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학교 과제로 (예정 없던) 글쓰기 시험을 보았습니다.
90분 간, '나의 장래희망을 선택한 이유'라는 주제로 썼는데요.
많은 분들이 이 글쓰기 주제를 받게 되었다면 어떻게 쓰셨을 지 궁금한 마음도 들어요.
만약 대학교 과제로 (오늘의 저처럼) 이 질문이 나온다면?
스티미언 분들의 다채로운 얘기와 사례 궁금합니다.
하찮지 않은 자양분
Sagoda Q. 장래희망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아
나는 소질이 있었고, 또한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큰 요행을 바라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좋아했으므로. 가령, 손가락에 힘만 준다면 소리가 나오는 피아노라거나 초등학생의 필수 숙제인 일기 같은 것들. 그래서 재능을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금세 주눅이 들고는 했다.
지인들의 반응 역시도 미미했다. 그림은 한눈에 보아도 탄성이 나오게 할 수 있는 반면, 글은 오랜 시간 집중을 들여 읽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드라마라거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을 쓰는 이도 아니었다. 일기라니. 소설에 비해 얼마나 하찮게 보이는가.
일기를 쓰고 있노라면 때때로 하찮음에 정성을 쏟는 내가 우스웠다. 그래도 꿋꿋이 써내려갔다.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닌, 나의 사색과 상념들을 기록한다는 것에 초점을 돌리니 부담감 혹은 중압감이 사그라들었다. 책장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일기장이 자리를 차지했고, 나는 카프카보다 혜민스님, (당시에는 인기가 높았던) 한비야를 애정했다.
당시만 해도 에세이는 지금처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장르여서, 나는 취미를 숨겨야만했다. 공부를 했다. 수능을 치르는 것 외에는 무얼 잘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나의 열일곱.
꽃이 피는 건 한순간이었다. 기대 없이 출전한 독후감 대회에서 작은 상을 받았다. 제주의 조그만 학교는 흔치 않은 전국 상의 소식을 교실 곳곳에 날랐다. 복도를 걸으면 평소 대화도 하지 않던 교사들이 먼저 말을 걸었다.
ㅡ 요아야, 글 잘 읽었다.
자존감이 한없이 낮았던 나는 그제야 내가 쓰는 것이 '글'임을 깨달았다. 친구 몇몇은 나의 독후감을 읽고 공감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문학 작품을 쓰지 못하더라도 타인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할 수 있구나. 문예창작과에 가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실기가 아닌 교과공부로 문예창작에 진학한 나는 다시 또 자존감이 하락했다. 소설과 시가 주(主) 분야로 평가받는 분위기. 에세이, 수필 그 어떤 것도 과목조차 편성되지 않았다. 나는 빈약한 소설을 써냈고 혹평을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문학 창작실력을 갈고닦기 위해 에세이를 손에서 놓았다. 장강명, 백수린, 황정은 작가의 책을 처음으로 눈에 담았다.
누군가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물음을 던졌다.
창작수업에서 단 한번도 A+를 받은 적 없던 나는 취업에 눈을 돌렸다. 2017년의 여름이었다. 유독 무더웠다고 느끼는 건 기분 탓이려나.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했고, 학기와 방학 구분 없이 대외활동에 매진한 결과 2018년에 인턴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마케팅 회사였다. 나는 그곳에서 책으로만 보았던 다양한 갑질과 희롱을 경험했다.
묵묵히 감내했다.
비정규직은 고되다는 인식이 팽배했으니 이를 물고 또 물었다. 턱관절 장애 진단을 받았다. 스트레스가 생길 때마다 저작근을 씹어 근육이 뭉쳤다는 게 의사의 소견이었다. 글을 써야 했다. 일기장에는 모두 담겨지지 않는 슬픔과 고통을 표출하고 싶은 욕망이 차올랐다. 역시나 나는 그 블랙기업에서 부당해고를 당했고, 입을 벌리지 못했으며 23살에 새치와 탈모가 찾아왔다.
장기간 접속하지 않아 비밀번호도 잊어버린 블로그를 찾았다.
ㅡ 그러니까, 저는 올여름이 무척이나 무덥고 길었습니다.
댓글은 달리지 않았으나 대나무숲에 소리치듯 마음 한 켠에 해소의 바람이 불었다. 인터넷의 홍수 속에서 어떤 이가 내 글을 읽었다. 뿐만 아니라, 제주에서의 학교처럼 내 글을 자진하여 공유했다. 독자들이 늘어났다. 정성 어린 댓글이 한둘씩 생겼다. 눈물이 고였다. 나의 세계로 다시금 안착하는 기분이 들었으므로.
부당해고와 권고사직, 취업과 번아웃, 갑질과 비정규직 등 3개월도 채우지 못한 마케팅 인턴생활을 써냈다. 내 얼굴도 보지 못한 낯선 이들이 공감과 격려를 동반한 말을 남겼다. 나는 그 기쁨에 좋아하는 영화를 엮어 비전문적이나 진솔한 감상평을 써냈다.
비로소 초심으로 돌아간듯한 느낌. 드디어 글이 즐거워졌다.
그러니까, 대학 입학 이후 처음으로.
2019년, 현재는 에세이의 입지가 한층 더 굳건해졌다. 그러나 그에 관계 없이 나의 에세이 사랑도 단단해졌다. 많은 선배들은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을 나누어야만 좋아하는 일에 질리지 않는다는 조언을 꺼냈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안되겠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삶이 지탱된다.
과거에는 무시받았던 나의 일기들로 돈을 벌고 싶다. 그리고 그럴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사색을 쓰고 상념에 귀 기울인다.
하찮게 생각했던 이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므로.
에세이스트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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