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라면을 끓일 때 한 가지 맛을 생각하며 끓인다.
바로 어린 시절 바닷가에 놀러가면 아빠가 끓여줬던 그 계란 풀은 신라면이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라면을 맛있게 끓이려 해도 그 맛은 십 몇 년 간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연구하는 동안 그 인스턴트 라면의 맛에 길이 들어버렸다.
'라면 먹구 싶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뜬금없이 떠오르는 이 3마디의 한 문장은 15년도 넘는 세월동안 나를 완벽한 라면 끓이는 '뽀글이 기계'가 되게끔 만들어주었다.
100번을 끓이면 100번 모두 완벽하게 같은 맛. 난 이 완벽한 감을 15년에 걸쳐서 터득했다. 끓였을 때 가장 맛있다는 포장지의 설명대로 완벽하게 따라한 결과였다. (전문가들이 개발, 연구하여 완벽한 시간과 완벽한 물의 양을 발견한 것이니 그대로가 가장 맛있다는 것이 '언젠가 tv에서 본 라면 맛있게 끓이는 비결' 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하게 끓여도 아빠의 라면 맛에서는 멀어져만 갔다.
콱-쏘며 강하게 밀려오는 조미료와 매운 맛. 그리고 꼬들꼬들한 면발. (가장 완벽하게 익으면서 적당하게 불고, 그러면서도 적당하게 국물 맛이 배긴다는 그들의 3분 30초를 스톱워치로 완벽히 쟀을 터인데 말이다. 라면봉지에 적힌 레시피대로 하는 것이 가장 과학적이며, 완벽하다는 설은 나의 15년간의 연구를 통해 날조라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난 매년 여름 해수욕장에 가야 맛 볼 수 있었던 그 라면 맛을 잊고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난 계란조차 국물에 풀어버리면 국물 맛이 탁해진다는 라면 개발자들의 조언에 따라 절대 계란을 풀지 않고 국물 안에서 그대로 동그란 수란이 되도록 끓여 먹기 시작한지 5년이 지났을 즈음에 하늘이 도와 실수로 완벽한 동그라미 형태의 수란으로 응고되었어야 했을 계란의 노른자를 터트려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놀라운 발견의 시작이었다.
항상 속을 더부룩하게 하던 라면의 기름기가, 그 국물위에 둥둥 떠 있던 빨간 기름덩어리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난 그 날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라면 한 개를 항상 다 먹지 못하고 남긴 것은 밥통이 작아서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소화가 어렵고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단 사실을 말이다.
라면 개발자들이 호언장담한 '완벽하고 과학적인 레시피'는 숫제 엉터리였다.
난 그들이 틀에 박아버린 그 공업적인 맛을 부숴버렸고 드디어 15년간 찾아 해맨 ‘아버지의 라면 맛’을 찾았다.
아빠가 끓인 라면은 결코 짜지 않았다. 그리고 더부룩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라면을 더부룩하지 않게 만들기엔 '계란 풀기'만으로는 부족하다.
바로 물을 약간 더 넣는 것이고 3분보다 조금 더 오래 끓이는 것이다.
라면 면발은 그래야 소화가 잘 되고 맛도 순해진다.
계란도 그냥 풀어 넣는 게 아니다. 펄펄 끓는 뜨거운 물에 그냥 들이부으면 순식간에 응고되기 때문에 불을 약간 줄여서 천천히 붓고 부으면서 젓가락으로 휘저어줘야 하는데 이래야 계란이 라면국물 속으로 융화되어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계란이 건더기가 되어선 안 된다. 국물 속에 녹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계란은 맛이 풍부하고 모든 요리를 부드럽게 만드며 기름까지 흡수하는 특수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라면 맛은 놀랄 만큼 순해진다.
요즈음엔 pc방에 가면 라면 끓여주는 기계가 있다. 버튼을 누르면 뜨신 물이 나오며 알바는 젓가락으로 면발을 휘젓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그 생산 공정과 탄생의 사연만큼이나 맛까지 공업적인 완벽한 인스턴트식품의 탄생이다.
니가 끓이든 내가 끓이든 같은 맛이 된다. 손맛은 사라졌다.
그 사납고 더부룩하고 공업적이기까지 한 맛은 다 조미료와 기름, 소화되지 않는 가공된 밀가루 덕분이었다.
난 그걸 깨닫고 나서 비로소 어른들이 외식을 하면 매번 하시던 '다 조미료 맛이네. 조미료 맛이야.'하던 그 말의 뜻을 깨우쳤다.
그 전에는 그 '조미료 맛'이 어떤 맛인지 몰랐다. 내가 그러고 15년 동안 살았었다니 끔찍한 일이다.
하나 또 있다.
난 매운 맛에 환장하지만 그 유명한 ‘불닭볶음면’을 먹지 못한다.
특히 치즈나 우유와 함께는 절대 안 먹는다.
그 이유는 우유와 치즈는 매운맛을 '견딜만하게' 해주는 것이라 아예 씻어내버리기 때문이다.
이러면 매운 양념의 의미가 없어져버린다.
그렇다고 그냥 먹으면 지나치게 맵고 달기만 하다. 나는 그것을 먹고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자극과 단맛, 약간의 간장 맛 외에는....
그런데 여기에도 달걀이 활약하면 불닭볶음면은 완벽해진다.
바로 삶은 계란 두세 개를 으깨 면발에 비벼먹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원채 맛이 부드럽고 풍부한 계란의 노른자가 면발에 코팅되듯 들러붙어 매운맛을 망치지 않으면서도 '견딜만하게'만들어준다.
그리고 사납고 빈약한 양념 맛이 조금이나마 풍부해진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붉닭볶음면의 그 양념은 단지 매운 고추양념일 뿐이다. 그 안에 식재료의 맛과 향은 없다.
공업화된 시대에 음식까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땅에서 난 풋풋한 음식은, 손으로 만들어 낸 음식은 그 재료와 요리사의 '감'에 따라 음식 맛이 다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생산과정뿐만 아니라 맛까지 일률적이며 사나웁기까지 한 인스턴트에 점점 길들여지고 있다.
누가 만들든 완벽히 같은 맛인 라면이나 전자레인지에 조리하는 여타 냉동식품을 지금껏 생각 없이 먹어오며 익숙해져왔던 나 스스로에게 반성하면서, 조금이나마 여러분들의 라면 맛이 순해지길 바랐고 이 글을 쓴다.
파는 음식이라면 몰라도 집에서 먹는 집요리라면 응당 추억을 담은 요리. 나만이 기억하는 고유의 손맛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요리 철학이다.
아래 두 가지를 기억하라.
첫 번째. 계란을 풀어 넣어라. 물을 약간 더 넣어라. 3분보다 더 끓여라.
두 번째. 추억을 기억하며 끓여라.
이것이 지난 15년간 라면을 끓여온 라면장인이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는 '라면 맛있게 끓이는 비결'이다.
공업화된 이 일률적인 맛의 음식에 대항하여 우리는 각자의 손맛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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