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입니다. ①책이 내세우는 주제를 보고 ②타자의 추천으로 ③표지가 예뻐서 등등 선택의 기준은 실로 다양합니다. 물론 각각의 기준이 매번 독립하는 것도 아니지요. 선택을 추동하는 요소들은 때론 교집합을 이룹니다. 수많은 요소 중 저는 ‘작가’를 지목하고자 합니다. 텍스트 첫 문장을 읽자마자, 본인의 책 선택의 가장 유력한 기준은 작가라고 했을 분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때 알랭 드 보통의 저서를 찾아 읽었습니다. ‘한때’라는 단서를 두었다고, 제 작가 리스트에서 그를 폐기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과거보다 독서량이 현격히 줄어서 차마 현재진행형으로 쓸 수 없다는 저만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위시하여 늘어선 보통의 저서들은 제 손을 끌어당겼습니다. 보통의 데뷔작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원제 : Essays in Love)는 지금 읽어봐도, 작가의 첫 작품이라기엔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저는 원서까지 구매했습니다.
보통은 흔히 말하는 ‘낯설게 하기’의 달인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일상의 장면들을 그는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이름이 보통이어서일까요? (죄송합니다) 그가 방점을 찍은 일상의 장면을 맞닥뜨리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쉬이 넘겨 버릴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외국 작가만 한껏 띄워주는 것은 뭔가 찝찝합니다. 한국 작가도 한 명 언급하겠습니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장정일입니다. 저는 장정일의 시집이나 소설을 읽은 일이 없습니다. 장정일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은 <장정일의 공부> 한 권이 고작입니다. 아마 장정일은 한국의 다독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사람일 겁니다. 읽어 나가는 책도 결코 가볍지 않고 묵직한 것 일색입니다. 그러니 일간지나 주간지에 그리 오랫동안 독서 칼럼을 연재하는 것이겠지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그 말고도 많습니다. 그가 엄청난 다독가이기만 했다면, 저는 장정일을 소환하지 않았을 겁니다. 장정일의 칼럼을 읽고서, 그가 펼치는 생각의 방향성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거의 매번 합니다. “어떻게 이 시기에, 이런 생각을 했을까?” 저는 제가 깨닫지 못했던 것을 일깨우는 텍스트를, 그리고 그것을 쓰는 작가를 좋아합니다. 카프카의 표현을 빌리자면, 활자라는 도끼를 내려쳐 내면의 얼어 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장정일이 신작을 내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 읽을 생각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장정일은 돌아가신 마광수 선생처럼 자신의 저서로 말미암아 인신 구속을 겪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신문(1997.05.31.)>
예술 혹은 외설을 검사나 판사가 규정하고 판가름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당시 한국이 어떤 면에서 자못 촌스럽고 후졌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좀 달라졌을까요?
생각보다 글이 늘어지네요. 수미상응 형식을 빌려 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저처럼 한동안 책을 놓았던 분이 계시다면 본인이 보유한 작가 목록을 꺼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새록 옛날 생각이 나며, 다시 책을 집어 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저도 이 글을 쓰다 보니,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 자주 기웃대던 게 떠오르네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신나는 주말 보내시기를.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지하인간, 장정일>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