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avante to Astorga
어제에 이어 내리는 비... Villavante 알베르게에서 미겔이 꼭, 꼭 같이 걸으라고 말하던 캐나다 순례자들을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지도도 없이 걷고 있다는 나에게 지도도 빌려주고 쵸콜릿도 서로 나누어 먹으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아침이 되어 그들과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나에게는 K가 있다. 그렇게 그들을 보내고 K와 걷는다. 리에코는 언제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멋진 리에코.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래 본다. 그리고 행여라도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기를…
저기 끝으로 숲이 보인다. 마을의 입구를 알리는 숲인가? 아닌가… 이상한 나라 앨리스가 되어 토끼를 따라가는 기분은 어떤 기분이 이었을까? 숲에 가까이 갈수록 심장이 마구 뛴다. 이 숲을 통과하면 또 다른 모험이 시작될 거라고 기대했다. 마을을 지키는 숲속의 요정들이 나와 반겨줄 거 같은 길.. 오늘은 어떤 순례자들이 이 숲을 지나가는지 요정들은 알고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오늘도 걷는 동화 같은 길… 비가 와서 걷기가 조금 힘든 만큼 자연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걷는데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데... 비가 와서 물론 조금 더 힘들기는 하지만 뭐 그리 못 견딜 정도는 아닌데, 같이 걷는 K군의 짜증을 듣고 있자니 나는 진흙 속에 파묻혀 있는 내 신발을 들어 올리는 것보다도 더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낀다.
동생이라면 그냥 한대 팍!!! 때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모뻘인가? 내가 편해서 그래서 그런가? 짜증 내며 걷고...화를 내며 걷고… 가끔 과격하게 화를 내며 걸을 땐 난 K의 화가 무섭기도 했다. 나보고 뭐 어쩌라는 건가...내가 엄마도 아니고, 대신 걸어 줄 수도 없고, 내가 걸으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왜… 난 저 아이의 짜증을, 화를 들으며 걸어야 하는 걸까? 그래 네가 걷는것이 힘이 드니까 그런거겠지. 그래.. 물론 힘들겠지… 그래도 정말 이건 아닌거 같다. 물론 짜증이나 화를 내지 말라고 말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으며 저렇게 짜증과 화를 낼 수 있는지 나는 K군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그 화가 어디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알 수도 없었기에 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K의 짜증과 화를 보고, 들으면서 어쩌면 K의 화나 짜증은 K 자신에게는 그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이 K를 저렇게 화내는 아이로 만든 걸까…
Astorga가 저기 보이는데.. 그 길을 걷는 동안 K의 짜증은 정말 너무 심했고, 물도 없어 죽어가듯 걸었던 나헤라 보다 이유 없이 들어야 하는 K의 짜증과 불평이 내 마음을 더 지치게 했다. 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스트로가 알베르게에 도착 하여 나는 가방을 내려 놓자 마자 눈물을 펑펑 흘렸다. 소리 없이 눈물을 마구 흘리는 나를 보고 호스피탈로는 깜짝 놀란 듯 보였으나 곧 가만히 그냥 내가 다 울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조금 진정이 되고, 호스피탈로는 발의 물집을 치료 해줄 테니 조금 있다가 내려 오라고 하며, 내 가방을 들고 내 침대가 있는 곳까지 옮겨다 주었다. 완전 감사한 호스피탈로. 내가 발이 아파서 펑펑 운 거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발이 아파서 운 것이 아니었는데… 발은 전혀 하나도 안아픈데...
K군은 내가 눈물을 떨구며 운 줄도 모르고 나를 보고 여전히 다른 말 중이다.
아스트로가는 초코렛으로 유명하다. 징징거리는 K군과 간단히 초콜릿 장을 보고 난 저녁 생각이 없어서, K군을 떼어 놓고 - 다행히 다른 한국 순례자들과, 혼자 열심히 걷는 프랑스에서 온 한국 여학생이 있어서 K군은 그쪽 팀과 저녁을 먹었다. 아.. K가 어울릴만한 다른 한국인 순례자가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는 혼자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비가 온다. 들어가 보고 싶었던 쵸콜릿 카페에서 민트티를 마신다. 오늘 그렇게도 원했던 평화로움에 감사함이 저절로 나온다. 샵에는 각종 초콜릿이 많이 있었고, 나는 초콜릿을 몇개 더 샀다. 핫 쵸코도 아침 6시30분 부터 판매 한다고 해서 내일 아침 일찍 이곳에서 핫쵸코를 먹고 출발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일 모레 철의 십자가를 지나가니 잠시 그곳에 놓을 것도 짚어 보고 해야 겠다.
피곤하고 지친 하루에 평온하고 달콤한 휴식을 주는 아스트로가.
잠시의 휴식 때문이었을까...정신이 좀 맑아 진 것을 느낀다. 성당 알베르게에 돌아와 보니 새로운 순례자들이 많이 보인다. 처음 뵙는 한국인 아주머니와 마주쳐서 인사를 하고 3층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아...아주머니 얼굴이 심상치가 않다. 무척 어둡고, 걱정스러운 얼굴. 순간 내 손은 벌써 새로 산 쵸콜릿을 뜯어 아주머니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터져 나온 아주머니의 사정 이야기. LA 어머니의 사정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속상했다. 내가 도와 드릴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죄송하다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란다고 인사를 하고, 초콜렛을 더 잘라 드리고 올라왔다.
낮에 온갖 짜증을 내서 미안한 것인지.. 아니면 배부른 저녁을 먹어서인지... K는 이제서야 불평을 안 한다.
음악을 하고 싶었던 자신의 지난 꿈을 이야기 하며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는 K. 노래 참 잘한다.
((아스트로가에서 흘린 눈물 때문이었을까? H 언니를 거쳐, Y 언니와 K로 정점을 찍고 내 격한 Emotional Journey는 서서히 가라 앉기 시작하고, 나중에 S군을 끝으로 거치면서 나의 감정기는 고요해 진다. 까미노 중에도 느꼈었던 것이고, 까미노가 끝난 후 더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내가 만난 팀이 결코 무난한 팀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이곳에 쓰지 못한 우리 팀과의 많은 대화와, 그들이 쓴 많은 드라마를 통해 나는 나대로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다시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남들보다 과도하게 느끼는 책임감과, 지나치게 예민하고, 감정의 공감을 잘 하는 나에게 격한 감정기를 제공해준 그들이 이제는 조금 더 행복해져 있기를 바랄 뿐이다. ))