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오늘은 너와 함께 걸어왔던 길도
하늘 유리 빛으로 반짝여
헤어지고 나 홀로 걷던 길은
인어의 걸음처럼 아렸지만,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소중한 너를 잃는 게 나는 두려웠지.
하지만 이젠 알아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걸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피리
드넓은 저 밤하늘 마음속에 품으면
투명한 별들 가득
어제는 날아가 버린 새를 그려
새장 속에 넣으며 울었지.
이젠 나에게 없는 걸 아쉬워하기보다,
있는 것들을 안으리,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걸
두려워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걸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간 끝나니까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 없으니
수많은 저 불빛에 하나가 되기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 바라봐
온스테이지 동영상에서 이상은 님의 이 노래를 우연히 들었다. 그리고 계속 듣고 있다가 글을 쓰고 싶어졌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이상은 님은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도 모두 멋진 여성이다. 이런 여성과 연애하고 싶다. 생각은 자유이니까,
Planeta tierra en el espacio renderizado 3d | Descargar Fotos premium
드넓게 펼쳐진 우주 속 이 작고 푸른 행성 지구별에 태양빛이 조금씩 비추며 스며드는 과정을 묘사한 장면을 어느 영화에서 보았습니다. 우주에서 보는 지구별의 새벽녘을 포착한 광경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우주에서 바라보나 지구 안에서 땅을 딛고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나 모두 푸르릅니다. 그래서 창천(蒼天)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푸름(蒼)은 생명을 상징하는 빛깔이지요. 인간(人間)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사이 간(間)의 글자 속에는 햇빛이 펼쳐집니다. 생명은 영혼을 담은 그릇이라고 하지요. 영혼을 빛이라고도 하지요.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시간의 틈(間) 속에서 이미 품고 있는 빛을 찾아 헤매고 있는 존재가 인간인가 봅니다.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 드넓은 이 세상 어디든 평화로이 춤추듯 흘러가는 신비를, 삶은 여행/이상은
우리는 태어난 이유도 그리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여행자입니다. 언젠가는 떠나가야 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즐기는 가 봅니다. 끝마침을 항상 연습하는 것이지요.
저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습니다. 자유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걸림이 없는 것입니다. 있음과 없음, 성공과 실패 등에 미련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영혼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합니다. 자포자기 하라는 뜻이 아니고 결과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과정을 즐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여전히 어렵습니다.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을 바라보고 한숨을 푹 내쉬고 몸도 마음도 쉬어야 합니다. 이미 나의 마음 속에 빛(日)을 머금고 있으니까요. 그러한 뜻에서 태어남과 죽음까지 삶의 여정에서 한숨과 같은 쉼의 행동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아마도 여행일 것입니다.
저는 관계를 느슨하게 하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10여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사회적 구속을 벗어나 마음을 쉬고 싶었습니다. 제 멋대로 여행한지 벌써 13년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려 합니다.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아마도 그가 속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구성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 그물망에 메이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제이지 몸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몸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지요. 몸과 마음은 따로 또 같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몸과 마음의 덩어리들이 모여서 형성되어 쌓여진 문화의 결도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에게 덕지덕지 달라붙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에 메이지 않는 삶은 아주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관계를 떠난 삶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수 있을까요?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그물들은 한없이 중첩되어 있어 촘촘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나와 네가 만드는 관계의 그물은 시시각각 계속 덧붙여 집니다. 때로는 팽팽하고 때로는 느슨하지만 결코 끊을 수가 없습니다. 성가시고 괴롭기만 합니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입니다. 마음이 있는 존재는 나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남이 나를 제어하지 못합니다. 다만 제어된다고 착각할 뿐이지요. 아마도 사회적 관습, 문화, 종교 등이 만들어 놓은 생각의 그물망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의 기대는 다르기 때문이고 모두를 만족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러니 포기해야하고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용서해, 용서해 그리고 감사해 시들었던 마음이 꽃피리, 삶은 여행/이상은
저는 영성과 마음의 학문에 관심이 많습니다.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변화는 파괴와 생성의 과정이 분리되지 않는 한 몸입니다. 파괴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파괴된 모습이 파괴의 작용과 동시에 발생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파괴만 있다면 처음부터 어떠한 모습도 확인할 수 없는 것이지요.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홀로 존귀하다(獨尊)고 표현했지 홀로 존재한다(獨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홀로 존재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독립성보다는 다양성을, 일치보다는 조화가 더욱 가치 있다는 의미겠지요. 상호의존이라는 피하지 못할 이 상황에서 함께 고민하며 살아가야 하는 조화로운 삶,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의미를 모르지 않고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모르기도 합니다. 완전히 안다면 두렵거나 괴롭지 않을 텐데 여전히 괴롭고 두려우니까요. 그러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도 동양의 전승 지혜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어리석으니까요.
삶은 계속되니까 수많은 풍경 속을 혼자 걸어가는걸 두려워했을 뿐 하지만 이젠 알아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어야 했던걸, , 삶은 여행/이상은
대학 다닐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서양의 멋스러움이 부러웠습니다. 불혹(不惑)의 나이를 훨씬 넘어 지천명(知天命)에 가까워지는 이제서야 배낭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아직도 귀가 얇아 이쪽 저쪽의 말들에 동요됩니다. 천명(天命)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모릅니다. 헛된 공부만 한 셈이지요. 공부는 지적 유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새겨져서 드러나야 합니다. 팽팽하고 느슨한 관계의 그물망을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치장되어야 합니다. 그 그물망에 맑고 고운 멜로디를 내는 종을 달아주어야 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되기 힘드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매달아 놓은 종은 타자와 관계하는 시시각각 아름다운 울림으로 퍼져나가야 합니다. 나의 이 육신은 언젠가는 바람처럼 사라질 테니까요. 아름다움은 공감(共感)으로 소통됩니다.
눈물 잉크로 쓴 시, 길을 잃은 멜로디, 가슴과 영혼과 마음과 몸이 다 기억하고 있어. 이제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 떠나리, 삶은 여행/이상은
지금 이 지구별의 여행자인 저는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 문화 속에서 커왔기 때문인지 여전히 성당에 들어서면 엄마 품과 같이 편안합니다. 그렇다고 독실한 종교인도 아니고 신학자도 아닙니다. 다만 영성에 관심이 많을 뿐이지요. 제가 이해한 영성은 변화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까닭 모르고 태어났고 죽을 때를 알지 못하고 죽습니다. 모르고 사는 인생입니다. 삶의 과정에서 괴로움과 걱정 때문에 마음이 편안할 때가 그렇게 많지도 않습니다. 그 중심에는 변화라는 축복과 고통의 아수라가 자리잡고 있지요. 변화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지요. 변화를 완전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지요. 변화에 발맞추어 아름답게 대응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종교나 철학이 이러한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그러나 고리타분함과 도그마를 우리 여행자들의 마음에 새겨놓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특정 종교성 혹은 학문적 철학을 강조하기 보다 영성의 빛을 공유하는 시대여야 합니다. 영성은 모든 문화의 뿌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에서 자라난 유럽 가톨릭 전통의 수도원을 탐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의미를 몰라서 얼었던 영혼을 감미롭게 녹여주고 다시 일어나 영원을 향한 여행을 떠나간 위대한 빛의 여행자들이 남겨놓은 발자취가 궁금했습니다. 먼 훗날 태어난 동양의 노란 콩 자유인 지향자의 눈으로 종교와 문화가 달라도 공유되는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관광(觀光)은 빛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인간(人間), 영혼의 빛, 지혜, 모두 빛입니다. 빛과 빛이 만나서 더욱 환해집니다. 인간이 어느 곳을 가든 빛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행은 빛과 빛의 만남이지요. 그래서 시간(時間), 공간(空間), 그리고 인간(人間)입니다. 프리즘을 통해서 무색의 환한 빛이 무지개 빛으로 쪼개지 듯 하나에서 비롯된 여러 개의 하나를 바라볼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공부했던 전승 지혜의 눈(빛)으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완벽하지도 않고 오류투성입니다. 길을 잃은 멜로디일지라도 그냥 관광(觀光)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는 인간(人間)이니까요.
ps. 포스팅 한지 한 달이 지났다. 관성이 무섭다. 써야지 하다가 막상 글을 쓰려니 잘 써지지도 않는다. 유럽 수도원 기행을 출판하기 위한 정리작업에 들어갔다. 그래서 더욱 포스팅하기가 버겁다. 트립스팀을 통해서 써둔 토막글을 모아서 도서출판 춘자(choonza)에서 출판하려고 한다. 스팀시티에서 새롭게 블록체인 기반의 코인을 발행하려고 한다. 콘텐츠 생산 취향 공동체인데 여기에 소액을 투자하려고 한다. 종잣돈이 조금 더 많았다면 이곳에 더 투자하고 싶지만, 스팀과 다른 가상화폐에 물린 돈이 상당하므로 우선 가용한 범위에서 투자하려고 한다. [스팀시티] 아스타리아와 춘자의 공식 IR 나는 아직도 콘텐츠 생산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 아스타리아와 춘자는 탈중앙화와 독립출판에 초점을 맞추되 법화 기반 콘텐츠 산업의 시스템과 맞물려 설계된 생태계인 것 같다. 내가 이들을 믿는 이유는 꾸준함이다. 아직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어려운 가운데 계속 자신들의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콘텐츠 생산자로서 여기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다. 여기에 올리는 글은 수도원 기행의 머리말을 고민하다가 쓴 토막글이다. 출판에 올라갈 글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 써보았다.
스팅, 삶의 타짜를 노래하다
칼의 노래 : 칼날 같은 인생을 노래하다
Anita, 동조화(Synchronization)를 노래하다(In my little corner of the world)
해철과 빌리, 원맨 아카펠라로 인생과 사랑을 읊조리다
Keane 불교의 삼법인(三法印)을 노래하다/ Everybody’s changing
희은 백구를 노래하다 / 나의 강아지 뭉치를 그리워하며
Starship이 STIM City 선동가를 제안하다 / Nothing’s Gonna Stop Us Now
해철이 해철에게 편지를 쓰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Letter to Myself
연우와 폴 바람을 노래하다 /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중년 남자 송창식 선운사(禪雲寺)의 상징을 노래하다/부제: [동백2(冬栢)] 스티미안 자연사(自然史) 박물관
송창식옹 헛바람 넣지 마세요/부제 : 고래사냥에 대한 반박/부부제(뉴비를 위한 가이드): 스티미안의 꿈3
에피톤 프로젝트 제주도의 상징을 노래하다/ 유채꽃
날아라 슈퍼보드 아이들에게 주문을 가르치다(치키치키차캬차캬초코초코쵸)/주문을 훈민정음 제자원리로 해석하다
광석이 법정을 노래하다 / 맑고 향기롭게(淸香)
Pink Floyd가 마인드 와칭(Sati)을 노래하다 (부제: Wish you were here /현실을 바로보라)
현정은 추억과 상처에 관한 정신심리학자이다 / (부제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임현정)
듀스(DEUX)가 떠나간 여인에게 찌질한 저주를 퍼붓다 [떠나버려(초라하다)]
젋은 날의 사랑(외사랑 그리고 짝사랑)
모래위의 발자취 (부제: 미련만 남아서)
소라가 바람을 노래하다 (부제: 나에게서 무너지는 시간, 바람과 같이)
시경(詩經)도 대중가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