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뷰잉 할 도시는 암스테르담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할렘(Haarlem)이다.
오래된 건물이 지닌 기품과 웅장함이 느껴지는 할렘역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네덜란드는 운하 옆으로 폭이 좁은 집들이 빼곡히 붙어 있는 구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집이 그런 형태였다. 4층의 저층 아파트로 엘리베이터가 없고 나선형 계단이 4층까지 이어졌다. 일층엔 침실과 욕실, 이층엔 거실과 부엌이 나선 계단으로 이어진 구조였다. 뷰잉이 끝나고 단은 맘에 안 들어하며 (아마 오븐이 없어서 그럴거다.) 낡은 집과 가구에 비해 방세가 비싸다며 투덜 했다. 이번 주 내로 집을 구해야 단의 출근에 지장이 없을 텐데 둘다 슬슬 불안해졌다. 첫 번째 집 뷰잉이 끝난 시간은 10시 두 번째 집 뷰잉은 오후 세시였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허리가 너무 아파 도로 옆 벤치에 앉았다. 씻어온 사과를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인 네덜란드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실용적인 구조에 심미적인 디자인의 자전거를 늘씬한 다리로 페달을 쌩쌩 밟으며 지나간다. 자전거 앞에 수레를 달고 아이를 태우고 달리는 엄마를 보거나 구두를 신고 짧은 치마를 입고 달리는 여자들을 보면 절로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외투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후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근처 펍에 들어가 와인을 마셨다. 두 번째 집은 중심지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조용한 주택가 골목의 끝 집이었다.
예약 시간보다 일찍 온 우리는.. 빗속을 돌고 돌며 시간을 보냈다. 예약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룹 뷰잉이라 우리말고도 두세 커플이 더 있다고 들었는데, 게다가 중개인도 아직이었다.
슬슬 짜증 나던 차에 중개인이 차를 타고 도착했다. 자신을 미셀이라고 소개하며 악수했다. 네덜란드 인사방식은 악수를 하며 안녕하는 건데, 영국식에 비하면 훨씬 편하고 좋아 자신감 있게 인사할 수 있다. 영국식은 볼에 뽀뽀를 하고 가볍게 포옹을 하는데 어색한 행동에 신경 쓰느라 정작 제대로 인사를 못하기 일쑤였다.
↑ 이사하고 다음날 밀린 빨래 후 말리기
집주인이 새롭게 인테리어를 한 집이라 깨끗했고 가구들 뿐 아니라 (오븐 포함) 심지어 뒷마당의 정원까지 있는 집이었다. 공과금이 포함된 방세라 따로 공과금을 낼 필요도 없다. 단과 나는 중개인에게 계약하고 싶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집을 렌트할 때는 몇 가지 중요한 게 있는데, 재정증명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야 한다. 미리 준비한 단의 급여가 명시된 근로계약서와 나의 재정을 확인할 계좌를 보여줬다.
중개인은 단의 급여가 방세에 비해 낮다고 했고, 나의 저축한 계좌는 소용없다고 했다.
저축한 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예를 들어 네가 내일 비싼 차를 산다고 그 돈을 다 써버릴 수 있잖아.
아무 준비 없이 이민 온 우리의 처지와는 맞지 않는 상상이지만, 그들의 룰이 그렇다고 하니 어쩔수 없었다.
그래도 중개인이 보기에 우리가 나쁜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는지, 보증금을 세 달치 방세로 준다면 집주인과 얘기해 볼 수 있다 했다. 우리가 가능하다고 하자 직업이 뭔지, 여가시간에 뭘 하는지 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라 당황했지만 흔한 독서보다는 가끔씩 가는 수영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새해맞이 바다 수영을 매년 하는데 참가해보라 했고 딱히 대답이 생각나질 않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던가..
맘에 든 집을 드디어 찾았는데, 우리의 조건 때문에 거절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으론 이 집을 계약하고 싶다가도 비싼 방세를 내고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밀려왔다.
안개에 가려진 현실의 벽이 점점 가까워진다고 할까.. 쉬운 게 없었다.
거절에 대한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 일찍 낙담을 하고 있던 우리에게
다음날 중개인이 샴페인을 터트리라며, 집주인이 오케이 했다는 전화를 했고,
3일 뒤 집을 계약해 이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