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ed by @CarrotCake
스페인이 한참 무적함대아르마다, Armada를 앞세우며 남미의 은광을 죄다 독점하고 떵떵거리고 있을 무렵, 엘리자베스 1세는 아르마다를 작살내기 위해 전면전이 아닌 우회 공격을 택하게 됩니다. 스페인 왕실이 돈을 빌린 차용증 - 현대적 의미로 국채에 가깝겠습니다. - 을 죄다 긁어모아서 한날 한시에 상환을 요구한거죠. 스페인 왕실은 뜬금없는 만기도래에 멘붕하게 됩니다. 뒤에 엘리자베스라는 여우가 있다는건 상상도 못했지요.
가뜩이나 용병선단 위주로 돌아가는 해군력에 무역을 위해 대규모로 재정을 확대했던 스페인 왕가는 파산을 막기 위해 국방비 - 용병 고용 - 부터 삭감합니다. 덕분에 영국은 스페인과 해전을 벌여볼만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활발한 고속 기동전 중심으로 영국을 한바퀴 빙 돈 영국 해군이 태풍빨로 승리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출금 공격과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사략질은 스페인을 강제로 회전장으로 끌어냈고, 스페인군은 몇 번씩이나 승리할 수 있었던 싸움을 장렬히 날려먹으면서 아르마다의 반쪽을 날려먹습니다. 특히 파괴당한 선박들이 대부분 4층 갑판 이상의 중형 갤리온이었다는 점에서 스페인 왕실의 출혈은 더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죠. 이렇게 스페인은 도버 해협을 빼앗기게 됩니다.
당시 스페인이 퍼다 나른 충격적인 양의 중남미산 은을 흡수할 시장은 저 멀리 북해와 발트해를 장악한 한자 동맹 정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북해로 가는 관문인 도버 해협의 제해권 상실은 스페인의 재정에 꽤나 커다란 피해를 주었음을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스페인 해군의 갤리온, 산 펠리페호의 모형입니다
그런데 영국도 딱히 잘 나가던 때만은 아닌지라, 엘리자베스 1세 사후 찰스 1세 들어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내전을 겪으며 기껏 먹은 제해권을 죄다 날려먹게 됩니다. 이 때 떠오른 것이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 그러면 딱히 떠오르는게 없습니다. 스케이트나 풍차 정도일까요? 그만큼 네덜란드는 자원 빈국이자 거주에 굉장히 효과적이지 못한 척박한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발트 해 일대의 운송업 75% 이상을 이미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가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입지입니다. 발트해를 근거지로 한 한자 동맹이 험한 육로 대신 물건을 싣고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네덜란드 앞바다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암스테르담과 앤트워프는 훌륭한 보급항 역할을 했지요. 북해-발트해-지중해를 통하는 핵심 교역 루트이자 보급항을 거머쥔 네덜란드는 도버와 런던이 전쟁에 휩싸인 상황에 순식간에 엄청난 요충지로 떠오르게 됩니다.
게다가 스페인 왕실에서 벗어나면서 네덜란드는 먹고 살기 위해 세수를 확보해야했고, 정책적으로 그 자리에 뿌리내린 무역상인들을 보호하고 육성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뒤에 있었던 것이 바로 청어입니다. 말리면 평화의 상징 과메기가 되는 청어는 바다의 밀이라 불릴 정도로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어획량을 자랑합니다. 유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청어를 활용한 식문화가 이를 증명합니다.
저렴하게 단백질을 확보할 수 있는 청어는 당시 유럽 곳곳에서 잘 나가는 스테디셀러였습니다. 실제 성직자들이 청어를 먹으라고 민중들에게 권유했다는 기록 또한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이 청어의 회유 루트가 발트해 일대에서 북해 일대로 바뀝니다. 네덜란드에겐 그야말로 대박 사건이었죠. 청어를 내다 팔면서 쌓인 자금은 수요 확대로 이어져 상인들을 불러모았고, 점점 도시는 발전해가게 됩니다.
심지어는 암스테르담은 '청어 뼈 위에 세워진 도시'이며 청어 어획은 '네덜란드판 금광'이란 말까지 떠돌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죠. 풍부한 어획고를 통한 자본의 집적, 그 자본을 노리고 몰려드는 상인들로 인한 상권의 거대화, 그리고 지정학적 이점을 통한 다양한 무역 물품의 교역은 암스테르담을 근대적 시장과 유사한 모습으로 변모하게 합니다.
당시 네덜란드를 통치하던 다섯 공작은 여기에 착안해서 '표준 교역소'를 설립하게 됩니다. 교역소 안에는 다양한 상품의 샘플을 전시하고 상품의 정가, 교역 시간, 장소, 지불 방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일단 협의가 달성되면 상인들은 무역명세서에 따라 지정된 장소에서 고객에게 물품을 인도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는 교역소에서 정한 규정이 반드시 준수되어야 했습니다. 바로 오늘날의 선물 시장이자 표준 시장입니다.
단순히 상인들의 집단에 불과했던 한자 동맹에 비해 네덜란드가 금융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표준화된 시장과 유한 회사, 합자 회사라는 개념의 출범을 그 배경으로 합니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입김에서 벗어난 채 왕실과 적대하던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남미 은화의 혜택을 보지 못했습니다. 만성 은화 부족에 시달리던 네덜란드 시장은 다양한 상인들이 발권한 어음들 사용해 거래했고, 점차 어음들은 화폐 대신 쓰이게 되었습니다.
근대 금융의 시발점, 암스테르담 은행입니다.
그리고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과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가 출범하게 됩니다. 이 은행에서 발행한 화폐는 전 유럽에서 유행했고, 상인들 역시 신뢰했습니다. 유럽 최초의 종이 화폐 등장이었죠. 암스테르담 은행은 각 상인들에게 빠르게 채택되었으며, 국제적(?) 중심 통화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네덜란드는 시뇨리지 이익을 통해 더더욱 국제 무역 중심의 자리를 공고히 해 갔습니다.
네덜란드가 뒤에 끼고 있는 튼튼한 자금은 압도적인 국력 증진을 가져왔습니다. 그 자금을 믿고 네덜란드는 스페인 왕가에 대해 독립을 선포합니다. 30년 전쟁을 마치고 합스부르크 왕가라면 이를 빠득빠득 갈아대던 부르봉 왕가, 프랑스 왕실을 돈으로 구워 삶아둔 네덜란드는 분노에 눈이 먼 스페인 왕가를 때려잡고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합니다. 청어의, 돈의, 상업의 승리였죠.
많은 사람들이 영국-스페인 전쟁, 백년전쟁과 30년 전쟁을 일컬어 신/구교의 전쟁, 노르만과 프랑스의 전쟁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종교나 왕가 이전에 금융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전쟁은 일종의 요식행위에 불과했으며, 이미 그 이전에 승패는 모두 가려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화의 상징 과메기 청어와 함께 피나는 금융 전쟁의 승자로 거듭난 강소국 네덜란드는, 이후 청어 어획량의 감소와 더불어 그들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었던 전쟁으로 인해 패망하게 됩니다.
오늘은 분량을 좀 조절하려 합니다. 튤립 터지는 이야기를 쓰려니 너무 길어져서...
좋은 밤 되세요.
Copyrights 2018.
@noctisk, All rights reserved.
본 게시물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는 어떠한 경우에도 금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