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국면 당시 안철수 선거 캠프의 이름은 진심캠프였다. 캠프 명칭을 두고서 뱉은 한 지식인의 우려 섞인 한마디를 나는 여태 기억한다. 캠프를 대변하고 치장하는 수사로 하필 진심이란 추상적 어휘를 골랐느냐는 핀잔이었다. 그는 안철수 지지자였으므로 초를 치거나 부러 깎아내리려는 심산은 아니었으리라. 포털을 돌아보니 2018년에 치른 지방선거에서도 캠프 머리에 진심이란 모자를 씌운 선거 캠프가 몇 있다. 진심은 좌‧우‧중도를 막론하고 자기를 광고하는 이들이 선호하는 액세서리인 모양이다.
진심1眞心
1 .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비슷한 말] 실심3(實心).
2 . <불교> [같은 말] 심성1(心性)(2. 참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本體)).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비단 정치인들만의 일일까. 인간은 일생을 진심과 진정을 간구하는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헛것을 좇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진심에 가까운 마음은 분명 살아 있다. 단지 우리가 명징한 현상으로서 그와 대면할 수 없을 따름이다. 가족 혹은 소수의 친구 등 나 역시 진심을 바라는 대상이 있긴 하다. 그러나 대상의 범주는 초라할 만큼 한정돼 있다. 진심에 예종하지 않기 위한 삶을 추구하다 보니 이러한 결론에 낙착했다. 진심이란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행동을 신뢰한다.
진심 도‧소매상들은 선언하기를 좋아한다. 문장 안에 진심을 포섭하여 그럴듯해 봬는 선언을 양산하는 것이다. 물론 선언이란 깡그리 쓸데없다는 말이 아니다. 귀담아야 할 것도 명백히 있다. 내가 지칭하는 것은, 당장 듣기엔 좋으나 곱씹으면 하나 마나 한 말 따위나 청중, 관객, 독자의 복리와 별 결합성이 없는 발언들이다. 거창하게 진심 어린 (또는 그것이 물구나무 선) 선언을 할 것 없이 (일기장을 애용하고) 그저 행동하면 그만일 터인데···. 판매자들만을 탓할 수도 없다. 진심을 구하는 소비자들은 도처에 널렸다. 진심 영업은 수지 맞는 장사이다.
진심의 형제격인 선의, 호의, 의리 등의 단어를 앞세우는 것도 마뜩하지 않다. 나는 어수룩한 선의, 호의, 의리에 의지하기보다는 합리적이고 엄정한 계약을 중시하는 사회를 원한다. 추상적 개념으로써 채색하는 행태를 믿지 않는 것이다. 명료하고 공정한 언어로 가지런히 새겨긴 활자, 그리고 그것의 엄격한 이행. 당최 알 수도 없는 진심 찾기에 천착할 필요가 있을까.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가 행할 최선의 방법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