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을 들춰 보니, 돈가스의 순화어로 '돼지고기 너비 튀김' '돼지고기 너비 튀김 밥' '돼지고기 튀김'을 추천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벌인 일일까. 그렇다면 예산 낭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만 논점 이탈이 우려되므로 그에 관해서는 생략하고 나는 이 텁텁한 조언을 거리낌 없이 내치련다. 집에서 돈가스를 튀겼다(위에 나온 대로 돈가스는 이미 튀김이지만 개의치 않고 쓴다). 내 입에 넣을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튼 튀겼다. 나는 요리에 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요리학적으로 보건대 돈가스를 맛 좋게 튀기려면 기름을 적당한 온도로 가열하고 단시간에 조리해야 할 것만 같다. 마련된 고기와 그 외피인 밀(혹은 빵)가루의 질이 좋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울러 다이빙 준비자가 괜한 걱정 없이 잠유(?)할 수 있도록 넉넉한 양의 기름을 갖추어야 하리라.
그러나 그처럼 구비하고 요리를 하진 않는다. 하나의 돈가스를 튀기기 위해서 태평양적 기름을 쓰는 것은 내 용납의 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다. 비가 적잖이 내린 날, 완전히는 아니나 발바닥과 복사뼈의 중간에서 조금 아래 부근까지 발이 빠질 (그래서 충분히 기분이 상할) 정도, 그러니까 나는 스크루지 돼지고기가 반신욕을 할 만큼의 올리브유를 사용한다. 한쪽 면이 어느 정도 익으면 뒤집기를 반복하는 식이다. 값이 더 나가더라도 유리병에 든 올리브유를 쓴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두 가지. 플라스틱 용기의 올리브유보다 몸에 나은 원료로 만들었으리라는 의학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 하나. 위생학적으로도 유리병에 담긴 올리브유가 우월하다는 것 둘.
플라스틱 용기에서 올리브유를 따를 때면 온 신경을 기울여 보아도 (아이가 침을 흘리듯) 용기 주둥이에 기름이 묻곤 한다. 패스트푸드 식당에 앉아서 이번만큼은 고상한 모습으로 햄버거를 먹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이윽고 간절함이 배신당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유리병에 담긴 모든 제품을 사용해 보진 않았지만, 내가 사용하는 것은 기름이 주둥이를 타고서 성실히 미끄러져 내려오다가도 손목 스냅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도마뱀이 제 꼬리를 자르듯) 단절하며 자취를 감춘다. 참으로 소박하기 그지없는 이 광경 안에서 만족하고 미소 짓는 나를 발견한다. 소확행의 단면이려나? 어쨌든 그게 무엇이건, 잘 만들어진 것들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내용물의 질보다는 용기의 월등함이 제품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해 보다 이내 그만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오늘(정확히는 어제) 별안간 패닉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지체 없이 패닉 1집을 찾아 들었다. 이적과 김진표로 구성된 패닉은 1995년에 데뷔했다. 나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다. 그때도 음악으로 꼬마를 홀리더니 꽤나 긴 시간이 흐른 작금에도 성년의 마음을 흔든다. 잘 만든 음악이란 무엇일까. 일상을 영위하다 문득 찾아든 청각적 욕구의 부추김에 세월의 먼지가 덕지덕지 앉은 앨범을 꺼내 들었는데, 그 음악이 기막히게 좋은 거다. 세월에 기죽지 않은 것만도 대견한데 세련하기까지 한 거다. 이 정도면 잘 만든 음악으로서 손색없지 않을까 싶은데.
패닉 1집엔 그 유명한 <달팽이>가 수록돼 있다. <왼손잡이>와 <기다리다>가 <달팽이>와 동기간인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달팽이>를 들으며, 이 노래는 이적만 불러야 하는 곡이라는 자못 편협한 생각이 들었다. 원작자 예우 차원의 감언이 아니다. 듣기에 좋다면 리메이크된 노래를 배격할 필요는 전혀 없다. 하지만 <달팽이>만큼은 이적의 꾸밈 없는 (기왕이면 1집 때의) 목소리(발성이 현재보다 명랑하고 발랄하다)로 불러야 한다는 논리성이 결여된 감상이 강렬히 감돌았다. <왼손잡이>는 다시 들어도 완곡하게 급진적인 곡이다. <아무도> <너에게 독백> <안녕> 좌우간 전곡이 빼어나다. 명반이다.
이적은 다재다능한 인간이다. 노래 잘해, 피아노 잘 쳐, 기타 잘 쳐, 음악 잘 만들어(패닉 1집 전곡의 작사‧작곡‧편곡자는 이적이다), 심지어 공부도 잘해. 그는 픽션 『지문 사냥꾼』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읽진 않았다). 대학생 시절에는 어느 유명 평론가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는 호기로운 면모도 보인 것으로 안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인터뷰에서 그가 프란츠 카프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것도 기억난다. 가로새자면 현 국회의원 노회찬이 아마 민주노동당에 적을 두던 시기였을 테니 이적의 신인 시절은 아니었을 게다. 여하간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노회찬을 초대했다. 노회찬은 본인이 이적 단체에서 많은 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DJ(이적)가 친숙하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이제 그는 패닉 초기의 반항적이고 저항적이며 톡톡 튀었던 음악을 다신 만들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괜스레 아쉽고 섭섭하다(이 문단, 어수선하다).
잘 만든 음악을 들을 때면 언제나 즐겁다. 나는 창작자가 아니지만 (이곳에 텍스트를 조합하고 있으니 어수룩하게나마 창작자일 수 있으려나?) 실력 있는 창작자들이 생산해 내는 것들과 마주하며 (비록 일시적일지언정) 생生의 환희를 만끽한다. 그 생산품이 소설이건, 영화건, 음악이건, 그리고 돈가스를 튀길 때 필요한 올리브유가 든 유리병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