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올빼미과에 딸린 사나운 성질을 가진 새로,
밤에 나와 돌아다니면서 쥐 · 토끼 · 곤충 · 작은 들새 등을 잡아먹는다.
[출처: 인터넷 daum]
인터넷 기사를 보니 '부엉이 모임'이라는 것도 있단다.
그 모임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새나오는것을 보니
계속되면 기자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제공해 줄거 같다.
언제부터인가 '부엉이'가 인기다.
나역시 철없던 시절부터 부엉이를 생각했다.
20대초반에 특정 철학자의 사상을 공부하며 그 이름을 새겼으니
벌써 30년을 훌쩍 넘겼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리 인기있는 동물이 아니었는데
어떤 계기로 지금처럼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엉이'를 아마 지혜의 상징으로 생각하나보다.
그런데 그게 조금 오해가 있다.
부엉이는 지혜의 상징이 아니라
지혜의 여신의 심부름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부엉이'를 들먹이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이 미래를 밝힐 사람들로 자부하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그들이 빌려온 그 부엉이라는 것의 의미는 그런게 아니다.
부엉이는 미래가 아니라
단지 과거의 시간이 지나갔음을 표시할 뿐이다.
미네르바의 그 부엉이를 말했던 사상가는
분명히 부엉이의 정체를 알려줬다.
그런데 그 부엉이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뿐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깊은 숲속에서도 쉽게 발견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부엉이가 아니라
사변에 의해 포착되는 시대의 마감을 암시하는 그 부엉이 일텐데
욕심이 지나쳤다.
시대가 마감되기 전에
어떻게 그 시대를 파악할 것인가.
해석이 아니라 변화를 말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해석을 하지 못하고 올바른 변화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
현재의 사회관계에 존재하는 고통들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밝히지 못하는 상태에서
단지 만들어져 있는 규칙등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행하는 것이면서도 한계가 뚜렷하다.
그 한계를 뚜렷이 자각하고 있기를 바란다.
한계속에서 뭔가를 집행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면
그것은 또다른 경솔한 사회적 실험에 불과하고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약자들을 더욱 괴롭히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쉬운 해결책은 폭풍속의 등불같은 것이다."
-가이우스-
사상이 담긴 이름을 들먹이려면
그 것에 대해 기본은 이해하고 골라야 할텐데
한 나라의 틀을 논하겠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의 사고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역시 내용보다는 광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거같아 씁쓸하다.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들은 혹시 다음사전에 나와있는 설명대로
'쥐 · 토끼 · 곤충 · 작은 들새 등을 잡아먹는'
그런 무서운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