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온 지 석달째 되어가던 10월의 마지막 주. 드디어 네덜란드 떠나기 위해 엑시터 공항(exeter airport)으로 갔다. 3개월 동안 지냈던 단할머니네를 떠나려니 아쉬웠다.우리 물건으로 채워졌던 방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13년산 붕어가 있는 연못과 새들이 숨어 있기 좋은 우거진 정원을 가진 *스프링로드(springroad)의 주인인 할머니와 길게 포옹을 했다.😿
단할아버지가 차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엑시터 공항까지 우릴 태워 주셨다.가는 길에 할머니께서 싸주신 샌드위치를 먹었다.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은 무조건 다 맛있다. 엑시터 공항은 아주 작았다. 공항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1파운드(약 1,400원)를 내야 했다. 할아버지가 화장실 가신 사이 단과 나는 체크인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갔다.각자 캐리어 하나씩 수화물로 보내고 티켓을 기다리는데 카운터에 있던 항공사 직원이 몇 가지 물어왔다.
직원 : 영국으로 언제 돌아오나요?
단: 아뇨, 우린 네덜란드로 이주하는 거에요.
직원 : 아 잠시만요.
내 여권을 가지고 매니저로 보이는 여성에게 갔다.화장실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체크인 카운터에 서서 기다렸다.안 들리는 영어라지만 뭔가 잘못된 일이 있는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역시 슬픈 예감은 언어 초월하고 틀린 적이 없는걸까.. 하.. 나의 녹색 여권을 들고 매니저가 다가왔다. (내가 들은 것과 단에게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매니저 : 네덜란드에서 당신의 입국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니 영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표를 끊어야 당신을 보내줄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우린 널 보낼 수 없어. Sorry just incase. (미안 만약이란게 있으니까.. )
단 : 한국 여권은 비자 없이도 3개월간 여행할 수 있어. 작년에 네덜란드 가봐서 아는데 괜찮아. (엄청난 확신)
매니저 : 노노
단: 내가 다 알아봤었는데 괜찮아. 법을 어긴것도 아닌데?
매니저:노노 얜 못가.
나: 일그러진 미간 단과 매니저를 번갈아 쳐다볼 뿐.. 입은 그저 장식용.🤐
단: 만약 네덜란드 입국이 거절되면 영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을 우리가 낼게. 증명하는 각서를 쓰면 되잖아. 야.. 야.. 쫌.. 플리즈
매니저:Nope!
결국 카운터 구석으로 밀려난 우리는 영국으로 돌아오는 가장 싼 비행기 티켓(약 2만원)을 샀다. 그리고 매니저에 확인을 받은 뒤에야 내 여권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할아버지 : 뭐 회사 방침이 그렇다는데 저들을 탓할 수는 없지 모
단: 네 탓하는건 아니에요. 그냥 짜증 나요.
할아버지: 2만 원을 내고 이 나라를 떠날 수 있다면 Not bad.🤭
일이 잘못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던 할아버지랑도 작별의 포옹을 했다.약간 영혼이 가출하기 직전이라 정신없이 할아버지랑 안녕한거 같아 검색대로 가며 뒤를 돌아봤다. 할아버지는 끝내 우셨다. 돌아가시는 뒷모습만 봐도 슬펐다.
검색대를 나와 카페에 잠시 앉아 샌드위치를 마저 먹었다. 가출한 영혼을 찾기 위해 맥주 한 잔씩 마셨다. 잠시나마 국가나 시스템에 의해 나의 의지나 자유, 관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공포를 느꼈다. 방침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술한가에 화도 났다. 너는 유럽연합이 아니니까, 아시안이니까...나의 신분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아니 증명한다 해도 믿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찜찜한 생각들을 짊어지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되지 않아 단이 소리쳤다.
오마이갓!
엄청 큰 말벌이 🐝 비행기 안을 날아다녔다. 단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벌이라니... 단은 눈을 떼지 못하고 한 손에 기내 잡지를 쥐며 웃는 건지 겁에 질린 건지 모를 소리를 냈다. 말벌을 발견한 승무원이 플라스틱 컵과 기내잡지 한 장을 찢어 말벌을 잡은 뒤 화장실로 갔다. 변기 내리는 소리와 함께 말벌 소동은 끝이 났다.
저 벌은 무임탑승하려다 걸렸네.
그러게 비자도 필요 없잖아. 하하.
그리고 얼마 뒤 맨 앞 좌석에 앉은 여성이 소리를 질렀다. 아까 그 벌이 살아서 돌아온 것이다! 여성은 몇 번 몸을 크게 움직였고.. 아마 밟아서 죽인 것 같았다. 창밖으로 하얀 구름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네덜란드에 도착했다.공항엔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영국 시골에서 3개월 지내며 백인들만 보다 공항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보니 숨이 트인다고 해야 되나 안도감이 들었다. 사람 구경하다 보니 입국심사대가 가까워졌다. 겁이 났다.
EU 연합과 아닌 나라는 입국 심사 라인이 다르다. 단은 (아직은 EU연합국인-Because Brexit) 영국 국적이라 나와 다른 라인인데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나와 같은 라인으로 갔다. 입국심사대에 있던 직원은 나의 여권색을 보자마자 '안녕하세요.' 라고 한국말로 인사했다. 단은 우린 결혼한 부부이고 네덜란드에 직업을 구해 아내와 함께 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직원은 나를 가리키며 3개월동안만 무비자로 머물 수 있어요. 라며 했고 단은 배우자 비자를 신청할 거라고 말하며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검색대를 빠져나왔다. 입국심사대 직원의 세심한 배려에 눈물날 뻔했다. 😭 그래서 나도 지금 열심히 안녕하세요와 고맙습니다의 네덜란드어를 외우고 있다.
짐을 찾아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들어서니 차가운 바람이 옷 사이로 파고들었다. 3개월 전 한국을 떠나던 날은 무진장 더웠는데, 찬 바람 부는 11월이다. 역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단과 나는 역 중간쯤 벽에 기대어 기차를 기다렸다. 어디에선가 찬 바람이 계속 불어와 몸에 힘을 주고 웅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