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한국의 어느 도시에 소재한 대형마트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한다. K가 근무하는 곳은 전국에서도 손꼽을 만큼 연식이 있다. 때문에 건물 구조가 결코 노동자 지향적이지 않다. 노동자를 위한 생각이 결여된 건축인 셈이다. 일례로 고객에게 선보이기 전에 물품을 적재해 놓는 창고가 매장과 같은 층에 있지 않다. 목적지에 닿으려면 지층을 뚫고 더 내려가야 한다. 신설 마트는 그처럼 기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 않다. 노동이 고된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창고나마 동일 층에 위치한 덕분에(건물 구조의 수혜로) 노동의 강도가 눅어질 것이다.
K는 매장에 비치할 물건을 가지러 지하 창고로 향한다. 갖가지 물품은 철제 앵글로 짠 선반의 몸통에 들어차 있거나 그 머리 위에 올라앉아 있다. K는 물건을 살피러 선반 위에 오른다. 오르내리고를 반복해 온 K이지만 물건의 면면을 확인하고 내려오다 그만 앵글에 다리를 헌납한다. 날이 선 앵글 측면은 만유인력과 합작하여 K의 왼 무릎 아래의 왼쪽 살갗을 찢어 놓는다. 접지한 순간 가벼운 상처가 아님을 직감한다. 벌어진 표피 사이로 일시에 미끄러져 나온 혈액의 빈자리를 한기와 현기증이 점거한다.
K를 태운 부서 담당자의 자동차는 영업장과 연계된 병원에 도착한다. 치료의 전당으로 가는 첫 관문은 원무과이다. 담당 직원이 묻는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다리 살갗이 찢어져서요.” K의 시선은 직원의 얼굴을 흠칫 훑는다. “괜찮으세요?” 의례적 물음일 것이 명백하나 K는 일이 벌어진 이래 처음으로 보살핌의 감정을 느낀다. K는 응급실로 가 바지를 걷어 올려 맨살을 전시하고, 의사인지 준의사인지 모를 사내는 간호사와 잡담을 나누며 상처 부위를 봉합한다. 멀티태스킹에 능한 (흰 가운을 걸친) 재봉공에게 언짢은 기분이 들면서도 얼마큼의 정신은 원무과를 배회한다.
K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의사에게 상처의 호전 여부를 확인 받는다. 의사를 만나려면 절차상 원무과에 들러야 한다. 평소였다면 거추장스럽기만 한 이 통과의례에 K는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조급해진다. 꿰맨 실밥을 풀 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마침내 운명의 날, 의사와의 마지막 대면을 주선하려는 직원에게 K는 미리 준비한 작은 카드를 주저하며 건넨다. 사나흘 애를 태우다 K의 휴대전화에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한다. K는 다리를 다친 일을 포함하여 일련의 상황에 무한히 감사하며 생生의 환희에 탄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