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H와는 오랜 친구이고 깊은 관계다.
내가 본격적으로 빚을 질 시기에도 나에게 여자친구가 된 사람을 소개 시켜준 친구 였다.
H와 내 마지막 여자친구 J는 친구 사이였는데 J 이후로 나는 여자를 사귀지 않았다.
J는 정말 볼품 없던 나를 사랑해주었다. 내가 빚이 있다는 사실도 고백 했지만
어제 라면을 먹었다라고 말한것 처럼 비슷하게 받아 들였다.
나는 J에게 내가 도박에 빠져있다고는 이야기 하지 못 했다. 당시에 내가 그런 깊은 문제의
구멍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나는 그 정도로 비겁한 놈이었다.
J는 나와 사귈적에 은행에 취직을 위해서 면접을 보러 다녔는데 나는 농담조로
니가 지금 보다 나은 직장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왜냐면 너는 나를 사랑하지만
너는 세상 물정을 모르고 순진해서 그런 것 뿐이라 은행에서 일을 하게 되어 속물이 되어
기필코 나를 차버릴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J는 원히던 직장에 취직 했지만 나를 차지 않았다.
나는 당시 돈 때문에 휴일도 없이 일을 했다. 성과금없이 5210원의 시급으로만
한달에 300만원 이상의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얼마나 일을 해야되는지 생각해보라.
휴일을 반납하고 철야를 하지 않고서는 안된다.
나는 부산에 갈 짬도 못 내었는데 그녀는 나와의 단 세네시간을 만나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두시간을 달려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정말 좋았고 그녀도 나를 좋아 했다. 일년만 열실히 일해서 빚을 다 갚는다면
그녀와 미래를 꿈 꿀수도 있지 않겠나?
그녀는 아주 위트있고 톡톡튀고 창의적인데다가 몸매도 좋고 얼굴도 이쁘고 마음씨도 고왔다.
그녀와 나를 닮은 아이를 낳는다면 얼마나 사랑 스러울까?
그런 존재가 있다면 나는 아마 목숨도 바칠 수 있을 것이다.
한번은 그녀와 눈앞에서 철판 요리를 하는 술집에 갔었다.
그녀는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음주를 꾀 했고 상사에 대해서 쌍욕을 퍼부었는데 그녀가
그렇게 걸쭉한 욕을 할 수 있단 것에 놀랐지만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욱 더 걸쭉한 욕으로
본적도 없는 그녀의 상사를 욕 하며 그녀 편을 들어 주었다.
내가 평소에 욕을 전혀 하지 않았서 그녀는 잠시 꽤 놀란듯 보였지만 아주 유쾌해 했다.
그녀가 오는 날이면 나는 선물을 받는 크리스마스날처럼 설레였다. 그녀는 나에게 큰 선물이었다.
그녀는 원래 예뻣지만 날 보러 올때면 더 예쁘게 화장을 하고 여성스럽게 옷을 입고 왔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면 이유도 없이 내 얼굴을 보고 방긋방긋 웃었다. 그 미소를 보면
나는 마음이 맑아지는것 같았다. 나는 미소가 아름다운 여자가 정말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한다.
여자의 미소에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왜 그런말이 있지 않은가? 세상을 움직이는것은 남자지만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다.
음양의 이치에도 부합하는 말이다.
한번은 새벽출근이라 일찍 가야되서 버스터미널에서 그녀를 보냈는데 버스가 오십미터 쯤 가더니
서서 그녀가 내렸다. 나는 달려가서 그녀를 안았다.
( 왜 안았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아마 대중매체의 영향이다).
그냥 가기가 너무 아쉬웠다는것인데 나도 보내기가 싫어 아쉬웠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녀와 있으면 항상 좋은일들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참 긍적적인 여자 였다.
하루종일 기계를 돌보면서 기름때에 찌들고 쉴때는 저질러 놓은 일들이 생각나
쉬는것이 차라리 괴로웠던 나에게
그녀를 시원한 함박눈 처럼 펄펄 내려서 나에게 앉았고 이내 얼음이 되어
시원하게 뜨거운 내 가슴을 식혀주었다.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 같은 놈에게는 과분했다. 우린 동해의 바다로 여행을 갔고 여행용 카라반을 빌려서
묵었다. 그녀는 나의 연인이었지만 동갑이라 친구같은 사이였다. 이름 모를 동해의 어촌마을 앞에서
우리는 고동도 따고 조개도 땃다. 타오르듯 꺼지는 동해의 저녁놀은 정말 멋졌다.
사실 그녀와 있으면 별것 아닌것을 해도 참 근사하게만 느껴졌다.
난 카라반앞의 바베큐장에서 고기를 구우며 사실 내가 전국의 박독기 라는 사람중에 아마도
1등으로 고기를 잘 굽는 사람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왜냐면 니가 아는 박독기는 어차피 한명이니
다른 박독기가 니가 데려오면 내 말을 정정 할수도 있다고 했다. 겸손하게 2등으로 말이다.
이런 같잖은 농담에 그냥 까르르 웃는 여자들과는 그녀는 달리 아주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멘트를
나에게 해주었다. 그녀의 대답은 항상 종잡을 수가 없어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도 지금은 잘 기억 나지 않
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일때 마다 답변이 창의적이라서 나는 그녀가 더 좋아졌다.
해가 지고 주변에 조명이 들어오자 더욱 낭만 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술잔을 기울이며 그녀와 영원이 현실을 잊고 이렇게 지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저질러 놓은 일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일상에서 나는 월급을 또 다시 몽땅 도박에 꼴아박아 넣은날을 맞이 하게 되었다.
술을 먹다가 스타크래프트 경기에 너무나 촉이와서 20만원을 배팅했는데 돈을 잃었고
20만원이 시작 이었지만 예전 습관처럼 나머지돈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이를 악물고 도박하지 않겠다. 일을 하여 재기 하겠다고 했는데 또 이렇게 되어 버렸다.
나는 정말 또 다시 죽어 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하소연 할 곳이 없어 자살예방 핫라인에 전화를 걸었다. 정말 죽어 버릴 것만 같아서
위로 받고 싶어서 였다.
자살예방 콜 센터 직원은 사정을 듣더니 사무적인 말투로 도박으로 인한 문제라면
도박상담 핫라인 1336으로 전화를 걸어 보는게 어떻겠냐고 했다.
자살생각이 나는 사람들이 그 들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들은 일을 하고 있었다.
콜 센터와 공무원이 쉽게 일하는 방식은 똑같았다. 다른 곳으로 일이나 전화로 연결 시키는 것이었다.
난 그 직원말에 동의해서 도박상담을 한 시간 받았고 또 몇 일 전화상담을 한후
부산의 한 센터에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 말은 내가 최초로 내가 도박중독자라는 사실을
받아 들였다는 뜻이였다. 또한 나는 자력으로 나를 통제 할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날 이후부터는 나는 도저히 그녀를 마주 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자신이 없었는데도
만남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대로 일년만 버티면 내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도박에 중독 되었다고 끝까지 내 치부를 드러내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 책임지지 못 할 여자는 만나는 것은 그만두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변화된 나의 태도에 그녀는 왜 그러는지 이유를 말 하지 않으면 헤어지겠다고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J와의 연애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나는 이후에도 YH을 통해 J의 소식을 들었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좋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나 배포가 없고 비겁한 놈이라고 나를 원망했다.
어쩌면 난 이런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삶을 살게 될것이란것을
어느 정도는 직감 하고 있었던 것일까?
4년이 흐른 지금 그녀와 헤어진 내 판단은 그녀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레 마주친 YH는 경찰 공부를 오래한 만큼 이것저것 떠보며 경찰 흉내를 내었다.
그는 부산의 모 대학의 경찰 행정학과 회장까지 했지만
간부 시험은 고사하고 순경 시험 조차
오랜 낙방으로 그 역시 인생의 암흑기를 보내는 중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어떤 것도 얻어내지 못 했다.
나는 오랜 친구들의 안부를 물으며 YH과
영도다리 밑에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당장 나를 붙잡고 술을 한잔 하자고 할 기세 였지만
짧은 대화를 하고 나는 도망치듯 그에게 안녕을 고했다.
제 나이답게 평범하게 사는 친구를 만나니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이미 돌아 갈 수 없다.
별 다른 생각도 목표도 없다. 그냥 흘러가는듯 하루살이 인생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목재구조로 된 2층의 수면실 찜질방에서 자다가 지네에게 발을 물렸다.
발을 접질린 후 제대로 걷기가 힘들어 신발을 구겨 신고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이후 신발을 제대로 신었는데 구겨 신은 부분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그래서 발 뒤꿈치가 까졌는데 지네가 짓물을 갉아 먹었는지 아킬레스건쪽을 물어버린것이다.
지네의 딱딱한 껍질은 초록생 비상구 불빛에 반사되어 기괴하게 보였다.
눌러 죽이고 싶었다. 확 발로 밟아서 짜부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장판을 건너 나무 사이로 사라지는걸 바라만 봤다.
나는 다리가 많은 곤충에 대해서 공포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리가 한 4개 까지는 괜찮은것 같다. 하지만 6개 이상부터의 그 실루엣은
나에게 너무나 징그럽고 공포스러운 압박감을 준다.
특히나 10개 이상으로 셀수가 없을 정도가 되면 너무나도 징그럽고 두렵다.
수십개에 달하는 다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너무나 끔찍하다.
차라리 뒤뚱뒤뚱 걷거나
그 다리들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였다면 두렵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다.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냥 그렇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규칙적으로 수십개의 다리가 양옆으로
움직이는 그런 꼴은 쳐다보기도 싫고 생각 하기도 싫다.
유년 시절에는 곤충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마귀와 송충이도 손으로 덥석 잡고
방학 숙제로 곤충 채집을 해서 박제까지 했던 나인데 어느 순간부터 곤충이 두려워 진것이다.
그런데 사마귀와 다리가 두개고 송충이는 다리가 없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공포에 대한 취향 변화는 시간이 가르쳐 준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난 얼마전부터는 곤충의 다리보다는 개가 너무 무서워 졌다.
개들은 내가 알던 개가 아니었다. 그들은 요즘 너무 기세등등하게 느껴진다.
두렵다. 이십년간 개를 키웠는데도 말이다!
물린 자국이 선명했다. 별것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고 다음날 일어나보니
조금 붓긴 했지만 별탈은 없어 보였다. 그 상태로 그냥 걸었고
저녁이 되니 발목이 뼈를 찾아 보기 힘들게 퉁퉁 부어 시 퍼렇게 되어 있었다.
J는 나에게 독기가 없다고 했는데 이제 나는 독기가 생긴줄도 모른다. 지네독 말이다.
다리가 병신이 된 이후 도박의 끗발도 거짓말 처럼 사라졌다.
결국에 나는 드디어 선택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됬다.
거리에 남아 계속해서 이짓거릴 하느냐가 전자고
집으로 돌아가느냐가 후자다.
난 집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을 했다. 나는 너무 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