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을 위한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들은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규칙을 깬다는 건 우리가 전혀 모르는 존재가 되어 버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드라마 DEXTER 중에서
미국 드라마 덱스터를 재밌게 봤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시즌이 있긴 했으나 드라마라는 게 한번 재미를 붙이면 좀 마뜩잖아도 연속해 보게 되는 성격이 짙다. 아무튼 볼만한 드라마였다. 원작 소설이 있는 것으로 안다.
불신을 유예한 채 몰입해 보면 꽤 그럴 듯한 이야기로 비친다. 모친이 도륙되는 현장에서 살아남은 아이. 그 아이를 경찰관이 거두어 보살피지만 아이는 성장하며 살인 충동을 느낀다. 아이의 아버지가 된 경찰관은 장래 직업이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아이를 위해 코드를 만든다. 코드는 별게 아니다. ‘기왕 살인할 거 나쁜 놈을 죽여라.’ ‘들키지 마라.’ 등등.
불신의 유예를 철회하자. 핍진성이 결여된 스토리임을 대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따금 나는 덱스터가 실존하면 어떨까 하는 자못 불온한 생각을 해 본다. 세상엔 악독한 자가 꽤나 많으므로. 작가란 사람들은 현실의 분노를 작품 안에서 해결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이 가공한 캐릭터를 자신이 가공한 흉기로 난자하여도 사법 처리 따윈 받지 않는다. 음악을 듣다가 생각이 왜 이쪽으로 튀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