹은 신자유주의)경제학이다. 이들은 현재의 체제를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고 이를 정당화 한다. 자본가, 그중에서도 상위 1%의 최상위부자(Super-Rich)들을 포함한 기득권자 즉 부자, 정치인, 기업가 등 엘리트계층들의 처지를 대변한다고 보면 맞는다. 그래서 보수경제학이다.

오랫동안 한국은 경제가 최우선 과제가 되다 보니 경제학이 모든 사회과학의 여왕대접을 받고 있다. 한국내의 경제학자의 90% 이상이 바로 주류파라고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대학졸업자는 신고전학파적 사고방식으로 세뇌된 또는 무장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무튼 자유를 정의로 생각하는 자유방임적 사고가 이 땅에 사는 국민 모두의 무의식속에 일종의 문화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상황은 대단히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대다수가 하나의 문화로 통일되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것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쉽게 오인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의 종교적 신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를 교조주의 즉 Dogma라고 한다. 세상은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도 다름을 틀림으로 오인한다. 심지어 다수의 힘을 빌려서 그들이 증오하는 다름을 배척한다. 다름을 이해하려고 노력도 않는다. 그 결과 종교적 신앙은 더 깊어진다. 이 단계가 되면 Dogma를 맹신한다. 다름을 편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오독(誤讀)하게 되고 편견을 갖는다. 그만큼 논리적 빈틈이 없다.

책 한권 읽은 사람이 또는 주식투자를 해서 처음 이익을 본 사람이 가장 용감한 것이 오만함 때문이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근거 없는 신학 위에 서 있다. 인간의 합리성은 완전하다, 인간은 동질적이다, 저축이 증가하면 투자가 증가한다, 시장은 완전하다는 등등이 그 예이다. 물론 이외에도 예는 많다. 과학은 이론과 실증으로 구성된다. 경제이론은 실증되지 않은 많은 가설을 전제로 전개한다. 주류든 비주류든지 간에 모두.

2. 비주류경제학

정통(orthodox)인 주류경제학 입장에서는 Post-keynesian은 이단(heterodox)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통(orthodox)은 불변의 진리고 이단(heterodox)은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는 해석을 하면 안 된다. 경제학에서 정통과 이단은 시대정신과 권력관계에 따라 언제나 바뀔 수 있다. 이는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은 다양하다. 그래서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혁신(Innovation)과 소득주도 성장이론은 비주류경제학 분야다. 이는 불균형의 경제학이며, 불균형은 바로 지식과 혁신이 원인이다. 주류경제학은 균형(Equilibrium)의 미학을 강조한다. 혁신은 균형을 항상 파괴한다. 그건 주류경제학 교과서를 휴지로 만들어 버린다. 운동권경제학인 포스트케인지언은 케인스경제학이라는 튼튼한 학설과 지극히 현실적인 전제 위에 서 있다.

정지는 균형을 의미한다. 모든 게 움직이고 변한다. 세상에 정지(停止)된 것은 없다. 따라서 경제학도 운동(Movement)에서 출발해야 한다. 운동이 사물의 본질이며 현실이기 때문이다. 순간적 포착(捕捉)을 위해 가끔 정지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정지를 벗어난 순간 세상은 변한다. 그래서 정지(停止)한 상태에서 내려진 결론은 수정되어야 한다. 정지만이 아름답다는 생각은 독단이며 편견이다. 운동과 변화의 관점에서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더 객관적이며 과학적이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이 공급부족이 아니라 구매력을 가진 유효수요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다. 혁신과 소득주도의 성장이론을 주장하는 포스트케인지안들이 운동(변화)에서 주목한 내용은 비자발적 실업과 부(富)의 불균형이다. 이를 경제의 본래적 의미로 본다. 그래서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개입을 요구한다. 이들이 현실을 중시한 진정한 경제학자들이다.

미국을 제외한 유럽은 전후 복지지출을 늘린다. 노동조합의 힘도 강하다. 대략 소득주도 성장이론을 적용시킨 나라들이다. 복지국가 혹은 수정자본주의(修正資本主義)국가로 불리는 이 나라들이 망했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여러 모순을 국가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개입 등에 의하여 완화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영속적인 발전을 도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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