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걷는 길 _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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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asmestas to O cebre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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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S와 함께 출발 한다. 오늘도 역시나 감동의 여명을 안고 길을 걷는다. 신비한 색의 하늘…

Ambamestas 에서 2KM 떨어진 Valcarce라는 마을이다. 대부분 이곳에서 묵는데 나는 조금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있고 싶어서 그 전 마을에서 쉬려고 하다가 S를 만난거였다.
조용히 O cebreiro에 오르고 싶었던 간절했던 내 소망은 S를 만나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고, 나는 오늘 걷는 내내 S가 보는 부정적 세상에 대한 강의를 들어야했다. S는 너무 완고했고, 난 S의 부정적인 수많은 이야기에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할 말을 잃는다는 건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슬펐다. 나에게는 너무 슬픈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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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 Herrerias 마을을 지나다가 리에코를 다시 만났다. 말을 타고 O cebreiro를 지나가고, O cebreiro 에서 다음 마을까지 걸어간다는 그녀. 나는 그녀의 일정을 확인했다. 왠지 이게 마지막이 될 거 같은 생각에 우린 우린 같이 사진을 찍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녀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행복 할 거 같은 느낌이다.

리에코로 인해 잠시 멈추어졌던 S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고, 나는 조용히 듣는다. 우리 사이에는 반사판이 있는 듯 서로의 대화가 공중에서 튕겼으며,일정한 반복 패턴이 생겨났다.
S의 오해… 나의 설명… S의 오해…나의 설명… 오해하고 있다고 알게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설명이라도 할 기회가 생길 수 있으니…. 설명을 못 해 더 큰 오해가 나오기도 한다.
어제밤처럼….

왜일까.. 왜 나는 S와 소통을 할 수 없을까?

이 물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랬던 거 같다. 내가 5를 이야기 하면 S는 2로 받아들이고, 나는 3,4 를 다시 이야기하고 그렇게 해서 S가 3,4,5를 받아들이면 좋은데…이 여러 과정에서 새로운 오해가 생기고…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내가 5를 2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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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할 때, 내 직업은 같은 결과물을 놓고, 디자이너와 이야기 할 때, 엔지니어와 이야기 할 때,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과 이야기 할 때 달라야 한다. 비지니스 하는 사람은 디자인이나 코딩을 전혀 모르니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를 해야 하고, 엔지니어와 일할 때는 그들이 디자인과 프러덕을 이해하고, 쉽게 코딩할 수 있게 대화를 해야 한다.

나의 친언니들은 모두 결혼을 늦게 하여, 나의 첫 조카는 내가 대학생 일 때 태어났다. 언니는 직장을 다녀야 했고, 조카는 언니의 친정집에서 크게 되었다. 즉 나와 살게 된 거다. 난 처음 생긴 조카가 너무 예뻐서 정말 많은 시간을 그 아이와 함께했다. 밥도 내가 먹이고, 기저귀도 바꿔주고, 잠도 같이자고, 놀기도 같이 놀고… 수업이 없으면 24시간을 조카와 보냈다. 언니는 주말에 한 번씩 집에 왔고, 조카는 엄마 라는 말을 하기 전에 이모라는 말을 먼저 했다. 조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난 그 아이와 더 많은 소통을 했다. 우리 집 식구 그 누구도 조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나만 그 아이의 말을 이해했다. 그 아이가 어떤 말을 하려는 건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조카와 어울리며 놀고, 그 아이 말을 이해하는 나를 보고, 나의 엄마와 오빠는 나와 조카의 정신 연령이 똑같다고 나를 놀렸다. 정말 똑같은 상태 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내가 조카와 같아서 그 아이와 소통을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 거다. 그건 아마도 애정, 조카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의 간극을 채웠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나는 인제야 생각하나 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확실히 대화하는 방식이 달라야 S와 소통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은….
나는 S와 일로 연결되지 않았고, S에게 내 생각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만큼의 단 하나의 애정이나, 동정이나, 연민이나 그 어떤 마음이 있지 않다는 거다. 일단 제일 중요한 에.너.지. 에너지가 없다. 하다못해 같은 순례자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S의 부정적 시각에 의견을 주고 이야기를 해봤자 결국 내 감정적 소비만 생기고 그가 말하는 세계에 슬퍼서 나만 아프리라는 것을 알고 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S는 천하무적이다. 나는 S의 부정적인 시각이 보여주는 인간관계와, 세상에 대하여, 그 관계의 희망적 변화와 이해, 그 부정적 세상의 변화 가능성, 그리고 발전 가능성을 찾아보고,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 하고 싶지, 욕설로 시작하여 무조건적인 비난과 비판을 거쳐 욕설로 끝나는 이야기에는 동참할 수가 없었다.

위로도 할 수 없고, 같이 욕도 할 수도 없고, 무조건 적인 비난과 비판 또한 할 수가 없다.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을 어둠의 동굴로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그래도 S가 하는 오해의 설명을 하려고 시도 했었으나, 완고한 S의 사고와 비난에 따른 부정적 시각에 나는 지쳐서 포기하고 말았었다. 나는 그저 S의 부정적 세계관 강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렇다. 나는 내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듣기만 하였다. 듣기만 하는 것도 너무 지쳐서 O cebreiro가 빨리 나오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오르막이 심한 그 길을 쉬지도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H언니가 생각났다. 말을 조리 있게 꽤 잘하는 그 언니라면 지금 어떻게 대응을 할까? S는 꽤 예의 바르고, 착하다. 그래서 더 들을 수 밖에 없다. H언니는 그런 S를 꽤 마음에 들어 했었다. 적어도 그때 우린 S가 이렇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지는 몰랐다… 초기 였으니까...
그러고 보면 어쩌면 S와 나 사이에서 내가 느끼는 반사판은 나 스스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S의 부정적 비난과 비판의 시각을 흡수하고 싶지 않아서 생긴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이런 마음이 S에게도 전달되어 내 생각에 S도 반사 하게 만드는 것일까?

어렸을때 꼰대는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꼰대가 되나보다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오늘 보니 꼰대는 나이를 먹는다고 꼰대가 되는 건 확실히 아닌거 같다. K보다는 많고, 한의쌤 보다도 어리다. 적어도 S의 나이면 꼰대 소리를 들을 나이는 아니지 않을까? 뭐 여러가지 환경이 꼰대를 만들어 낼 것이다. 사회환경, 나이, 생활... 그리고 그중의 하나 중요한 것은 마음이 닫혀서 꼰대가 되는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마음이 닫힌채 상대에게 아무런 애정이 없을 땐 더욱 꼰대가 되는 게 아닐까...

그래, 나는 S에게 소통을 멈춤으로써 마음을 닫았다. 아니! 마음을 닫고 소통을 멈추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이거나 생각하지 않는 거 같은 S역시 마음이 닫혀 있다고 여긴다. 이렇게 마음이 닫힌 채 진정성이 바탕이 된 소통을 포기한 우리는 그렇다면 지금 서로가 서로에게 꼰대인 것인가?

아마도...

어렵게 S와의 소통을 포기 했을 때, 나는 감정의 소비가 조금 덜 되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부정적인 말들을 들어야 했지만 포기를 하고 나니, 아스트로가에서 K랑 같이 걸을 때 처럼 기가 쭉쭉 빠져나가는 느낌은 적었으나 여전히 마음은 아프고 속상했다.

소통의 포기 그 안에는 내가 늘 과도하게 느끼는 책임감도 포함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난 S와의 소통의 포기를 통하여, 이 길에서 처음으로 그 책임감을 내려놓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때로는 그 책임감을 내려놓고,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 괜찮다. “괜찮아” 라고 말할 때도 있다는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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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로가에서 K에게 그렇게 내 기를 다 빼야 했던 건… 아마도...그런 K의 불평을 들어주어 조금이라도 그 친구의 불평이 사라지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그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들어 주는 거 밖에는 해 줄 수가 없으니까…그리고 일단 그 친구의 자연스러운 불평과 화에는 내가 알 수 없는, 그리고 어쩌면 말 할 수 없는 깊은 원인이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다. 또 들어줄 사람도 나 밖에는 없었고... 그리고 일단 평소에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K와는 소통이 되고 있었기에 언젠가는 짜증이 사라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또... 나 자신이 역시 뭔지 모를 책임감에 둘러싸여 있었다.

S의 부정적인 세계관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아주 작게 S의 부정적인 어느 한 가지의 오해에 대해 내가 책임감을 느끼고 풀으려고 했다면, 어쩌면 오해가 풀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책임감을 내려놓은 것이었다. 평소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경우에서도 내려놓지 못하는 책임감. 그 속에서 나는 그동안 자유롭지 못했다. 오늘 S와의 상황을 통하여 내려 놓는 법을 배운거 같다. 어떤 방법으로 내려 놓던지 한번 내려 놓는 법을 알면 방법은 또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나는 S와 함께 이 힘든 비 오는 산길을 같이 걸어 올라 온 것을 감사해 해야 하는 것인가?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감사가 나오지는 않는다. S의 부정적 에너지가 나를 너무 지치게 한 건 맞으니까…그 친구가 말한 세상이, S가 보는 시각이 나에게는 너무 슬프고 아프게 다가온 것은 사실이니까.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듣는 ‘부정적 세계관 강의’ 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어서 빨리 S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까…

(( 이날 이후로 S와 몇 번의 대화가 오고갔다. S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으나, S는 조금의 기회가 보이면 여전히 나에게 강의를 했다. 점점더 심하게... 나는,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아니면,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기에 것도 아니면, 얼마나 우스워 보였기에, S는 나에게 이러는 것인가하는 생각과 더 나아가 자괴감까지 들때 쯤 대화가 끊어질 수 밖에 없는 기가 막히는 대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소통이 완전히 단절됨에 나는 솔직히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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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goo.gl/maps/DaMY4bmgrjC2

덧. O cebreiro 편은 너무 길어서 둘로 나누었습니다. O cebreiro에서는 일기를 두 번을 썼습니다. 길을 같이 걸은 S와 헤어지고 난 후에 S에게 받은 부정적 에너지에 마음이 너무 지쳐서 저를 위로하고자 먼저 쓰고, 마을을 둘러 본후 주절이 주절이 또 썼네요.

나를 찾아 걷는 길 _29(1) | Ecen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