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앞에서 사랑을 믿는 행위는 거짓말을 숭배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노련한 거짓말이라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숭배에 관하여 노련하기 때문에 가능한 작당이다. 거짓말이 사랑을 부르는 것은, 사랑이 거짓말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작당이다. 영원히 변치 말자는 거짓말이 약속으로 둔갑하는 그 순간을, 사랑은 사랑한다. 영원하자고 말하는 순간을, 그 발화 자체를 겁내지 않는 만용을, 사랑은 사랑한다. 사랑은 그렇게, 자기 한계에 자기를 가두고 마는 얌전함보다는 자기 한계를 지워나가고 부숴버리는 강령 자체를 사랑한다.
김소연, 《시옷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