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절필은 글을 쓰는 사람이 더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끊을 절에 붓 필, 즉 붓을 꺾는다는 의미라면 붓을 쓰는 어떤 직업이라도
자신의 밥줄이 끊어지더라도 지금껏 해온 창작의 활동을 그만두겠다는 의미로 쓰일 수 있을 것이리라.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든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옆자리 계장, 그 옆자리의 과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더욱 확고해지는 생각은 하나 뿐이었던 것.
내가 괴로워서, 그리고 내 아이가 괴로워질까봐서 함부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선 안되겠구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처한 상황과 나의 한계점을 곱씹기 위한 자화상이 마음 속에 그려지면
그 자화상은 언제나 슬픈 눈매에 우울한 낯빛으로 스스로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앞으로는 더욱 더 슬프고 우울한 자화상만을 그려내게 된다는 어렴풋한 예측이 만들어내는 불안한 안개가
나의 주변을 휘감고, 사랑에 대한, 연애에 대한 스스로의 감관을 질식시켜 완전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더이상 어떤 형태의 만남도 나에게 연애와 결혼에 대한 욕구를 이끌어내지 못할 지도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미래는 늘 불확실하기에 단정지어 확답을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현재로서는 반쯤 강제로 절필하게 될 듯.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실은 나의 반쪽짜리 자화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친자식이라는 전제 하에 나머지 반은 나의 반려를 닮겠지.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 자화상이 슬플 수밖에 없다.
슬픈 자화상을 만들어 내봐야 사회에, 개인ㅡ나와 내가 그려낸 자화상ㅡ에 부정적인 영향만 늘어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절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넘겨줄 수 있는 미래라곤 빈곤한 서민의 삶, 피곤한 직장인의 삶, 노곤한 주말의 잠뿐이 아닐까.
아름답고 즐거우며 여유로운 시간도 추억도 만들어줄 수 없을 것만 같은 지금의 지옥같은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이런 방식으로 점점 나는 거세되어감을 느낀다.
안그래도 여성들이 들고 일어나서는 남성 위주의 사회를 개혁하고자 한다는데
그래서 자화상을 맘대로 잘라없애도 되도록 법을 고치려 하고, 비혼을 선언하곤 하는데
그 시류에 맞춰 나같이 키작고 볼품없으며 능력도 그닥인 부적합 생물의 번식 탈락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많은 사람들이 깨우쳤으면 좋겠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스스로의 꼬라지를 알고 스스로의 남근을 잘라버렸으면.
스스로의 음문을 꿰매버렸으면. 더이상 자본가의 노예가 되는 비극을 막아야 한다.
노후를 위해 아이를 낳는다고? 아이는 너의 노후를 위해 만들어지는 물건 같은게 아니다.
나라의 미래같은 소리는 집어치우자. 사람나고 나라 났지 나라 나고 사람 났나?
국가도 결국은 인간과 인간의 계약 관계로 등장했다는 것은 이미 수백년 전 학자들이 내세운 가설들 중 하나다.
인간이 먼저 존재했고,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국가가 세워졌을 뿐 결국 핵심은 인간이라 이 말이다.
망하는 게 두렵지 않냐니, 이미 망해버렸다. 두려움을 넘어 절망으로 지나는 중인데 무엇이 두려울까.
'아프니까 결혼이다' 와 '보트릭스'라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
없다면 한번쯤 찾아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읽고도 깨닫거나 회한에 젖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 시대를 헛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여성혐오, 남성혐오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그 안에서 핵심적으로 하는 얘기는
'출산은 그저 자본가들의 노예 수 유지를 위한 Lure에 불과하다'는 얘기. 나머지는 양념용 곁다리일 뿐이다.
주변에서 자기 사는 이야기를 하며 '곧 니 얘기가 될거야'라는 말을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변에서 여자 안만나냐는 얘기를 할 때마다 '만나서 뭐하게'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참는다.
능력없는 한남은 슬프게도 스스로 사회적 거세를 선택하고 알아서 번식탈락중이시다.
내 좆을 붓이라 생각한다면, 그 붓은 꺾어버렸다.
슬픈 자화상을 더이상 그리기 싫어 꺾었다. 그렇게 난 사회적 거세를 선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