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중독 19. 사람에 대하여 - 무엇이 인간을 사람으로 정의하는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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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중독 19. 사람에 대하여 - 무엇이 인간을 사람으로 정의하는가?(1)


‘인간’이라한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 중 이족직립보행을 하는 영장류의 한 종일 뿐이다. 단지 이정도의 분류라면 고릴라나 인간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우리가 사람이라고 하는, 하나의 인격체인 ‘사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내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는 ‘동물적인 본능을 억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사람도 동물인 이상 기본적인 생리욕구가 있다. 우리는 매일 대소변을 보고 때로는 성욕에 지배받는다. 물론 동물들도 아무때나 이런 생리욕구를 해결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일단 욕구가 들면 즉시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인간은 욕구가 들었다고 그것을 즉시 실행하지는 않는다. 생리현상을 풀기는 하지만, ‘적절하고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서 해결한다. 가령 길거리에서 변의가 들었을 때 우리는 화장실을 찾는다. 사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생각이 들자마자 길거리 한복판에서 똥을 싸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배설물이 길거리 아무 곳에 널려있으면 위생의 문제가 발생하고, 전염병이 창궐한다. 때문에 인간의 오랜 역사는 길거리에서 배설하는 행위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규정했고, 우리는 그러한 행위를 혐오하도록 교육받았으며, 그런 교육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즉시 배변하는 행위가 나에게 기쁨이며, 이익이 되는 행위일지라도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직 문명의 양식을 배우지 않았고 사회적 합의에 동의하지 않은 ‘아기’들은 동물의 영역에 있다. 그들은 필요하면 울부짖고, 싸고 싶으면 싸고 움직이고 싶으면 움직인다. 다만 이러한 아기들에게도 인격적인 대우를 갖추는 까닭은, 그들이 후에 인격을 형성할 가능성이,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침팬치의 새끼나 사람의 새끼나 행위 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사람의 새끼는 사람이 될 확률이 있기 때문에 ‘아기’라는 별칭도 부여한다.

앞서는 가장 기본적인 배변 욕구에 관해서 언급했지만 사실 이는 인간이 지닌 다른 욕구에도 해당된다. 배고픈 것, 추운 것, 감각적인 것들에서부터, 살고 싶은 것, 섹스하고 싶은 것 등의 생명과 직결되는 욕구들까지 우리는 욕구해결에 대한 요구를 끊임없이 받고 산다. 사람이라면, 이들 욕구를 즉각적으로 해결하지 않을 이유를 알고 있으며 이를 이해한다. 만약 동물적 영역에 있는 한 남자 인간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는 옆에 굶주린 아이들이 있어도 감자 하나가 떨어지면 아이들을 밀치고 혼자 다 먹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그곳이 춥다면 아이들을 이불삼아 그들이 동사하든 말든 자신의 추위를 피할 것이고, 그들이 있는 방에 물이 차오르면 아이들을 발판 삼아 먼저 탈출하거나 혹은 아이들을 고무튜브 삼아 위기를 빠져나올 것이고, 어린 소녀가 발가벗겨진 채로 던져지면 고민 없이 범할 것이다. 이 같은 인간은 과연 ‘사람’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고 동물적 호칭인 ‘인간’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늑대소년의 사례처럼, 인격을 형성할 기회를 박탈당해 영락없이 ‘인간’이 되어버린 부류가 있는가하면, 분명히 본능을 제어해야하는 합리적인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본능을 탐닉하는 인간도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제법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예컨대 자아를 자각할 능력이 없는 인간이 본능에 따라 사람을 해쳤다면, 그 인간에게 죄를 물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나는 그런 경우에 대해선, 사회가 이러한 인간을 인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 영역을 적절히 제어했는지, 그 부분에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전자의 경우는 비록 ‘인간’이기는 해도 비난할 만한 것은 못된다.(설령 그를 비난하고 형벌을 준다고 해도, 그는 그것이 ‘죄’인지, 자신이 겪는 문제들이 ‘형벌’인지 조차도 모를 것이니까)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상당히 악질적인 부류로, 사람은커녕 본능에 따라 생리욕구를 해결하는 동물들의 그것보다도 못하다. 그러므로 그런 부류에겐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욕이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그들은 어쨌거나 본능을 제어하지 않으므로 ‘인간’이며, 본능을 따르기는 해도 사람에게 친애를 보이는 개들보다도 나은 것이 없으므로 개만도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람을 판가름하는 첫째 기준인 ‘욕구를 제어할 수 있는 인간’은 사람과 동물을 구분 짓는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것은 때로 동물들도 보여주곤 하는데, 예컨대 범고래의 공격을 받는 물개를 구하는 혹등고래의 기이한 이타심은 능히 사람의 영역에 있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사람의 면모’는 한 단면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이라고는 하지 않고 ‘영물’이라는 존칭을 사용한다. 어쨌거나 이 첫 번째 기준은 진정한 의미의 사람을 발굴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배제해야할 존재를 거르는 그물망 정도로 여길 수 있겠다.


*글이 길어져 두 편에 나눠서 업로드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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