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별안간 연극을 보잔다. 소싯적(?)이었다면 대번 거절했을 테다. “난 됐어.” 시간은 나에게 돋은 뾰족함을 얼마간 마모시켜주었다. 홍대로 가잔다. 연극 관람 하면 대학로 아니었나? 내가 생각한 연극은 아니었나 보다. 친구의 군 후임이 홍대의 소극장에서 개그 공연을 한다고 했다. 네 지인 중 개그맨이 있다고? 내게 연예인의 아우라가 스러진 지는 오래 되었다. 내가 몰랐던 친구의 인연에 모종의 낯설음을 느꼈다. 친구라고 해서, 그에 대해 다 알 수는 없다.
오랜만에 인파를 만났다. 얼마 전, 수족관에 다녀온 일화를 끼적으며 그곳이 관람객으로 붐볐다고 썼다. 과장을 썪어 말하면 수족관 관람객은 홍대 인파에 견줘 조족지혈이었다. 홍대역 9번 출구는 연방 사람을 토해내고 있었다. 9번 출구 계단을 힘겹게 올랐다. 사람들은 제 보폭의 개성을 죽인 채 합을 맞췄다. 계단 등정을 마치니 KFC 간판이 시야에 들어섰다. 그곳엔 여전히 만남의 상대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았다. (금~일요일) 20대 생활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 홍대 앞이라는 기사를 읽었다(기사<중앙일보>). 친구를 기다리며 바라본 홍대 거리는 기사의 신뢰성을 보증했다.
평소 약속 시간을 고수하는 친구는 아니다. 본인 제안으로 이뤄진 만남인 데다 개그 공연 관람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였는지 친구는 제시간에 도착했다. 티켓을 산 후 공연 시간까지 제법 여유가 있어서 거리를 배회했다. 겨울은 소임을 다했고 봄은 등장할 채비를 마친 듯했다. 확연히 풀린 날씨를 체감한 것이다. 극장의 대표 개그맨이 사람들과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친구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질색했다. 그럼 사진이라도 찍어달란다. 잘라 거절했다. 친구는 기어코 개그맨과 (셀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정도는 찍어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겸연쩍었다. 친구는 개그맨과 찍은 사진을 부리나케 연인에게 전송했다. 내 친구 중에 조르바가 있었는지 몰랐다.
공연 시작에 앞서 한 개그맨이 나와 분위기를 띄웠다. 시쳇말로 바람을 잡는다고 하나? 그 사람이 친구의 군 후임이었다. 그는 토크를 하며 청중과 호흡했다. 관객은 그에게 호응했다. 한두 번 잡아본 바람이 아닌 듯했다. 친구는 참 호응도 잘했다. 호응도사라 불릴 만했다.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고 마침내 공연이 시작됐다. 꽤 재밌는 꽁트도 있었고 억지스러운 코너도 보였다. 나는 공연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관객 역할에 빠지기보다는 개그맨의 입장이 되보곤 했다. 작위적이라 폄훼한 극도 있었는데, 나는 더 나은 대본을 쓸 수 있을까? 직접 극을 만드는 장면을 상상하니 개그맨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친구는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지르고 크게 웃었다. 그야말로 박장대소였다. 그는 나보다 웃음의 임계점이 낮았다. 그는 공연의 바다에 뛰어들어 제 몸을 흠뻑 적셨다. 내 몸이 고체라면, 그의 몸은 분말이었다.
<출처 : JTBC 썰전>
‘감응하다’라는 동사를 보면 (뜬금없지만) 나는 가수 박진영이 떠오른다. 케이팝스타에 출연했던 박진영의 표정을 보며, 과장이라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달리 생각했다. 박진영은 타자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 느끼는 대로 몸이 반응하고, 그 반응은 극적으로 표정에 드러났다. 느끼는 대로 가감 없이 표출하는 그들(친구·박진영)이 나는 자못 부럽다.
<출처 : SBS 박진영의 파티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