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적이다] 드라마

perspector(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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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를 제대로 본 지 오래 되었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SBS에서 방영했던 손예진, 감우성 주연의 <연애시대>가 마지막이다. 요사이 손예진이 어떤 드라마에서 주목을 받았다던데, 그래서 더욱 그 드라마는 못 보겠다. 내게 손예진의 소위 리즈 시절은 <연애시대>에 출연할 때이다. 최근 방영한 드라마 얘기를 잠시 하자면, 손예진이 연하의 남자를 만나는 이야기 같다(맞나?).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를 앞세워 시청자를 현혹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는 듯한데. 글쎄, 극은 본래 판타지의 속성을 품고 있고, 시청자는 그것을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고, 드라마가 종영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씌인 달콤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들 것이고. 판타지라도 없다면 이 세상 얼마나 팍팍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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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작품은 완성도가 꽤 높았던 드라마였다. 피아니스트이자 가수(?)인 노영심 씨의 남편 한지승 씨가 연출을 맡았다. 한지승 감독은 드라마보다는 영화 쪽에 속했던 사람이다. "헤어지고 시작한 이상한 연애." 이 문장이 드라마 <연애시대>의 골수이다. 이혼한 두 사람이 우정을 빙자하여 만남을 지속하다가 결국 다시 이루어지는 이야기. 자명한 스토리라며 손사래 칠 사람도 있겠지만 하늘 아래 휘둥그레질 만큼 참신한 스토리가 몇이나 되겠는가. 배우들이 읊는 대사, BGM 모두 꽤 좋았다. 스윗소로우가 이 드라마의 O.S.T.로 유명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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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감우성이 연기한 캐릭터의 직업은 서점 직원이다. 대형 서점이, 글쓴이가 파트타이머로서 제일 오랫동안 근무해 본 곳이다. 서점을 택하도록 추동한 것 중 하나가 <연애시대>의 몇몇 장면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서점에 대한 로망은 그때 다 깨졌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기회가 닿을 때 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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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의 원작은 일본 소설이다. 원 제목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만 번역돼 출판한 도서는 드라마 제목과 동명이다. 1, 2권으로 발간된 그 책을 사 읽었다. 드라마와는 결말이 좀 달랐던 듯한데 기억이 희미하여 정확하진 않다. 원저의 작가는 일본에서도 꽤 이목을 끈 사람이었던 것 같다(조사가 부족하여 서술어에 박력이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生을 스스로 마감했다.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작품에 대한 악플이 하나의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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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글이나 말이나 남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할 때는 표현에 신경 써야 한다(부패한 권력자 '풍자'는 논외). 자기 생각을 정중하고 가지런하게 형상화하는 게 우선이다. 그럼에도 상대가 막무가내로 나온다면, 그제야 냉소해도 늦지 않다. 돌발적이고 즉각적인 비아냥을, 쿨함이나 발랄함(?)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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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드라마를 화두로 삼은 까닭이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한국 드라마를 시청했기 때문이다. 혹 오해를 살까 사족을 달자면, 한국 드라마가 후져서 부러 기피한 것은 아니다(이게 다 관성 탓이다!). 그조차 최근에 방영한 드라마는 아니다. 김현주가 최서희 역을 맡은 2004년판의 <토지>이다. 1, 2편만을 봤는데, 텍스트로써 머릿속에 그렸던 등장인물을 극에서는 어떤 연기자가 배역하는지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가 윤보인데, 흠, 좀 미스캐스트로 보였다(연기 차치). 이용을 박상원이 연기했는데, 흠, 이용은 키가 더 클 텐데,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 눈엔 (드라마에서는) 월선이보다 강청댁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아, 그런데 귀녀! 귀녀를 조안이 연기했는 줄은 몰랐다. 조안, 귀녀 역할을 꽤 잘 해냈다. 김평산을 연기한 유해진도! 김평산이 되려면 살집이 더 좋아야 할 듯하나.
캐스팅 얘기하면 끝이 없고, 솔직히 드라마보다는 (비교하는 게 민망할 만큼) 소설이 훨씬 재밌다. 그러나 20권 분량의 대하소설을 그만한 영상으로 뽑아낸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3회까지 보고 계속 시청할지를 결정해야겠다.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는지. 서늘한 달이 산마루에 걸리면 자잔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소복 단장한 청상의 과부는 밤길을 홀로 가는데—팔월 한가위는 한산 세모시 같은 처랑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默示)하는 축제나 아닐는지. 우주 만물 그 중에서도 가난한 영혼들에게는.

『토지 1권』(박경리, 나남출판, 2006, 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