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보단 최선을, 최선보단 차악을 선택해온 것 같습니다. 현실에 타협하며 살아온 덕에 휘청거린 적은 있지만, 넘어지거나, 크게 다친 기억은 없습니다. 이젠 무엇을 선택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전에 지금의 상황을 먼저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립니다. 나만의 색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나쁜 삶은 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별다른 설명이 없더라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뭔가를 부탁할 사람이 있으니 말입니다.
며칠 전 아무런 질문없이 믿어주던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가장 먼저 믿음을 보여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 그 사람이 자신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극한의 차분함에 마음의 떨림이 담겨 버렸습니다.
장래 희망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답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있었기에 그 자리에서 서고, 사람이 떠났기에 그 자리에 미련을 버리고, 사람이 있는 곳으로 찾아갈 것 같습니다.
사람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꿈을 직접 마주하는 용기가 존경스럽습니다.
RE: [에세이] 하찮지 않은 자양분- Q : 장래희망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