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 치료비로 매달 적자면서도 잘 살고 있습니다. 아직 스팀이나 스달을 출금해 본적도 없고 SCT도 출금해본 적이 없는데 돈이 어디사 나오냐고요? 돈은 나옵니다. 알바를 조금씩 하고 있거든요. 돈이라는 건 정말 신기한 녀석입니다. 손에 쥐고 있으면 새로 잡을 수 없는 게 돈이더군요. 내 꺼라고, 내가 얼마나 힘들게 번 돈인데 이걸 쉽게 쓸 수 없지! 라고 생각하면서 안 쓰면 손에 쥐고 있는 꼴입니다. 손에 쥐고 있으면 잃어버릴 염려도 없고 줄어들 염려도 없죠. 하지만 새로운 돈을 잡을 수는 없더군요. 저는 이걸 마흔이나 돼서야 깨달았습니다. 안 쓰고 모으면 부자가 될 줄 알았거든요.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면 그 돈이 차곡차곡 모여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런데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병에 걸리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나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겨 힘들게 모은 돈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걸 경험했거든요.
소비. 그래요. 소비는 똑똑하게 해야 합니다. 같은 품질이면 싼 게 좋고, 1+1 같은 행사때 미리 사놓고는 쟁여놓고 쓰거나 하는 등의 소비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싸게 사는 것만이 똑똑한 소비라고 생각했던 제가 바보였어요. 필요한 소비, 해야 하는 소비도 똑똑한 소비라는 걸 몰랐던 겁니다. 친구에게 술한잔 사는 소비, 팀원들에게 무더운 여름을 날려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돌리는 소비, 열심히 일한 나에게 삼겹살을 사주는 소비, 예쁜 아들이 좋아하는 초코송이 과자를 사주는 소비가 바로 똑똑한 소비라는 걸 몰랐습니다. 무조건 아끼고 안 쓰는 사람이 이런 걸 알 턱이 없었죠.
어렸을 땐 백원짜리 동전 하나 구경하기도 힘들 정도로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선지 안 쓰고 아끼는 게 습관이 된 접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쉽게 고쳐지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예전엔 슈퍼에 뭔가를 사러 가면 딱 그것만 샀어요. 필요한 것만 사면 된다고 생각했고 더 사는 건 과소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슈퍼에 가면 과자 하나를 꼭 더 사들고 나옵니다. 바로 초코송이라는 과자지요. 울 큰애가 가장 사랑하는 과자이기도 합니다. 이 과자 하나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하고 즐거워 하거든요.
아이가 어렸을 땐 이 과자를 자주 사주지 못했습니다. 가격에 비해 양이 적거든요. 그런데 그땐 왜 몰랐을까요. 어른 기준으로 보니까 양이 적었지, 겨우 한두 돌 지난 애에겐 많은 양이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땐 정말 너무 가진게 없었습니다. 저는 삶을 리셋한 지 1년쯤 됐을 때고 아내도 삶을 리셋하고 1년 정도 됐을 때였거든요. 저는 리셋 후 0원으로 시작했지만 아내는 리셋 후 빚더미에 앉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혼을 하면서 전재산을 전처에게 모두 주고 나왔습니다. 통장에 있는 돈 1원까지 싹 주고, 전세 보증금도 그냥 주고 나왔습니다. 계절별 옷 십여벌과, 수백권의 책, 그래고 내 앉은뱅이 책상 하나가 내가 가진 전재산이었습니다. 통장엔 1원 한 푼 없었지만 매달 월급이 나오는 직장이 있었기에 신용대출로 1천만원을 대출받아 월세 보증금을 내고 월세살이를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께서 나가 살면 고생이라고 들어오라고 하셨지만, 공들여 키운 손자가 혼자된 걸 매일 보며 슬퍼하실 것 같아 안 들어갔습니다. 저는 악으로 돈을 모았습니다. 너무 안 먹어서 결핵에 걸렸고, 몸을 안 사려서 A형 간염에 걸렸습니다. 돈을 안 쓰는 바람에 병을 얻었지요. 그땐 내게 돈을 안 써서 병에 걸린줄도 몰랐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죠. 그렇게 1년 동안 모은 돈에 대출을 조금 더해서 아내와 살 집을 전세로 얻었습니다.
아내는 빚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저보다 상황이 안 좋았죠. 전남편이 사업하면서 생긴 빚이 아내에게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내는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왔더군요. 모든걸 놓고 옷가방 하나만 들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두고 온 아들이 보고 싶어서 매일 술로 버티던 아내가 저를 만난 건 가장 큰 행운이라고 지금도 말합니다. 저를 만나서 새로 시작할 수 있었다고. 이젠 끝이라는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제가 나타나서 살아낼 수 있었다고.
우린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전세대출이 빚이 전부인 저와, 2금융 3금융 빚이 어마어마했던 아내의 새출발.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 월급 대부분은 아내의 빚을 갚는 일에 들어갔고 우린 손가락만 빨 정도로 수중에 돈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그런 딸이 너무 불쌍했는지 장모님은 거의 매일 반찬이며 과일이며 사다 나르셨고, 임신한 아내는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며 밖에 나가질 않았습니다. 밖에 나가봐야 돈이라며. 아직 일을 하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우리를 물질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용돈을 받아 쓰시는 제 친할머니도요.
큰애 돌을 앞둔 어느날입니다. 우린 돌잔치를 안 하려고 했습니다. 돈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주위에서 안 하면 어떡하냐고 그럴 수는 없다고 계속 말이 나왔고 우린 저렴하게 돌잔치를 할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저렴하게 한다고 해도 비용은 비용이더군요. 그러던 아내는 덜컥 돌잔치 전문 업체에 예약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 친할머니께서 갑자기 백만원을 제게 내미시더군요. 자식들에게 용돈 받아 생활하시는 일흔이 넘은 할머니. 할머니에게 백만원이 있을리 없었습니다.
'돌잔치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갈 텐데 이거 보태라.'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구임대주택에 월세를 내며 사시는 할머니, 반찬값 아껴가며, 버스비 아껴가며 모았을 돈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없었거든요. 정말 돌잔치를 할 돈이 없었거든요. 저는 전처와의 사이에 애가 없었기에 제게는 첫 아들이었기에 빚내서 돌잔치 하려는 아내를 말리진 않았거든요. 돌잔치를 끝내고 나니 딱 백만원이 모자랐고, 그 모자란 백만원은 할머니께서 주신 돈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우린 아내의 빚을 갚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이젠 긴긴 빚의 터널을 빠져나와 살만 합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 하나를 배웠습니다. 돈을 돈 답게 쓰는 방법. 그래, 돈은 필요한 곳에 필요할 때에 써야 하는구나. 매달 적자를 이어가면서도 저는 애들이 먹고 싶어 하는 건 대부분 사줍니다. 큰애가 좋아하는 초코송이와 쌍쌍바. 작은애가 좋아하는 젤리. 둘째는 젤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젤리만 있으면 모든 게 오케이일 정도거든요. 큰애는 초코맛을 좋아합니다. 초코송이 쌍쌍바 자유시간 등. 그래서 젤리를 박스로 사놨습니다. 초코송이도 박스로 주문해서 사놨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슈퍼에 갈 때면 저는 어김없이 애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꼭 담아 나옵니다.
통장을 보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요즘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제 인생 최대의 과소비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큰애 치료비는 이미 제 월급 바로 턱밑까지 올라왔고, 은행집이니까 은행에 이자도 내야 하고... ㅋㅋㅋ 다 적으면 정신건강에 해로우니까 여기서 스톱. 그런데도 돈 걱정이 없습니다. 저는 손을 펴고 있거든요. 내 꺼라고 안 놓겠다고 쥐고 있던 과거와 달리 손을 펴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새 돈이 쥐어지더군요. 아르바이트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구설계 경력 20년. 그동안 개발자로서 잘 살아왔나 봅니다. 물론 알바 하느라고 밤에 잠을 못자서 개피곤 상태이긴 하지만... 일을 준다는 사람이 있으니 일을 해야죠. 물론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매달 발생하는 적자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큰 거 하나 받으면 수입이 괜찮지만 자잘한 건 그냥 아내와 맛나는 거 사먹고 말거든요. (물론, 알바비 받은 거 반을 스팀 사는 데 쓴 건 비밀입니다.)
제 평생에 빚을 지고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리셋하고 0원이 돼본 적은 있어도요. 그런데 리셋했을 때처럼 이제 0원이 되어갑니다. 전직장 나오며 받은 퇴직금으로 2년 버텼으니 잘 버텼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 퇴직금이 모두 큰애 치료비로 들어갔어도 아깝진 않습니다. 이제 퇴직금 모두 쓰고 0원이 되면 마이너스 통장을 쓰려고 합니다. 준비도 하고 있고요. 물론 바로 코앞에 SCT가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모은 SCT가 상당히 되네요. 그런데 아직 팔 생각은 없습니다. 1년 후를 생각해보면 지금 팔면 바보잖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자고 열심히 육아를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열심히 보팅을 해야 합니다. 좌절할 시간이 없습니다. 속상해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현실을 비난해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 시간에 글이라도 하나 더 쓰고 하나라도 더 읽고 보팅이라도 한번 더 제대로 해야 합니다. SCT를 차곡차곡 모으면 보팅만으로도 일당을 벌 수 있는 그날이 곧 올 테니까요. 스팀엔진이 망하지 않는한 그날은 반드시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육아는 언제나 최우선입니다. 일한다고 매일 회사에서 먹고자고 하는 불량 아빠인 저는 많이 반성해야 합니다. 비록 통장은 비었어도 내일은 울 아들이 좋아하는 삼겹살 파티를 해야겠습니다. 삼겹살에 초코송이에 쌍쌍바까지 큰 선물을 주는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 돈을 돈답게 쓰는 하루, 생각만으로도 멋지네요. 그리고 이벤트성으로 그렇게 하루만 보내진 않으려고 합니다. 돈은 또 벌면 되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돈은 돈 답게 써야 하더군요. 필요할 때에 써야 합니다. 오늘 쓸 돈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 파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