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사진은 프랑스 파리, 몽테뉴거리에서 담았다. 샹젤리제거리에 가던 도중 잠시 몽테뉴거리를 훑었다. 그곳에는 이른바 명품 매장이 군집해 있었다. 고풍스러운 건물에 자리잡은 고급 매장의 휘황함이 여행자의 눈길을 붙들었다. 상점들은 제까끔의 차별화를 전시하며 저마다의 위세를 뽐냈다. 물품을 구입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거리의 인상을 맛봤다면 예정지로 직행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매장이 들어선 구도가 퍽 낯설었던 터라 사진을 찍는 데 시간을 좀 더 할애했다. 무엇보다 거리의 이름이 맘에 들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의상, 구두, 가방, 액세서리 따위에 시선을 뺏겼지만 그보다 인상적인 장면은 그들 옆에 내걸린 가격표였다. 한국에서는 그처럼 대외적으로 값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 생경함에서 솔직함을 느꼈다. (복잡한 논리 회로를 거친 생각은 아니었다) 그만한 지불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일찌감치 단념하라는 선언으로 읽혔다. 거만함으로도, 소비자의 감정 낭비를 염려하는 친절함으로도 다가왔다. 쇼윈도에 배치된 가격표 하나로 그 나라에 투명사회라는 개념을 덧씌우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러나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만큼은 거짓이 아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한 번쯤은 가 보았을 것이다. 구인자들이 내건 텍스트를 살펴보면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사항이 눈에 띈다. 구직자에게 바라는 그들의 요구(경력·자격증·성적 등)는 분명한 데 반해 임금란에 들어찬 언어엔 구체성이 없다. ‘회사 내규에 따름’ 등의 불성실한 글자를 읽고 있자면 속이 꽉꽉 막힌다. 시간을 팔아 인터넷을 뒤지면 해당 회사의 임금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나? 죄를 짓고도 쉬이 사면 받던 회장님들의 언어를 대동하자면, 한국 사회가 정직해지고 솔직해지고 투명해지기를 바란다. 노동을 사려는 구인자들은 임금란을 명확한 언어로 다시 채워야 한다. 몽테뉴거리에서 맞닥뜨린, 쇼윈도 너머 적나라했던 가격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