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재연재 | 사랑은 냉면처럼 04

naha(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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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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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앗싸! 자기 무덤을 파는구나. 머리에 든 게 많다고 요리도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니까. 칼을 무서워하는 가짜 요리사 주제에 감히 경주느님에게 도전장을 내다니, 이제 망신당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요리시합에 졌다며 눈물 흘릴 수애를 생각하니 갑자기 불쌍해졌다. 쯧쯧 그러게 왜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냐?

수애와 얘기를 끝내고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막내가 급하게 문을 열고 나왔다.
“큰일 났어요. 지금 주방장님께서 찾고 난리가 났어요.”
예상치 못한 변수다. 겨우 5분 정도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그 사이에 1층에 와보다니……. 수애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수애가 막내의 말을 듣자마자 급히 주방으로 들어가기에 나도 서둘러 들어갔다. 주방엔 주방장이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에잇!
“막내에게 다 들었다.”
나를 노려보는 주방장의 화난 눈빛을 애써 피했다. 나는 언제나 성실하고 실력 뛰어나고 무엇을 하든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라는 평이 나 있었다. 게다가 주방장님의 수제자가 아닌가? 그런데 하루 중에 가장 바쁜 시간에 자리를 비웠다는 걸 봐버렸으니 이건 내게 큰 흠집이다.
수애와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음식은 무철이가 빼고 있었다. 무철이도 숙련자이긴 하지만 수애가 잔뜩 밀려놓은 주문을 이어받아서 헤맸을 게 뻔하다. 정말이지 수애가 나타난 후로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경주야,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내가 말은 안 했지만 네 맘은 다 안다. 그리고 부주방장, 너도 잘한 거 없어. 오늘 일 끝나고 두 사람 내 방으로 와.”
주방장은 밀린 주문지를 보더니 한숨을 크게 쉬며 주방을 나갔다. 주문이 많이도 밀려 있었다. 긴 시간 동안 대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경주 씨, 빨리 이 주문지부터 해결합시다.”
수애가 밀린 주문지를 보고 서두르며 말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참견 좀 하지 말라고.

주방을 겨우 5분 비웠을 뿐인데 주문 순서가 엉키고 난리가 났다. 내가 수애 대신 주문지를 맡았다면 순서가 엉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전문가니까!
이제야 경력이 겨우 한 달인 수애는 밀린 주문지를 보자 당황을 했다. 당황하다 실수까지 해버렸다. 먼저 나가야 할 음식이 나중에 나가는가 하면, 세 그릇 나가야 할 음식이 다섯 그릇 나가버렸다.
나는 옆에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며 실실 웃었다. 서빙하는 직원은 왜 음식이 안 나오느냐고 불만을 말했다. 수애가 드디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더 큰 소리로 웃었다. 원래 불난 집에는 부채질을 해야 제맛이지! 내 웃음소리를 들은 수애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날 째려봤다. 수애의 큰 눈이 마치 여우의 눈처럼 보였다. 딱 구미호 같은 눈.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면 내가 무서워할 거라 생각했나? 난 더욱더 크게 웃으며 수애의 눈을 같이 째려봐줬다.
“이봐요, 지금 웃음이 나와요?”
“웃기잖아요. 주문지 몇 장이나 밀렸다고 쩔쩔매는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아세요? 여름에 손님이 한 번에 들이닥치면 주문지가 50장도 밀려요. 30장 정도는 가뿐하게 외워야죠. 머리 좋은 수애 씨에겐 식은 죽 먹기 같은데. 그렇죠?"
나는 수년을 일해서 주문서 30장 정도는 순서대로 외우며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한 수애라도 경험이 적어서 주문지를 외우며 일하는 건 힘들어 보였다. 난 여기서 좀 더 수애의 기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이리 나와 봐요. 내가 할게요. 쯧쯧, 겨우 이 정도 가지고 쩔쩔매는 꼴이라니.”
구경만 하며 실실 웃던 나는 수애에게 내가 할 테니 비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잘난 자존심을 가진 수애는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며 내 도움을 거절했다. 선의의 도움까지 거절하다니, 정말 화가 많이 났나 보다.
“됐거든요. 일 안 하려면 방해하지 말고 좀 꺼져줄래요?”
수애는 화를 누르려고 눈을 내리감고 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참아라. 참아라. 계속 참아라. 계속 참다가 화병 걸려라. 흐흐흐.
수애를 괴롭히는 일은 정말 재밌다. 당황하며 큰 눈을 더 크게 뜨는 모습도 웃기고, 나름 무섭게 째려보는 모습도 웃기고, 소리 지르는 모습도 웃기다. 그래, 수애 너는 나의 기쁨조가 되어라!

일을 마치고 수애와 함께 주방장실로 갔다. 뭐라고 혼내실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주방장님은 나와 수애를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말씀을 시작하셨다.
“오늘 주방을 비웠던 일은 없던 걸로 해주마. 하지만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둘 다 시말서를 내야 할 거야.”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주방장님 밑에서 8년을 일하면서 혼나본 적이 없는 엘리트다. 내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수애가 정말 싫다.
“그리고 내가 너희 둘을 한 달 지켜봤는데 두 사람 왜 그렇게도 맞질 않냐? 뭐가 불만인지 나도 알아. 경주 너, 사내자식이 그런 일로 여자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어? 너는 내 수제자야. 다신 날 실망시키지 마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정말이지 오늘 일은 내 인생의 오점이다.
“그리고 수애, 직장에선 계급도 중요하지만 경력이라는 것도 있어. 경주가 여기서 몇 년이나 일한지 알지? 8년이야. 수애도 잘한 거 없다. 둘이 사이좋게 주방을 꾸려나갈 수는 없냐? 난 말이야. 너희 둘이 콤비가 되었으면 좋겠어."
콤비? 내가? 수애랑? 차라리 날 죽여주세요. 주방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럼 우리 식당은 가장 이름난 한식집이 될 게 아니냐. 경주 너의 실력과 노하우 그리고 수애의 지식까지 더하면 정말 최고의 콤비가 될 텐데 말이야. 경주 너부터 대답해봐라. 둘이 또 싸울래?”
아, 이를 어쩐다. 수애와 같이 일 못하겠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주방장님께 찍힐 게 뻔하고, 그렇다고 알았다고 하면 내 속이 뒤집힐 텐데.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오늘 정말 제대로 꼬이는구나. 부처님 예수님 어떻게 할까요? 나는 정말 수애가 밉다고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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