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큰 사람, 혹은 어린시절에 가족 사이에서 단절이 많거나 권위자 앞에서 혼이 났거나 많이 참고 살아온 삶의 패턴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짐작이 병이 된다.
내가 자주 드는 예가 있다. 길을 지나다 친구가 지나가는 걸 보고 이름을 부른다. "어? 00야~ 어디가니?"
그 때 친구가 평소보다 퉁명스럽게 "어..저기.." 외마디 남기고 갔다면 분명 오해할 상황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톡이라도 해서 "혹시..친구야 아까 인사할 적에 표정이 안 좋던데 내가 친구에게 실수..한 거 있니?"라고
물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이런 답이 올 수 있다. "응..아냐 너 때문이 아니라 용돈 문제로 부모님과 조금 부딫쳤어. 그래서 나도 눈치 안 보고
알바를 해야 하나 골똘하다보니..니 인사를 제대로 못 받은거야.." 이러면..금방 문제는 "해결"된다.
그런데 짐작이 병인 사람은 이렇게 판단한다.
"어? 00야~ 어디가니?" 그 때 친구가 평소보다 퉁명스럽게 "어..저기.." 그리고 가 버린다. 순간 짐작이 많은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어?..뭐야? 왜 저래..?..아......지난 주 내가 5천원..꾼 거..그거 안 갚아서 그런거구나. 아휴 쪼잔한 녀석"
이게 짐작이라는 병이다.
짐작이 왜 병인가..정말로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에서조차 짐작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짐작법은 내가 만든 말인데 쓰다보니 이 말도 떠 오른다.
김영철이 명연기를 펼쳤던 왕건의 궁예가 사용하던 그 법..관심법 말이다.
그럼 이렇게 묻고 싶다. 그들은 왜 그렇게 안 묻는가..왜 그렇게 묻지 않고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자책하고 결론을 내릴까..
이게 학습된 소통 패턴이기 때문이다. 배운 게..그거다. 가족 관계 속에서..내가 쓴 자아상의 치유에 역기능 가정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중
역기능 가정에서 겪는 5가지 역기능적 의사소통이 나온다.
눈치를 많이 본다. 짐작을 많이 한다. 감정을 지나치게 억압한다. 대화의 중요성보다 힘의 중요성을 어린시절부터 학습받는다. 이중메시지 사용.
그런데 눈치법을 사용하는 이들 대부분은 착한 사람들이다. 수치심도 많고 눈치도 많이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부모나 어떤 권위자
혹은 소중하게 생각하는 대상이 자신의 언행에서 뭔가 평소와 다른 면을 눈치채면 곧장 눈치법을 사용한다.
요즘처럼 날이 더워지다보면 예전에 KBS에서 전설의 고향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남량특집 전설의 고향을 방영했다.
주로 귀신, 구미호, 한이 맺힌 사람들의 무섭고 슬픈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지금 다시보기로 봐도 으스스한 분위기다.ㅎㅎ..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있는데..지금도 기억이 난다. 너무나 소심한 처녀가 처음 만난 신랑과 첫날 밤을 보낸다.
그런데 초롱불을 켜 두었으니 방이 얼마나 어두웠겠나..어두운 밤..신랑은 신부를 만지려고 하다 갑자기 소피가 마려워 "신부 나 잠시만.."
하며 방을 나가는데..신랑의 바지 끝이 모서리에 걸렸는데..신랑은 이를 신부가 자기를 잡아 끄는 것으로 오해하고 "어허..아무리 부부라지만
이렇게 하는 게 아니오"라고 한다..그러자 신부는 아무 말도 못한다. 여자는 남자 앞에서 말을 가려해야 한다고 배운 규범과 소심함 때문이다.
바지가 걸린 줄 모르는 이 신랑은 그러다 버럭 화를 낸다.
"아니 남자를 모를 여인이 첫 날 밤에 이렇게 신랑의 바지를 붙잡고 있다니 당신 화냥년 아니오!" 신랑이 불쾌하다는 듯 소리를 지른다.
"당장 나가시오. 당신 같은 여자는 내 아내로 맞이할 수가 없소" 그리고 신랑의 바지 끝이 찢어지면서 신부는 하루 밤도 안 되어 화냥년이
되어 쫓겨나고 만다. 그리고 신부는 신부복도 벗지 못한 체 그렇게 나가는 신랑의 뒤를 억울하다는 듯 바라본다.
그 다음 장면은 신부가 자결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신부는 귀신이 된다.
억울한 귀신..그래서 그 집은 나중에 주막이 되는데 그 집을 드나드는 남자들이 하나 둘 심장마비로 죽어 나간다.
그러다 문제를 해결할 해결사 남자가 등장하는데 그 귀신과 대화를 한다.
모든 게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귀신은 떠나고 마을은 잠잠해 진다..는 이야기.
오래 된 드라마인데 지금도 어린 시절 그 귀신이 된 여인이 억울하다는 듯 신랑을 바라보는 눈빛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어린 시절 나는 그 장면이 몹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붙잡은 게 아니라 당신 바지가 모서리에 걸린 거란 말이예요!!" 왜 이렇게..말을 못하였을까..그럼 귀신이 되지 않았을텐데..
..이게 다 짐작병 때문이다. 두렵고 무서워서 말을 못했고 거절당할까봐 말을 못했고 말을 안하다보니 말을 못했고 말해봤자 먹히지도
않으니 말을 못했고..짐작병이 되는 이유는 수두룩하다..
그런데 막상 말을 하면 별것 아닌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사람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니 말이다. 그러나 어린시절 사람다운 취급 받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가 사람이라 생각하지 못한다. 여전히 그 소심한 아이가 그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뿐이라고만 생각하니..어떻게 짐작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제 좀 부탁하자. 말이라도 하자..말이라도..그거 어려우면 길게 톡이라도 하자..메일이라도 말이다.
아무 것도 안하고 속만 끙끙 앓다가..술마시고 속을 더 버려놓으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번 생은 꽝이다..그러면서 삶을 마감이라도
해야 할까? 마감하면..죽어서 마감할 기회가 있다고 보는가? 그거 살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 죽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산다는 건 참 복잡하고 알 수 없고 괴롭고 힘들다. 원래 그렇다. 원래 그런 게 삶이라면 그렇게 인정하고 들어가자. 이런 게 삶이 아니라고
부정만 하다 부정주의자가 되지 말고 그런 게 삶임을 인정하고 가 보자 이 말이다..
짐작 그거..병이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닫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면 자주 묻는다. 특히 상담을 하다 내담자가 무슨 말을 하면 내 수준에서 짐작하지
않고 다시 묻는다. "지금 하신 말씀이 제게는 이렇게 이해되는데 그게 맞는 것인가요?" 그렇게 묻고 또 묻는다. 그래야 내담자의 마음을 알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외롭게 살아온 과거로 인해 원치 않는 짐작병이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인식을 하자. 짐작이 잦으면 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만 살아도 덜 우울하고 덜 화병걸리고 덜 괴로울테니..말이다.
늘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살라고 주신 삶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