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포인터] 1. <목격자>, 주목할 만한 '소시민'의 윤리적 갈등
*본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할 예정인 분들은 마지막 부분의 '핵심 요약'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목격자>는 1964년 뉴욕의 아파트 단지에서 새벽 3시에 여자의 비명 소리를 무려 40가구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소위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를 대표하는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주민들이 마냥 방관하지는 않았고, 범인이 그녀를 덮쳤을 때 범인에게 고함친 주민, 경찰에 신고하는 주민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는 않았죠. 때문에 그녀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두 차례나 이동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범인이 재차 그녀를 찾아가는 바람에 결국 살해당하고 맙니다.
<목격자>역시 이 사건과 같은 패턴으로 시작합니다. 다만, 이 작품에선 범인이 살해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을 쫓아다닌다는 게 다를 뿐이죠.
대부분의 우리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사진 : 다음 영화, <목격자>(2018)
G POINT 1. 세밀하게 포착하는 소시민의 윤리적 한계와 갈등
이 영화의 좋은 점 하나는 대개 살인마와 쫓고 쫓기는 스릴러 영화들이 다소 영웅적인, ‘정의구현’을 위해 행동하는 주인공들을 내세우는데 반해, 자기 안위가 먼저인 전형적인 소시민을 내세운다는 겁니다.
개연성과 초반의 거친 부분은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고, 일단 주인공 상훈(이성민)이 처한 상황만을 생각해봅시다. 당신은 직장인이고, 경찰을 불신합니다. 게다가 바빠서 집안을 24시간 감시할 수도 없죠. 그런 상황에서 내 존재를 아는(심지어 나를 죽일 이유가 있는) 살인마(곽시양)가 잡히지도 않은 채 여전히 돌아다닌다고 합시다. 게다가 상대는 잡힐까봐 꽁꽁 숨는 보통의 살인마와 달리 아파트 한복판에서의 살인도 꺼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악마를 보았다>(2010)의 장경철이 말미에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막다른 골목에 있어서 무슨 짓이든 꺼리지 않는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 부분을 파고듭니다. 본능을 넘어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공포는그럴듯한 이유들과 함께 묘사됩니다. 누구나 쉽게 개인정보를 탈취할 수 있다는 점, 공권력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불신, 그리고 공익에 관해 개인의 이득에만 관심있는 대중들 등등.
이 작품은 일개 소시민에게 정의감은 공포 앞에서 무력해질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원인은 불신을 조장한 이기적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는 걸 표현하고자 합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힘을 주지 않고 미시적 관점, 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점은 확실히 이 작품의 강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비록 가족 때문일지언정, 주체적 양심을 지닌다는 건 훌륭한 일이다. *사진 : 다음 영화, <목격자>(2018)
G POINT 2. 주제를 향한 끈질긴 집념, 주체적 양심을 위하여
이 작품은 처음에는 POINT 1에서 짚었던 것처럼 ‘왜 방관하게 되는가?’를 차근차근 짚어나가지만,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질문을 ‘정녕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로 바꿔버리게 됩니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처럼 ‘구할 기회가 있었다’는 윤리적 추궁은 개인의 ‘양심’을 후벼 파게 되죠. 여기서 탁월한 점은, 이 작품이 양심만으로 인물의 태도를 바꾸지 않고 그 인물의 소시민적 모습을 유지하면서 양심의 회복도 함께 이룬다는 점입니다.
양심‘만’ 있었을 때는 상훈은 수동적으로 형사들에게 모든 일을 일임합니다. 그 자신은 현장에도 나가지 않죠. 하지만 가족의 위험을 깨달은 직후엔 앞뒤 안 가리고 자신이 달려 나갑니다. 비로소 상훈은 등 떠밀려 수용했던 수동적 양심에서, ‘주체적 양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주체적 양심을 지니게 된 계기는 지극히 소시민적입니다. 자기 가족을 위해서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이 어찌됐든, 상훈은 그 스스로 죄악과 1:1로 대면할 용기를 얻습니다.
갑자기 도를 깨달은 듯 선지자처럼 용감해진 기존 스릴러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목격자>는 이처럼 한 개인이 주체적 양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냅니다. <미생>이라는 다른 차원에서 “오상식 과장”이 그랬었죠.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요. 그건 마치 ‘1+1’도 풀지 못하는 인간들이 무슨 미적분을 풀려고 하느냐? 라고 되묻는 것 같습니다. 과연 양심의 산수조차도 하지 못하면서 무슨 고차원적인 윤리를 풀 수 있을까요. 칸트의 정언명법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내 의지의 준칙이 ‘가족들’에게 적용했을 때도 이상이 없어야 하는 것, 그게 ‘사회에 절어있는 적절한 시민’들이 가질 수 있는 양심의 마지노선이 아닐까요?
이 작품 속에서 살인마의 크기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 그리고 그 정체를 일찌감치 공개해도 상관없는 이유는 그만큼 이 영화가 상훈이라는 인물의 변화에 집중하고 또한 주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한 과정 끝에 '주체적 양심'을 가지게 된 상훈은 비로소 그동안 개인의 안위와 타협한다는 명분으로 눈감았던, 윤리가 파괴된 처참한 주변을 똑똑히 ‘목격’하게 됩니다. 결국 영화 속에서 끝끝내 상훈이 목격한 건 잔학무도한 살인마가 아니라, 이웃의 죽음조차도 방관할 수 있는 극도로 이기적인 인간들이 집합한 사회였던 것입니다.
카메라의 시선과 아파트 배경은 그 자체로 많은 걸 함축한다. *사진 : 다음 영화, <목격자>(2018)
G POINT 3. 이미지로 드러내는 철학
상업 요소가 다분한 스릴러 영화에선 보기 드물게, <목격자>가 미장센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 역시 칭찬할 만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파트 이미지는 군중속의 고독을 표현하는데 탁월합니다. 또한 내려다보는 방관자는 피해자가 선명하면서도 한없이 작게 보이지만, 이를 올려다보는 피해자는 무표정한 침묵으로 일관한 채 도움을 외쳐도 메아리로 뱉어내기 바쁜 거대한 성벽을 마주하게 됩니다.
거기에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비명에 대한 아파트 주민들의 반응입니다. 어떤 이들은 비명 소리를 듣고 불을 끄기도 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그에 반응해 불을 켜기도 합니다. 여기서 불은 개인의 양심을 상징합니다. 영화 초반부에서 상훈은 이론적인 윤리를 머릿속에는 담고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책임은 받아들일 수 없는 소시민이기에 불을 꺼버리는 선택을 하죠. 하지만 ‘정의로운 아내’가 ‘무심결에 켜버린 양심’ 때문에 상훈은 늘 피하기만 급급했던 죄악과 처음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가하면, 극중 아파트 ‘뒷산의 보수’ 문제도 상징적인 장면을 만들어 냅니다. 당장 해가 되지 않는 일,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대중들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극 초반부에 상훈은 비가 오면 뒷산에 산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우려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영화 결말부에 비가오자마자 뒷산은 산사태를 일으키고 토사물 속에는 희생자들과 살인마가 뒤섞여 있게 되죠. 이 장면은 뒷산의 산사태가 막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방치한 덕분에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살인마와 희생자를 병치시킴으로써 결국 인재(人災)가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불렀다는 메시지를 남기게 됩니다.
어떤 영화든 이미지로 주제를 드러낼 수 있다는 건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의 기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요. 이 작품 역시 그 점에서 아주 탁월한 건 아니지만, 이처럼 주변 이미지를 단순한 배경 설명으로 소모하지 않았다는 건 확실합니다. 최소한 영화의 기본은 하고 있고, 돈벌이 때문에 정크 이미지를 쏟아내지는 않는다는 거죠.
우리는 이제 살인마 이야기에 익숙하다. *사진 : 다음 영화, <목격자>(2018)
B POINT 1. 참신하기 어려운 ‘살인마’ 이야기의 한계
하지만 역시, ‘살인마와의 대결’은 식상한 일입니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이 작품을 뛰어넘는 좋은 작품들이 많습니다. <추격자>(2008)만 해도 그렇죠. 범인이 미리 정체를 폭로하는 문법도 이미 오래전, <올드 보이>(2003)에서 정립되어 고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초긴장의 스릴러를 기대한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이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실 현대 영화에서 살인마와의 대결은 이제 ‘어떻게 잘, 기상천외하게 죽이냐’로 귀결되곤 하니까요. 토막살인에도 큰 충격을 받지 않는 요즘 현대인들에게 망치로 머리를 내려찍어 죽인다는 건 그렇게 색다른 방법은 아닐 겁니다. 극악무도함에 있어서는 <악마를 보았다>만한 영화도 없겠죠.
작품 속의 ‘살인마 이야기’도 어쩔 수 없이 진부함을 껴안긴 하지만,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도 썩 참신한 편은 아닙니다. 특히 집단의 이기심을 표현할 때 아파트의 집값을 우려하는 모습 등은 현실적인 익숙함을 주긴 해도 관객들 모두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내용들이라 역시나 진부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파트라는 배경 속에서 꺼낼 수 있는 소재가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면, 뒷산의 산사태를 가지고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니 아주 텁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급하게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 같이 자꾸만 걸리는 개연성 *사진 : 다음 영화, <목격자>(2018)
B POINT 2. 허술한 동기부여
이 작품의 최대 단점은 사건을 목격하는 주인공이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다소 헐겁다는 겁니다. 이것은 개연성에 치명타를 입히기 때문에, 관객 스스로가 적당한 이유를 따로 붙이지 않으면 영화를 보는 내내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영화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극 초반부에 ‘경찰은 믿지 않는다’는 상훈의 태도를 보여주고, 상훈의 동료가 보이스 피싱 전화를 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개인정보가 쉽게 나돈다는 점을 인식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요소들이 모여 상훈의 잠재적 공포가 되었다고, 신고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고 관객들을 설득하죠.
하지만 제일 처음 언급했던 키티 제노비스 사건처럼 일반적인 상황에서 시민들은 비록 직접 도움을 주진 않겠지만 경찰 신고조차 꺼려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아파트와 인근엔 엄청난 CCTV가 배치되어있다는 건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아무리 비범한 살인마라도 아파트라는 촘촘한 감시지대에 며칠을 자유자재로 드나든다는 건, 특히 사건 때문에 형사의 잠복수사가 시작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살인마가 미리 아파트의 동선과 감시망을 철저히 확인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수사에 혼선을 주기위해 살인마가 가짜 범인을 이용한다는 설정이 등장하긴 하지만, 우발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필 딱 스토커가 붙어있었던 여자가 탈출했는지, 그 스토커를 활용할 생각, 아니 조사는 언제했는지 여러모로 문제점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번째 목격자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상훈이 신고조차 하지 않고 잠자코 있어야만 하는 상황을 좀 더 단단하게 조성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TV 뉴스에서 사라진 연쇄살인마에 관한 뉴스를 흘린다던지, 혹은 경찰이 어떤 범인을 잡는데 대대적인 수색을 했음에도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돼 때마침 경찰을 불신하게 됐다는 등, 일련의 계기를 더 확실하게 얻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혹은 억지스런 ‘가짜범인’ 때문이 아니라, 수사를 빨리 종결시키려는 어떤 압력 때문에 수사팀이 와해됐다는 설정이 있었다면 ‘이기적 사회가 낳는 불신의 연쇄’가 더 강조되어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 소시민의 윤리 한계와 갈등을 포착
2. 주제를 향한 끈질긴 집념
3. 이미지로 드러내는 철학
1. 진부한 소재의 한계
2. 허술한 동기부여
본 리뷰는 '작가와 소통하는 살아있는 미디어'
마나마인(https://www.manamine.net)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리뷰에 관해 새로운 기획을 시도해봤습니다. 변화와 관련해서 좋은점이나 나쁜점 등 아무것이나 피드백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글이 너무 길고(이전에도 그랬지만) 말투의 변화 때문에 산만하다는 점이 눈에 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